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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형평 잃은 재벌의 '효자손'들
도덕적 형평 잃은 재벌의 '효자손'들
  • 백일 울산과학대
  • 승인 2005.03.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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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 연구에세이'를 해부한다

▲'정의로운 체제로서의 자본주의'(복거일 지음) ©
백일 / 울산과학대·경제학

언제부터인가 ‘복거일’이란 필명은 소설보다 ‘영어공용화’론을 주창하는 친미파 보수주의자로 더 유명하다. 그가 이제는 경제학에까지 출사표를 던졌다. ‘정의로운 체제로서의 자본주의’는 SERI(삼성경제연구소) 연구에세이의 14번째 단행본이다. SERI 시리즈는 물론 이 연구소 중심경향인 시장주의 논파와 이론기반 다지기다. 그러니까 이 책의 줄거리가 대체로 짐작 가는 바인데, 그러나 ‘경제학은 본질적으로 생물학의 한 분야고 철학적으로 생물학으로 환원된다’는 첫 화두가 제법 만만치 않다.  

저자는 자유주의의 대가들, 하이에크, 프리디먼 등을 인용하며, 자본주의 자연스러움과 정의로움을 역설한다.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남성보다 더 디폴트(default)해서 자연스러우며, 자본주의도 디폴트하므로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여성의 생물학적 생태는 잘 모르겠으나, 영역이 다른 개념들인 ‘생물학적 디폴트’에서 자연스러움을, 자연스러움으로부터 보편성을, 결국 생물학이 경제원리라는 논법을 솜씨 좋게 끌어내는 독창적(?) 연역력만큼은 궤변술의 조사 제논도 혀를 내두를 듯하다. 그렇다면 현대 인류의 경제발전 노력이 기껏 원숭이 두뇌나 오스트랄로 피테쿠스의 생태보다도 못하다는 뜻일까. ‘복거일’식 논리영역의 다음 화살은 노동가치설이다. 착취이론이어서 원시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원시적’이라는 표현에서 냉철한 이성을 느끼기 보다는 ‘가진 자’로서 ‘기분나쁘다’는 감정표현이 먼저 연상됨은 왜일까. 인용문 일색에다 원색 표현을 제외하면 특별히 첫장의 거창한 자본주의 변명이라는 ‘큰’ 뜻의 진척을 발견하기 어렵다. 차라리 본문을 생략하고 ‘자본주의를 위한 변명’, ‘재산권의 정의로움’, ‘경쟁의 본질’ 등 중간제목이 말하고 싶은 본뜻이 아닐까. 그러니까 재산권이 유독 강조됨을 알 수 있는데, 이를 ‘자본주의 빈부격차 심화에 대한 오해가 있으나, 경쟁체제에서는 당연하며, 승리한 자들의 재산권은 정의롭게 보호되어야 한다’고 해석하면 어떤가. 앞뒤가 맞을 듯한데, 아쉽게도 여기에 근자의 화제였던 삼성가의 수천 수조원대 불법 재상상속문제를 대입하면, 하필 오해하기 좋게 ’속물성‘ 이라는 궁합이 딱 떠오른다.

‘새한국형 경제운용시스템을 찾아서’는, 경제전공자들의 대안적 접근이라는 점에서 ‘정의로운…’보다 한단계 높은 차원의 정통이론시리즈다. 주 내용은 이른바 영미식 개혁 비판이며, 플라자 합의후 미국의 저달러 공세에 통화긴축을 단행못한 일본형 장기침체가 한국에도 재현될 수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경고한다. 이른바 영미식 개혁이 소버린과 SK사태 등 국제투기자본의 공격적 M&A와 국내자본위기의 물꼬가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그동안 재계에서는 거의 금기시 되었다는 점에서 이 비판은 충격적이다. 그러나 정부방침에 대한 재계의 전면반박이라는 이 전대미문 비판의 백미는 이른바 ‘우리식’ 대안이라는 결론부분에 있다.

