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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두기와 폭염, 이중고의 여름
거리두기와 폭염, 이중고의 여름
  • 신희선 숙명여대 교수
  • 승인 2021.08.02 0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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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적어도 예고된 형태로 이미 도착해 있다.” 『2050 거주불능지구』는 ‘12가지 기후재난의 실제와 미래’에서 ‘살인적인 폭염’부터 반복되는 팬데믹 문제 등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수준의 고통이 초래될 것”임을 지적한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도시 밀도를 높이는 요소들은 마치 서서히 퍼지는 독약과 같아서 폭염 기간에 심각한 상해를 입는 노동자 수가 전세계적으로 늘어나고 있단다. 기후 변화에 어느 누구도 안전하지 않지만, 사실 문제는 다층적이다. 현실은 열사병과 함께 냉방병도 언급되는 상황이 아닌가? 변이된 바이러스가 두려워서, 무더위에 밖에 나가기가 귀찮아서 일상의 대부분을 스마트 폰에 의존하고 있는 ‘배달의 민족’ 한국 사회의 여름은 어떠한가?

방학이라 아침 신문을 느긋하게 읽다가 “코로나 장기화로 2030 정신건강 ‘빨간불’”이라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보건복지부의 조사 결과,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 되면서 2030 세대의 우울 위험군 비율이 중장년층에 비해 1.5배 이상 높다는 것이다. 강력한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면 우울 점수는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것이라는 보도였다. 또한 비대면 상황의 지속으로 배달 물량은 늘어나는데, 에어컨 없는 물류 센터 안에서 선풍기 몇대로 버텨야만 하는 노동자들이 혹서기 대책을 촉구하는 1인 시위 보도도 있었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와 지속되는 ‘폭염’에 2021년 여름이 더욱 고단하고 뜨겁다. 

대학생들의 여름방학도 부실해지고 있다. 학생들이 세상을 배우는 다양한 기회가 온라인 접속으로 한정되고 있다. 코로나 이전만 해도 많은 학생들이 국내외 탐방으로, 해외 연수로 경험을 넓히는 일로 방학 일정을 채워갔다. 간혹 농촌봉사활동을 가거나 국토대장정을 떠나는 무리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학생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살아갈 수 있는 한국 사회에서 ‘보여주기식’ 스펙을 쌓는 일로 방학을 보낸다. 출신 대학 프리미엄이 평생을 가는 계층구조에서 여름방학부터 ‘반수’나 편입을 준비하는 학생도 늘고 있다. 한편에서는 방학동안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택배기사 라이더가 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점은 다양한 가치가 잠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돈‘이라는 블랙홀로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가고 있다. 의미 있는 경험을 통해 자신의 세계와 미래를 만들어가는 건강함이 사라지고 있다. 성실하게 노동을 통해 자신의 삶을 일구어갈 수 있는 터전이 무너지면서 학생들조차 ’돈이 전부‘라고 말한다. 얼마 받지 못하는 ‘쪼개기식 알바’나 푼돈 밖에 안 되는 월급을 바라보기보다 ‘주식’이 대안이라며, 무작정 주식투자를 따라하는 재테크에 올인하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과 함께 성장한 세대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소수의 ‘찐’ 사람들만 만나고, SNS 공간에서는 연출된 모습으로 피상적 교류를 이어간다. 문제는 세상에 대한 질문도, 타자에 대한 관심도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는 점이다. 

“바이러스는 우리 사회의 거울이다.” 한병철은  『고통 없는 사회』에서 “이제 타자는 거리를 두어야 할 잠재적인 바이러스 감염자”가 되는 상황을 우려한다. 방역과 면역이 혼재하면서 날마다 늘어나는 확진자 수를 헤아리다 보니 격리가 고착화되고 있다. 팬데믹 시대가 낳은 가장 큰 문제는 타자에 대한 경계다. 마스크가 일상이 된 사회에서 자신의 안전이 최우선이다 보니 타자에 대한 공감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서로의 마음을 여는 친밀함과 깊은 만남이 실종되고 있다. 숫자로, 데이터로 남는 타인의 고통에 둔감해지고 있다. 코로나 장기화로 인한 피로감과 탈진이 사람들을 고립시키면서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회적 구별짓기로 이어지고 있다. “함께 느끼는 고통이야말로 혁명의 효소다. 고통이 없으면 어떠한 혁명도, 새로운 것을 향한 출발도 역사도 없다”고 했다. 코로나와 함께 폭염의 이중고를 온 몸으로 감당하며 혹서기를 보내고 있는 이들의 고통을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득 부끄러운 시간이다. 

신희선(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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