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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동북지역에서 시도한 자치와 공화제…“주체적 근대화의 한 모델”
중국 동북지역에서 시도한 자치와 공화제…“주체적 근대화의 한 모델”
  • 김재호
  • 승인 2021.07.29 11: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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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윤 저, 『중국 동북지역 독립운동사』 출간

장세윤 박사의 30년 연구가 결실을 맺었다. 최근 도서출판 선인(대표 윤관백)은 장세윤 동북아역사재단 명예연구위원의 역저 『중국 동북지역 독립운동사』을 출간했다. 

장세윤 명예연구위원은 30여 년 동안 중국 동북지역(만주) 독립운동사를 연구·교육해온 전문가로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다. 독립기념관(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원, 성균관대학교 연구교수를 거쳐 2019년 말 동북아역사재단을 정년퇴직하고 현재는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근무하며 독립운동사 등의 연구와 교육에 전념하고 있다. 

장세윤 저자는 올해 신흥무관학교 설립 110주년, 만보산사건 90주년, 봉오동전투·청산리독립전쟁 101주년에 즈음하여 중국 동북지역에서 전개한 한민족의 독립운동을 이 책을 통해 새로운 관점에서 정리하고자 했다. 

저자에 따르면 2000년대 초·중반 이른 바 중국에서 ‘동북공정’ 연구작업이 진행되면서 중국 동북지역의 한민족 독립운동사 관련 자료와 유적(유적지) 등에 대한 접근이 어려워지고, 이 지역 관련 독립운동사 연구가 오히려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한다. 특히 근래 신진 연구인력의 양성이 어려워지면서 이 지역 독립운동사 연구가 위축되는 경향도 있다고 한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독립운동사 연구 위축

현재 중국에서는 20세기 전반기 중국에서 활동한 한국인들의 독립운동을 ‘중국내 소수민족의 활동’으로, 특히 ‘중국 조선족’의 활동으로 간주하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중국 동북지역에서 전개한 한민족의 독립운동은 ‘중국 조선족의 반일투쟁’, 또는 ‘중국 조선족의 혁명투쟁’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따라서 이 시기 중국 동북지역에서 전개한 우리의 독립운동사와 이주사 등에 대한 연구와 교육을 소홀히 한다면, 한국사나 한국근현대사, 독립운동사, ‘한인 디아스포라(Diaspora)’가 아닌 ‘중국 조선족’의 반일투쟁사나 이주사, 중국혁명사로 변형 정착될 우려마저 있다고 저자는 우려를 표명한다.   

그러나 저자는 과거에 우리가 흔히 ‘만주(滿洲)’라고 불렀던 현재의 ‘중국 동북지역’을 이제는 우리도 최근 추세와 관례에 따라 ‘중국 동북지역’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과거 일본의 침략적 의도가 밴 ‘만주지역 한인(한민족) 독립운동사’가 아닌 ‘중국 동북지역 (한민족) 독립운동사’로 정립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만주지역 한인 독립운동사에서 중국 동북지역 독립운동사로!

이번에 발간한 중국 동북지역 독립운동사는 저자가 근래 10여 년 동안 발표했던 논저 등을 모아 수정·보완한 것으로, 학술적 방법론과 체제를 살리면서도 일반 독자들이 관심을 갖고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평이한 서술을 고려하면서 40여 매의 사진과 10여개의 도표를 추가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하였다. 

이 책은 1910년대부터 1945년 8월 일제의 패망 전후시기까지 중국 동북지역에서 우리 민족이 전개했던 좌·우파의 다양한 형태의 독립운동·민족해방운동을 중요한 고찰 대상으로 삼았다. 

제1부의 신흥무관학교 연구에서는 그동안 이 학교 설립과 운영의 주체로 이회영 등 경주 이씨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명을 덜 받아온 이상룡·김동삼 등 안동지역 인사들의 동향을 강조하는 한편, 별로 조명받지 못한 중국 동북지역 독립운동 단체들의 공화주의·공화제 수용 양상을 각 단체별로 구체적으로 정리한 점이 눈에 띈다. 또 1930년대 초 연길·화룡·왕청·훈춘현 등 중국 연변지역(과거 북간도 지역) 항일유격대의 형성과 발전을 한국학계에서는 거의 최초로 서술, 수록한 점 역시 중요한 의의라고 볼 수 있다. 

