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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모임: '우리말로 학문하기' 집담회-나는 어떻게 학문하는가
화제의 모임: '우리말로 학문하기' 집담회-나는 어떻게 학문하는가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5.03.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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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허무를 메워준 詩들...文脈的 지성으로 철학하기

‘자생적 학문하기’에 뜻을 두고 2001년 첫발을 내딛었던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이 최근 흥미로운 집담회를 가졌다. 주제는 ‘나의 학문방법론’. 개인적인 학문여정을 실존적 존재로서의 고민과 결부시켜 성찰적으로 되돌아보는 자리였기에 우리시대 학자들의 내외면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


33세, 뒤늦은 나이에 철학을 시작했던 박이문 연세대 교수는 지난 40년간 수많은 철학서들을 읽고 또 읽었다. ‘태어났으니 행복하게 살아야 할텐데’라는 생각은 그를 철학적으로 만들었다. 박 교수가 생각하는 철학의 목적은 “인식의 투명성의 논리적 근거를 제공하는 데” 있다. 그는 되도록 투명한 인식을 하고 싶어 철학을 했다. 인식은 의식대상을 파악, 즉 진리의 만족을 추구한다. 인식의 산물인 ‘진리’는 지성이 행복할 수 있는 거처이며, 철학은 이처럼 언어로 구성된 관념적 ‘둥지’ 짓기의 활동이다. 그는 또한 세계를 인식하는 또 하나의 방법론으로 ‘詩 쓰기’를 병행한다. 시는 철학적 언어의 ‘추상화’가 가져올 위험과는 달리, 존재, 자연, 세계를 원초적인 상태로서 접하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철학하기와 시쓰기의 학문방법론은 허무주의자인 박 교수를 행복한 존재로 만들어 준다.

서양의 해체주의가 동양적 無我의 길과 만나다


김형효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대학시절 열암 박종홍과 프랑스 가톨릭 실존주의자 가브리엘 마르셀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열암은 그에게 거친 사회바깥으로 향하는 투쟁적 의지를 불태우게 했고, 반대로 마르셀은 내면의 부드러운 구원의 진리를 안겨줬다. 이후 ‘안팎으로 행복하려고’ 메를로-퐁티, 베르그송의 사상에 매진했지만 심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행복감을 느끼지 못했다. 박종홍의 향외적 철학과 마르셀의 향내적 철학이 속에서 계속 갈등을 일으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구조주의, 율곡사상 등을 접하면서 그의 사유는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끝없는 여정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의 철학은 “~일 뿐만 아니라, 또한 ~”이라는 이중성의 표현을 띠게 됐다. 김 교수는 “이런 이중성의 어중간한 사유방식이 결과적으로 나의 오랜 우회의 철학적 여정을 쉬게 해줄 수 있는 조그만 나의 집을 발견케 해줬다“라고 고백한다. 그의 양가성의 철학은 곧 ‘해체주의’로 요약되는데, 이것은 모든 철학의 이율배반을 해체시키며, 그 길은 바로 ‘無我의 길’이라고 그는 말한다.


‘유일한 진리’는 없고, 그러한 진리에 도달하는 ‘길’ 자체도 없다고 말하는 정대현 이화여대 교수(철학)는 자기 학문방법론으로 ‘문맥적 지성 담론으로서의 철학하기’를 든다. “인간의 이야기는 결국 공동체의 담론이고 기준, 목표, 의미, 방법, 논리, 윤리, 초월도 담론의 문법 안에서 추구할 수 있다.” 세계는 선택한 언어에 따라, 언어사용자가 처한 문맥에 따라 필요와 관심이 달리 표상되는 국면성의 세계다. 담론으로서의 철학하기는 철학을 언어행위로 본다. 그래서 그는 먼저 ‘한국어로 철학하기’를 시도했다. 이어서 ‘지식’을 탐구했는데 그는 ‘지식은 가족유사적, 다원적 개념이다’라고 말한다. 지식 역시 공동체가 사용하는 개념방식으로 문맥지워진 것이다. ‘다원주의 시대에도 공유적 가치는 필요하고, 가능하다’는 게 요즘 정 교수의 논제이다. 그는 담론적 다원주의라면 공동체 내의 소통이 가능할 것이라는 견해를 펼치고 있다.   


이기상 한국외대 교수(철학)는 철학에서 문제는 이제 ‘한국적인 해석’을 놓고 왈가왈부하는게 아니라고 지적한다.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 생활세계적 배경과 삶의 문법을 아우르면서도 그 독특함이 살아 있게 하는 어울림의 창조적 해석학은 없는 것일까? 이것이 내가 고심하며 매달리고 있는 문제들이다”라고 이 교수는 고백한다. 그는 학문하기가 우리의 생활세계에서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진리 사건 그 자체에 주목해 거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강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 그는 특히 하버마스의 방법론에 주목한다. 하버마스는 존재자와의 관계맺음에서 도구적 관계맺음이나 실존적 관계맺음이 아닌 남들이 함께 하는 ‘사회적 행위’를 강조한다. 하버마스는 사회적 행위가 다름아닌 ‘의사소통행위’며, 이 의사소통행위의 문법인 ‘보편 화용론’이 결국 생활세계의 전영역을 설명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교수는 그간 환원주의적 이해방식을 강조하며 타자에게 발언권을 허용치 않았던 서양철학사를 비판하며 오늘날 지성인들의 학문은 탈근대적 사유에 있다고 강조한다.

이 자욱한 껍집들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


정현기 연세대 교수(문학비평)는 ‘문학’을 ‘베끼’는 일이라고 말한다. “문학은 ‘몬’(사물)과 일을 읽고 그것을 꼴과 크기, 빛깔, 냄새, 그 지닌바 뜻과 격, 힘을 읽는 일을 첫째 목표로 하고” 그 다음은 그것들을 베낀다는 것이다. 비평가인 그는 작가가 베낀 세상에 다시 눈길을 주어 자기 식 다른 말을 덧칠한다. 그는 내가 나를 또는 너와 그를 덮어씌우고 있는 생각의 힘을 ‘포위관념’이라 읽는다. 그가 하는 학문이란 이를테면 소설가 전경린의 ‘황진이’를 놓고 그 속에 황진이를 덮어씌우고 있던 질곡의 질긴 포위관념을 드러내려고 많은 이야기와 처지, 놀람과 슬픈 장면을 작가들의 베낌에 따라 다시 베껴보는 것이다.


학자들이 담담하게 써내려간 학문하기의 방법은 그가 걸어온 인생의 길과 닮아 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방황의 기록이기도 하며, 진리의 기약없음에 대한 덧없음의 표정으로 자욱해져 있다. 그러나 박이문 교수의 말마따나 허무 속에 행복의 집을 짓고 있는 것이 학자의 실존이지 않을까.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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