‘주주중심모델보다는…점진적 혁신에 비교우위를 가지는 우리식 이해관계자형 모델’을 나열된 뜻대로만 해석하면 민족자본적 냄새도 풍긴다. 그러나 정작 내용으로 들어가면 당혹스럽다. 과거 이해관계자란 결국 취약한 주식지분을 가졌으나 보호해야 하는 이해당사자, 즉 현 경영진 중심모델로 해석되는 것이다. 게다가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 완화 대목에서 이 모델의 행위주체자로서 ‘삼성’이란 이름을 슬쩍 대입하면 골격은 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 단적으로 그룹지배권 강화, 삼성의 염원인 금융합병 허용, 불편한 소액주주 소송 금지라는 종래의 그 주장 아닌가. 그러니까 이를 삼성 총수의 불편한 사정을 대신 긁어대는 ‘효자손’ 연구로 폄하하면 어떤 변명이 나올지 궁금하다. 솔직히 공격적 M&A가 두렵다면 적어도 외국인 소유지분과 경영권 제한, 소송이 두렵다면 지나친 소송 남발 완충장치 제안이라도 해야 결론이 신선해지는 것 아닐까. 해외투기자본의 M&A 공세와 경영진의 부도덕한 경영은 별개사안이며, 전근대적 경영방식에 대한 비판을 두려워해서야 결코 발전의 꼬리도 잡을 수 없다. BIS비율 등 OECD 등에 의해 강제된 회계·통계 적용은 지나친 부분도 많으며,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솔직한 지적은 높은 평점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결론이 결국 그룹 총수를 위한 배려로 귀결한다면, 결국 사설기관일 뿐이라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왜 우리는 비싼 땅에서 비좁게 살까’(김정호 지음) ©
‘왜 우리는 비싼 땅에서 비좁게 살까’는 부동산분야에 대한 극단적 시장주의 처방이라서 오히려 흥미를 돋운다. 수도권 신도시 수십개 공급, 농업과 식량안보 포기, 전면적 토지사유화 등 무지막지한 주장이 전개된다. 그 여파가 미칠 걱정거리인 토지부족은 국토의 5%에 불과한 토지이용률을 3배쯤 증가시켜서 충분하다. 상대적 농지부족과 식량안보문제는, 식량무기화라고 해봐야 우리 쌀값이 국제 시세의 5배여서 여유이며, 폭등한들 그때 가서 다시 농사지으면 된다는 것이다. 주장대로 전매권마저 전면 허용되면 이 나라는 토지 사적 거래의 세계사적 모범이 될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훌륭한(?) 정책을 시행하는 나라가 없을까. 이 주장에서는 전 토지의 대부분이 10%이내 소유자에게 사유화 된 토지소유 실태에 대한 언급이 생략돼있다. 이 방식대로 농지가 도시토지로 공급되면 가격이 등귀하는데, 소수의 토지많은 사람은 혜택받으나 토지없거나 적은 대부분은 거꾸로 이를 부담해야 한다. 농지가 해체되고 쌀개방이 전면 허용되면 단기적으로 식량가격은 하락하나 농가는 파산한다. 식량 주권이 카길 같은 세계적 곡물상에 주어지면 결국 부동산자유화 이득이란 외래독점곡물상과 땅 많은 사람에 귀속될 뿐이다. 옷이 떨어지면 꿰매고, 차가 없으면 걸어도 되지만 식량이 없으면 굶어죽는다. 저자의 속뜻이야 그렇지 않겠지만, 없는 사람은 이마저 내주고 구걸하라는 소리로 들린다. 시장지상주의자들의 결정적 특징은, 시장의 최종 부담자, 본질적 이해 귀속관계를 아무렇지 않게 은폐한다는 것이다.   

이 색체성 짙은 저술들은 2004년 후반기부터 집중되고 있다. 이전의 연구서 중심 SERI 출판경향을 감안하면, 위기의식의 급박한 발로라고도 할 수 있는데 아마도 이 시기 출현한 새로운 재산권 변동 사조(노동자 경영참가 등)의 영향이 아닌가 한다. 일례로 이번 시리즈물들의 특징은 재산권 수호 의지 표명이 유난히 두드러진다. 사유화가 필요한 부분도 물론 있다. 그러나 독점적 이해가 큰 토지같은 제한된 자원영역에서 사유화란 대대로 불공평의 온상이었다. SERI는 이 불공평을 감소시키려는 노력, 예컨대 영구임대주택 등 소유권 제한 연구를 생략하는 점에서 적어도 도덕성의 형평을 잃고 있다. 체급이 다른 선수간의 시합을 공정하다고 우긴다면, 그는 틀림없이 상위체급 선수에 돈을 건 도박꾼이다. SERI 연구에세이 시리즈를 비판하는 것은 ‘논리오류가 유달리 많아서’라기 보다 이제는 좀 베풀어도 될 아주 많이 ‘가진 자’가, 속내가 뻔히 들여다보이는 똑같은 주장을 수십권씩 연속 시리즈로 출간하는 심보에 심히 못마땅하기 때문이다.

 

>>인터뷰: '세리 연구에세이' 담당자 임진택 출판팀장

'유연한 지식생산 구조 창출'

임진택 팀장(사진)은‘SERI 연구에세이’ 시리즈의 실무자다.그는 지식생산의 산파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는 新모계 사회에서 등불처럼 살아가는 여성들을 살핀 ‘우마드’(김종래 지음), 디지털시대의 정보통신기술과 권력문제를 경영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디지털권력’(장승권 외 지음), 푸코의 ‘문제의 틀짜기’와 들뢰즈의 ‘차이’의 개념을 경영학에 접목시킨 ‘차이의 경영으로의 초대’(유재언 지음) 등이 신경제 질서에서의 지식의 위상과 활용에 대해 신선한 아이디어를 던져준다고 본다.

“앞으로 기업의 역할과 기업가 정신, 사회복지 문제, 청소년 경제개념, 디지털 기술과 경제의 관계, BIT 같은 융합발전의 전망, 정보격차와 디지털 딜레마 같은 문화문제도 큰 틀에서 다뤄나가고자 합니다.”

전반적으로 보수적 주장이 많다고 하자 그는 “좌파적 가치도 중요하고, 연구자들의 지원을 기다리고 있지만, 연구소의 이미지 때문인지 지원자가 없다”라고 말한다.

“지식의 범주와 양이 갈수록 복잡다단해지는 현실에서 연구소의 인력을 마냥 늘릴 수 없어 생각해낸 것이 적은 비용을 투자해 학계의 지식을 활용하자는 것”이었다고 임 씨는 시리즈의 또 다른 배경을 설명한다. 필자에게 5백만원의 착수금과, 인세 10%를 주지만, 연구소가 오히려 이득이라는 것. 그리고 1만여명에 달하는 홈페이지 회원들에게 이런 지식을 전파하겠다는 것이 연구소 측의 열린 경영전략. “펭귄북스 같은 외국의 내로라하는 문고판을 이뤄나가려 합니다”라고 임 팀장은 포부를 밝혔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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