공화주의·공화제 수용 양상을 각 단체별로 구체적으로 정리하다

특히 제2부에서 그동안 한국학계에서 연구가 미진하거나, 일부 논란이 되었던 1920년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독립전쟁의 실상에 대해 「홍범도일지」를 바탕으로 홍범도 등 독립군 부대의 활약과 전과에 대한 새로운 사실과 해석을 반영한 점이 눈에 뛴다. 저자에 따르면 봉오동전투에 대한 전과기록은 일본군 사령부 발표와 일본영사관 경찰의 보고에 따르면 일본군 십수 명 사상, 우리 독립운동 관계자 기록에 따르면 일본군 120여명 살상 피해 등으로 정리된다고 한다. 또 청산리독립전쟁 관련 기록에서도 일본군 관련 기록을 종합해보면 최소한 74명 이상 살상, 대한민국임시정부 등 운동 주체측 기록에 따르면 일본군 600여 명 살상 등으로 종합된다고 한다. 특히 저자는 이번에 발굴한 새로운 자료를 통해 1922년 1월 러시아에서 열린 극동민족대회에서 독립군의 분투와 승전 사실이 공식적으로 보고되고 토론된 사실을 새롭게 규명하였다. 

또한 우리가 잘 몰랐던 대한민국임시정부 직할 참의부 독립군 관련 자료를 검토하여 독립군 부대 편성의 실제 사례를 검토하고, 15~16세의 어린 청소년들도 독립군 병사로 참가하여 조국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분투했음을 최초로 규명하였다. 그리고 1929년 11월 발발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중국 동북(만주)지역 확산과 한국인 학생, 여러 민족운동 단체들의 호응 상황 등 광주학생독립운동의 해외 확산 사례를 새롭게 검토하였다. 

봉오동전투에 대한 일본과 독립운동 관계자의 다른 기록

제3부에서는 1931년 9월 일본의 중국 동북지방 침략사건인 ‘9·18사변(만주사변)’ 이후 한·중 양민족의 연대가 강화되어 1945년 8월 일제의 패망 시까지 공동항전을 전개한 양상을 민족운동 좌·우파를 망라하여 종합 서술하였다. 종래 비교적 연구·교육이 소홀했던 1930년대 동북항일연합군의 발전과 소련 이동 등을 서술하고, 1940년대 전반 해방 전후 시기에 중국 동북지역으로 진출한 조선의용군과 동북항일연군의 활동과 동향을 비교 고찰한 새로운 내용이 주목된다. 조선의용군과 동북항일연군은 한국현대사는 물론, 중국현대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 학계 일각에서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시각을 대변하는 저술을 간행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는데, 저자는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은 무의미한 저항운동으로 폄하되기 쉽다고 한다. 이에 저자는 오히려 한민족 스스로 주체가 되어 중국 동북지역에서 일종의 자치와 공화제를 시행한 경험을 주체적 근대화의 한 모델로 평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저자는 중국 동북지역에서 전개된 한인들의 독립운동, 민족(해방)운동은 기본적으로 종속과 굴종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유의 획득과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의 실현, 특히 만민이 평등한 법체계 속에서 여러 민족이 서로 평화롭게 어울려 잘 사는 사회와 체제(공화)를 지향했고, 그러한 이념과 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매우 어려운 투쟁의 과정이었다고 평가한다. 이런 입장에서 저자는 중국 동북지역 독립운동사는 사실상 “자유와 정의, 공화를 향한 험난한 여정”이라고 간주한다. 바로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이 언급한 ‘20세기 전반 파멸의 시대’에 온갖 곤경을 무릅쓰고 자신들의 신념과 가치체계를 실현하고자 했던 ‘창조적 소수자’들의 고난의 기록이라는 것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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