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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인문교양지 '안띠꾸스' 창간한 박경주 대표
인터뷰: 인문교양지 '안띠꾸스' 창간한 박경주 대표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5.03.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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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版 내셔널지오그라피 만들 것"

‘고대의 정신’에서 새로운 인문학적 향취를 추구하고자 하는 격월간 잡지가 창간됐다. 이름하여 ‘안띠꾸스’인 이 잡지는 제목부터 낡은 햇볕이 어룽거린다. 쉽고도 내실있는 인문학 잡지를 내고자 열망해온 한 ‘주부’와 전세계를 돌며 고서적을 3천여권 수집해 인터넷 커뮤니티를 운영해온 ‘마니아’, 그리고이 커뮤니티에 단골로 드나들던 고중세학 교수들이 뜻이 맞아 창간된 이 잡지는 그 문사철을 다채롭게 꾸며나가겠다는 포부를 뜨겁게 펼쳐보였다./편집지주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엔 고대 인문학(文·史·哲)을 다채롭게, 대중에게 널리 알릴만한 잡지가 없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에선 역사전문, 철학전문, 엔틱(antique) 전문잡지들이 일반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 있는데 말이다.

이런 척박한 문화풍토를 바꿔보겠다며 ‘안띠꾸스’(격월간지)가 인문교양잡지로서 첫발을 내딛었다. 박경주 발행인은 “대중들이 인문학적 교양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디딤돌 역할을 하겠다”라는 포부를 밝힌다. 안띠꾸스(antiquus)라는 단어가 ‘오래된 것’ 혹은 ‘옛것’을 의미하듯, 안띠꾸스는 그 출발점을 동·서양 고대 인문학에서부터 찾아나가고자 한다.

지난달 중순 나온 창간호를 살펴보니 잡지구성과 텍스트 속에서 ‘엔틱’의 냄새가 풀풀 풍겨난다. ‘신화깊이읽기’, ‘고대세계 리뷰’, ‘라틴어 읽기’, ‘시네마 히스토리’, ‘서가산책’ 등의 꼭지로 구성됐는데, 바리데기 신화에 대한 ‘깊이읽기’를 시도한 곳에서는 글이 없던 시절에 삶의 원형으로 구성됐던 신화의 흔적을 살피고 있다.

고대 인문학자들의 숨결 드러내

파리 세느강변의 ‘세익스피어 앤 캄파니’라는 고서점을 탐방한 순례기는 고서점상 주인 휘트먼 씨의 88년 ‘북셀러’로서의 인생을 조명하고 있다. 프랑스의 유명한 탐험가 미셀이 어린 시절 탐험의 꿈을 키웠던 곳이기도 한 이곳은 파리의 문화계 인사들이 물심양면으로 아끼는 세느강변에 박힌 진주 같은 존재라 한다.

‘고대세계리뷰’는 일반 대중들이 잘 몰랐던 고대 그리스에서 ‘養生術’의 하나로 대유행을 이뤘던 동성애의 세계를 다뤘는데, 미소년에 대한 열렬한 구애의 연대기를 요령있게 살펴보고 있는데, 동성애의 장면이 새겨진 ‘컵’ 등 관련유물을 곁들여 보여주기도 한다. ‘라틴어 읽기’는 김헌 서울대 강사(서양고전학)가 집필을 담당했는데, 라틴어 한구절 한구절에 숨어있는 서양고대 인문학자들의 정신과 숨결을 드러내고 있다.

사실 ‘안띠꾸스’는 박경주 씨와 주간을 맡고 있는 김준목 씨 두 사람의 결의로 출발한 잡지다. 고서적을 매개로 맺어진 학계와의 인연으로 김성 협성대 교수(서양고고학), 최혜영 전남대 교수(서양고대사), 임승휘 선문대 교수(서양근대사), 미술평론가 유경희 씨, 건축가 손진 씨 등을 편집위원으로 모셨는데, 이들은 좀더 내실있는 엔티크 잡지를 위해 수시로 접촉하여 잡지의 방향을 모색하고 콘텐츠들을 다채롭게 꾸며가고 있다.

