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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등반 18] 공정을 부르는 마음의 습관
[한민의 문화등반 18] 공정을 부르는 마음의 습관
  • 한민
  • 승인 2021.08.03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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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위화감이란 사전에 따르면 서로 어울리지 못하는 어색한 느낌을 말한다. 대개 늘 보던 대상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평소와 같지 않은 느낌을 받을 때 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 단어가 쓰이는 맥락이 또 있다. 

연예인들이 고급 자동차나 주택을 샀다거나 특정 지역, 계층 사람들이 자기들만의 문화(주로 소비와 관련된)를 보일 때, 언론에서는 그런 행태들이 ‘위화감을 조성’한다고 경고한다. 따라붙는 시민들의 인터뷰들도 이를 성토하는 분위기다. 이 경우의 위화감은 뭔가 조화되지 못한다는 느낌을 넘어 ‘저들이 나와 다르다는 느낌’을 뜻한다. 결국 한국인들은 남이 나와 다르다는 느낌에서 불편한 감정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위화감을 느끼는 범위가 상당히 넓다는 특징이 있다. 이를테면, 사람들은 자기 주변의 사람들에게서 뿐만 아니라 재벌가나 특급 스타들에게도 강한 위화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재력으로 보나 스타성으로 보나 전략적으로라도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하는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 돈이 제대로 된 방법으로 번 것이라면 사실 그들의 행태에 우리가 불편함을 느낄 이유는 없다. 그러나 한국인들의 위화감은 그러한 기준과는 관계없이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반면 어떤 문화들에서는 위화감이 별로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영국에는 전통적 신분계층이 여전히 존재하고 특정 계층만 출입할 수 있는 클럽이 있는데 이 계층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이 그 클럽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에 별 불만이 없다. 만약 한국에서 의사나 변호사 같은 특정직업군만 출입이 가능한 업소가 생긴다면 당장 난리가 날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느낌을 상대적박탈감이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상대박탈이론은 지각된 불공정과 불형평의 맥락을 분석하기 위해 사용되어왔다. 크로스비라는 학자는 상대적 박탈감의 요건을 다음과 같이 세분화했다. ①내가 원하던 대상 X를, ②자기 이외의 누군가가 소유하고 있으며, ③자신이 X를 소유할 자격이 있었음을 느끼고, ④자신이 X를 소유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며, ⑤X를 소유하지 못한데 대한 개인적 책임감을 갖지 않는 경우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③~⑤의 심리적 과정이다. 자신이 무언가를 소유할 자격이 있고, 소유할 수 있었으며, 자신은 그걸 갖지 못한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면 상대적 박탈감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위화감 혹은 상대적 박탈감을 쉽게 느낀다는 것은 한국인들에게 이러한 심리과정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실제로, 한국인들은 누군가 무언가를 가진 것을 보면 자신도 그것을 가질 자격이 있고, 내가 그걸 갖지 못한 이유를 나 외의 다른 곳에서 찾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재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었고 그들이 정당하게 부를 분배했으면 그 돈은 열심히 일한 나에게 왔을 것이기 때문에 나는 재벌들이 누리고 있는 것들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이다. 많은 한국의 재벌들은 우리 사회가 혼란하던 시기에 정경유착 등의 부정한 방법으로 현재의 부를 축적했고 오랜 시간 동안 한국인들은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받지 못했다. 한국사회는 세계 6대 무역대국이라는 외형적 규모에 비해 절대적 박탈의 기준이 되는 최저임금이나 사회적 안전망의 수준은 그에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려면 이런 부분에 대한 개선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문제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한국인 대다수가 절대적 빈곤에 시달리기 때문이 아니라, 가진 것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괴리 때문이다. 행복은 객관적 조건과 주관적 기대의 비율에서 결정된다는 견해를 기억하시는가. 내가 가진 것이 아무리 많아도 보다 많은 것을 바란다면 행복을 맛볼 가능성은 없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남의 것을 부러워하고 가진 것에 만족하지 않으니 행복해지기 어려운 마음의 습관을 가지고 있다고 결론내릴 생각은 없다. 더 가지고 싶다는 욕망은 불행의 씨앗이 될 수 있지만 반대로 삶의 목적, 살아갈 이유가 되기도 한다. 

내가 더 가지기 위해 남의 것을 뺏거나 법을 어기는 것은 문제겠지만, 남에게 해 끼치지 않으면서 정당한 방법으로 피나게 노력했다면 당연히 더 가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찌보든 한국사회에서 공정이 화두가 되는 일은 피할 수 없는 듯하다.

한민 문화심리학자
문화라는 산을 오르는 등반가. 문화와 마음에 관한 모든 주제를 읽고 쓴다. 고려대에서 사회및문화심리학 박사를 했다. 우송대 교양교육원 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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