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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초라해진 전공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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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진철 경북대
  • 승인 2005.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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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진철/ 경북대 사회학

독일유학에서 돌아와 강단에 선 것이 90년 초였으니까 이제 대학에서 가르친 지도 15년이 됐다. 15년의 기간은 학자로서든 교수로서든 학문과 교육의 근본 틀을 푸념하기엔 그리 넉넉한 세월은 아니다. 그럼에도 푸념을 늘어놓는 건 그간 우리대학이 겪은 변화가 어느 때보다도 컸기 때문이며, 지방대에서 사회학을 가르친다는 게 원치도 않는 애늙은이를 만든 탓이다.

1993년 김영삼 정권은 집권하자마자 대학설립을 허가제에서 인가제로 바꿨고, 당시 이미 2천년대 대학입학정원을 감축해야 한다는 것은 저출산율로 예고돼 있었다. 그런데도 오히려 대학설립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종합대학만해도 당시 98개에서 지금은 3백여개로 증가했다. 이 이해할 수 없는 폭발 덕분에 고등교육 진학률은 81%이상으로 다른 국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높아졌지만, 전체적으로 대학생의 질은 저하됐으며, 대학 졸업자가 사회적 수요 이상으로 과잉돼 청년실업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그 후폭풍은 수도권보다는 지방대가, 국립보다는 사립대가, 응용학문보다는 순수기초학문이 더 극심하게 받고 있다.

올 봄학기엔 개인적으로 이 위협을 실감했다. 매 봄학기에 개설되는 ‘고전사회학이론’은 사회학의 태두인 마르크스, 베버, 뒤르켐, 짐멜 등의 저서를 다루는 과목으로 사회학에서도 기초과목이다. 그런데 작년까지만 해도 40명을 넘던 수강생이 갑자기 10명대로 줄어들었다. 이 과목은 90년대 초만해도 수강생이 80여명을 넘었다. 그런데 90년대 말 최소전공 학점제가 도입되고 전공필수가 없어지면서 50~60여명으로 줄더니, 기초학문을 취업 위주로 탈바꿈시킨 전공트랙제가 도입된 올해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그 원인의 일부가 과거 인기에 안주해 변화된 현실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한 본인의 탓도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과거엔 전공필수라는 안전판도 있고 해서 매주 대가들의 저서를 다루고 과제를 내도 학생들은 잘도 해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학생들은 사회문제에 대해 더 이상 관심 없어하고 자신의 취업이나 일신상의 문제만 붙들고 대학생활을 마치는 소아병적인 인간으로 바뀌어갔다.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2∼3년 전부터는 위기의식에서 파워포인트를 도입해 강의의 시청각화를 시도하지만, 학생들의 반응은 이전과 같지 않다. 학생들이 취업과 관련된 과목으로만 몰리는 현상을 보면서 기초과목을 가르치는 한 사람으로서 학생을 유혹하기 위한 갖가지 방법을 개발해보지만 별 무소득이다. 나만이라도 학생들의 얄팍한 처세술을 좇지 말고 학문의 정체성을 지켜야지 하는 다짐을 하다가도 이번처럼 수업에 학생이 줄어드는 경험을 하게 되면 푸념이 절로 나온다.

학생들이 영어수업을 선호하는 것도 아니다. 원어민이 하는 강의도 인기가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학생들은 그저 기업들이 토플이나 토익점수를 요구하니까 그것에 맞출 뿐이다. 수업에서 한국의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 등 흥미를 북돋워 보지만, 소위 ‘빡시게’ 공부해야 하는 과목은 대학원생들조차 기피한다. 교육부가 강행하는 대학의 구조조정도 대교협이 내놓는 대학간 학과평가도 ‘고전사회학이론’의 수강생을 늘려줄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대학이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해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기초학문을 가르치는 학자들이 연구나 수업을 게을리 해서 일어나는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지방대학은 수도권 대학보다 상황이 더 나빠서 이제는 학생수의 격감으로 대학원의 유지조차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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