희귀본으로 꾸며진 ‘서가산책’

그렇지만 편집위원들을 비롯한 교수들과의 의사소통이 쉬운 일만은 아니다. 사실 인터뷰 도중 박 씨가 자신의 애로사항을 가장 솔직히 드러낸 것도 이 부분이다. “교수님들이 전공지식에 비해 대중들에게 어필한 만한 글쓰기를 잘 못한다. 창간호의 볼륨이 계획보다 2배 이상 얄팍해진 것(62쪽)도 너무 어렵고 딱딱하고, 전공에 갇혀 있다고 생각되는 글들을 과감히 ‘잘라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고대의 세계를 전공한 학자들의 풀이 그다지 크지 않아 앞으로 이 분야 학자들을 어떻게 설득해서 글쓰기에도 신경을 쓰게 만들 지가 관건이다.

앞으로 나올 내용들을 들어보니 ‘서가산책’이란 코너가 굉장히 흥미를 끈다. “이 코너는 김준목 주간이 없었으면 생각도 못했을 부분”이라며 박 발행인은 강조한다. 세계 고서점을 순례하며 인문, 예술 분야를 비롯해 각종 희귀본을 3천여권을 모은 장서가인 김 주간은 오스트리아 알베르투스 황제가 소유했던 1573년판 희귀본 성경(BIBBIA SACRA)도 갖고 있다. 

서가산책은 바로 이 책들을 한권 한권씩 다뤄나가는 지면이다. 그런 만큼 옛것의 내용들을 새로이 발굴할 뿐만 아니라, 사진도판들 역시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한 것들이다. 창간호는 1925년 이탈리아에서 출간된 ‘형태와 채색’이란 책을 다뤘는데, 이어서 나폴레옹 자서전, 키케로의 저서, 라틴어로 된 일리아드 오딧세이, 1800년판 셰익스피어 전집, 1800년대 제작된 독일어 그리스로마 신화 등을 선보일 것이라고 한다. 그 책갈피에 묻어나는 역사와 문화가 벌써 궁금해진다.

‘안띠꾸스’가 닮고 싶은 잡지는 ‘내셔널지오그라피’라고 한다. 그만큼 내용이 풍부하면서 ‘외곬’의 향취가 만발하는 아날로그적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어필하고자 한다. 예전부터 인문학 잡지들은 창간됐다 하면 “얼마나 갈까”라는 소리를 들어왔다. 첫발을 어렵게 내디딘 만큼 ‘안띠꾸스’는 왠지 ‘가늘고 길게’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고서적 3천권 소장한 안띠꾸스 김준목 주간

김준목 편집주간은 사실 5년 전까지만 해도 건축자재 등을 수입하던 평범한 무역상이었다.
10여년 전 로마 기차역에서 우연히 만난 길거리 화가의 집에서 10만권이 넘는 고서적을 보고 그 냄새에 취해 고서적을 모으게 됐다. 이후 유럽을 돌며 장서 3천여권을 닥치는 대로 수집해 고서적 장서가로 화려하게 변신한 그는 인터넷에 고서적 사이트 ‘안티쿠스’(www.antikuus.co.kr)를 개설해 운영하면서 커뮤니티 활동을 해왔다. 그런 그가 ‘인문학적 교양잡지’를 추구하는 박경주 씨와 의기투합하게 되어 편집책임을 맡게 된 것이다.
△지속적인 콘텐츠 개발이 관건이다. 어떻게 채워나갈 것인가.
“새로운 자료를 만들어내기보단 기존 전문가영역에서만 공유되던 풍부한 자료들을 발굴해 대중물로 가공하고자 한다. 다른 한편으론 해외 전문잡지들과 제휴를 맺어 콘텐츠를 공유하고자 한다. 지금 독일의 한 역사전문 잡지와 뜻이 맞아 제휴를 시도 중이다.”
△좋은 필자를 발굴하는 게 관건인데.
“몇몇 대중적 글쓰기가 되는 필자들을 섭외하고 있다. 그러나 인력 풀이 한정돼있다. 앞으로 학자들에게 글쓰기 스타일의 변화를 계속 요구하겠지만, 한편으론 이윤기 씨와 같은 명망을 갖춘 필진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지속적인 관계를 맺겠다.”
△준비하는 특집기획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나. 
“기존 잡지는 특집이 중심이었다. 우린 그런 형식을 따르진 않는다. 그러나 꼭지는 계속해서 다양하게 개발할 것이다. ‘문명시대의 신화읽기’, ‘문화담론’, ‘문화위기와 생명사상’, ‘글쓰기’ 등을 재미있게 다루고 싶다. ‘안띠꾸스’는 현재 전문가도 대중도 아닌 중간층을 겨냥하는 내용이다. 아직은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중인데, 정체성이 확립되면서 많은 기획물들도 마련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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