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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 교수들의 때늦은 로스쿨 도입 반발, 왜?
법학 교수들의 때늦은 로스쿨 도입 반발, 왜?
  • 이민선 기자
  • 승인 2005.03.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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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논의에 법학교수 배제…“법학 교육 다 죽는다”

사법개혁추진위원회(이하 사개추위)가 로스쿨 설립 세부 추진계획까지 내놓은 시점에서 법학 교수들이 ‘봉기’를 준비하고 있다. 오는 15일에는 ‘법학교육개혁을 위한 전국교수연합’(이하 법교연)이, 22일에는 ‘법학교육 정상화 추진 교수협의회’(이하 법추협)가 출범될 예정이다. 웬만해서는 단체행동에 나서지 않는 교수사회의 특성을 볼 때 이례적인 일이다.

◇어떤 단체인가? 법교연의 모태는 전국법과대학장협의회다. 법과대학장을 중심으로 로스쿨 도입에 대한 문제점을 의논하던 중 논의 주체를 평교수까지 확대해, 전국적인 연대 기구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전국법과대학장협의회 회원교 97개교, 전부가 참여한 것은 아니다. 각 지역마다 제법 덩치가 크다고 할 수 있는 국립대와 사립대 52개교만이 참여했고, 학교마다 법과대학장을 포함한 교수 1~3인이 법교연 준비위원회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렇게 모인 교수들은 모두 1백42명.

이관희 경찰대 교수(법학)가 주도하는 법추협은 인터넷법학회에서 시작돼, 현재 각 지역의 소규모 대학 법대 교수들을 중심으로 의견을 모아가는 중이다. 오는 22일 법추협 발기대회 전까지 5백명 이상의 교수로부터 법추협 의견에 동의하는 동의서를 받는 것을 목표로 뛰고 있다.

◇왜 반발하는가? 현재 추진되고 있는 사개추위의 로스쿨안에 대해 두 단체가 반발하는 이유는 서로 다르다. 법교연의 경우 ‘로스쿨 정원 증가’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현재 사법개혁위원회에서 논의된 로스쿨 정원 1천2백명으로는 사법개혁이 요원하다는 것이다. 최소한 3천명은 돼야 제대로 된 사법개혁을 이룰 수 있다는 논지를 펴고 있다. 그래서 로스쿨 정원 증가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대한변호사협회와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정원 증가 없는 로스쿨 도입이라면 반대도 불사하겠다는 것이 법교연 측 입장이다.

반면, 법추협의 안은 현재 추진하고 있는 ‘미국식’ 로스쿨 자체를 반대한다. 학부 졸업자가 3년의 로스쿨 과정을 밟는다고 해서 전문변호사가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현재의 법학교육체제를 최대한 활용할 수 없는 낭비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로 인해 법추협 측에서는 영국식으로 법조인을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4년간의 학부교육을 받은 후 5지선다형의 사법시험을 치르고, 직역별로 2년간의 수습기간(1년은 사법연수원 수료)을 거치면 법조인으로 인정하는 방식으로 돼야 한다는 것이다. 법조인력 선발은 2~3천명 선으로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흥미롭게도 법교연과 법추협의 ‘봉기’ 이유가 달라 보이지만, 이렇게까지 발끈하게 된 데에는 공통적인 이유가 있다. 바로 로스쿨 도입 논의를 하는 데 있어서 실질적으로 법학교수들이 참여하지 못해왔다는 것이다. 법교연 설립을 주도하고 있는 이승호 건국대 교수(법학)는 “로스쿨 도입으로 법학교육이 전면적으로 바뀌는 데도 도입 논의에서 사실상 법학교수들은 배제됐다”라고 지적한다. 이관희 교수도 “사개위에 21명의 위원이 들어갔는데 단지 3명만이 법학교수였고, 그마저도 전국 법학교수를 대표한 사람들이 아니었다”라고 말한다.

두 단체 모두 법학교수 배제로 가장 피해를 본 것은 ‘법학교육’이라고 한 목소리를 낸다. 즉 실무 법조인들만이 대거 참여하는 바람에, 로스쿨 도입 후 법학교육의 변화에 대한 손익계산, 또는 도입 결정 후 법학교육의 방향 등에 대해서는 곰곰이 생각할 기회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사개위에서 사개추위로 바통이 넘어온 이후에도 별반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사개추위 위원 20명 중 교수는 단 4명뿐이다.

이러한 주장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지적이다. 실제로 사개위에서 로스쿨 논의를 한창 진행시킬 때 민교협 등의 교수단체에서 로스쿨이 법학교육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으나, 이러한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늦은 ‘봉기’? 두 단체의 반발이 설득력 있는 이유를 갖고 있지만, 이미 로스쿨 도입 세부 일정까지 나온 상황에서는 때늦은 감이 있다. 이에 대해 이승호 교수는 “자칫 교수들이 이익단체처럼 보이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는데, 변호사단체의 압력에 의해 사개위 다수안이 나온 이상 참을 수 없었다”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관희 교수는 오히려 같은 법학교수들에게 칼날을 겨눈다. 이 교수는 “책임있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법과대학들이 로스쿨 도입에 대해서 심도있는 논의를 하자고 말할 줄 알았는데 아무도 이야기를 안했고, 그래서 지금까지 참다가 말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사개추위는 오는 4월까지 로스쿨 설립과 관련한 법률초안을 마련하고, 5월에 공청회를 개최할 예정이어서 로스쿨을 둘러싼 격론이 다시 한번 예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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