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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대학개혁 3: 프랑스편
세계의 대학개혁 3: 프랑스편
  • 홍성민 동아대
  • 승인 2005.03.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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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재정 부담돼 등록금 받겠다” …우파적 교육정책 뒤에 미국?

무상교육의 꿈을 실현하는 프랑스는 요즘 홍역을 앓고 있는 중이다. 교육의 공공성에 균열이 가고 있다는 우려가 프랑스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 겨울 프랑스를 방문했던 홍성민 동아대 교수는 최근 프랑스 교육에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시장주의 도입을 둘러싼 뜨거운 논쟁을 전하고 있다. <편집자>

 홍성민 (동아대·정치학)

프랑스가 교육개혁의 문제를 두고 몸살을 앓고 있다. 고등학생들의 시위로 파리시가지가 넘쳐나고 있으며, 국회에서는 연일 교육관련 정책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프랑스 교육부 장관이 국회에 제출한 교육개혁안의 초점은 지금까지 프랑스가 지향해 왔던 공교육의 틀을 점차 수정해 교육부분에서도 수익성의 논리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학교미래를 위한 기본법률안’은 바칼로레아의 시험과목을 기존의 12개에서 5-6개로 축소하고, 졸업 전에 1회 실시하던 관행을 깨고 2007년부터는 수시로 시험을 치루는 이른바 지속평가제를 도입하는 것과 평소 학업성적의 비율을 20%정도 반영하는 내신제도의 도입을 골자로 하고 있다.

우파정권이 내세운 이러한 교육정책의 기저에는 프랑스의 경쟁력 낙후와 재정의 악화라는 경제적 문제가 깊게 뿌리 박혀 있다. 국민경제에서 교육예산이 차지하는 부분은 국방비 다음으로 2위이다. 그러나 프랑스 대학에는 강의에 필요한 기본재료도 준비돼 있지 못하며, 시설은 이미 수십 년 전 것을 그대로 쓰고 있다. 그래서 재정적자를 막고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대학의 운영을 시장논리에 일정부분 맡기겠다는 것이다.

대학 운영에 시장주의 도입

그런데 교육은 시민주체의 권리이며, 그래서 경제논리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공화주의적 전통을 지켜온 프랑스에서 이러한 교육개혁정책은 큰 반발을 불러 올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등록금을 받는다거나, 바깔로레아의 시험 관문을 인문계와 실업계 등으로 엄격하게 구분하게 되면, 이것은 궁극적으로 교육의 혜택이 빈부격차와 연결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개혁안과 관련해 학생연합 FIDL(federation independante et democratique lyceen)과 교사노조UNL(Union national lyceen)들이 내세우는 반대논리는 수시시험제도가 시행되면 경제적으로 유리한 계층의 학생들이 좋은 성적을 받게 될 것이며, 이것은 자연스럽게 계급별, 인종별 차별효과를 유발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특히 20%정도의 내신성적을 반영하는 경우, 일반고등학교와 기술계나 직업 고등학교의 적용비율이 달라지게 되는데, 결국 이렇게 되면 상층계층과 하층계층간의 구별짓기 효과가 고착화되고 계급간의 재생산이 대를 이어 지속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번에 파리를 다녀오면서 충격적인 사실을 하나 알게 됐다. 프랑스에서 우파정책을 개발하고 필요성을 선전하는데 적극적인 학자군이 있으며 이들은  재단의 후원을 얻어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생시몽(Saint-Simon)재단이 10년쯤 전에 설립됐는데, 이곳에서 연구비와 정책활동비가 지급된다는 소문을 들었다. 여기에 참여하는 대표적인 학자로는 뤽 페리(철학), 피에르 로장발롱(정치사상), 자끄 퓨레(역사) 등이다.

그런데 충격적인 사실은 생시몽 재단의 뒷돈이 프랑스의 유명한 기업가들로부터 흘러오고 있다는 것이다. 다농이나 생 고뱅과 같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재벌기업가들이 재단의 후원을 맡고 있는데, 이들은 주로 미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미국식 가치관을 통해서 프랑스의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을 종식시키는 것이 진보적인 사회운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프랑스와 같이 지적으로 자신의 논리를 개발하고 있는 나라에서 마저 미국의 자본이 학계를 간접적으로 장악하고, 미국식 세계화 정책을 홍보하는데 지식인들을 이용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 일러스트: 김차준

사실 미국의 돈이 프랑스에 건너와 학계를 움직이는데 앞장섰던 대표적인 사람은 바로 레이몽 아롱이다. 2차 대전 이후 CIA의 돈이 흘러 들어와 레이몽 아롱과 그 주변의 우파지식인들에게 전달됐다는 후문이다. 물론 아롱 자신이 이 돈의 출처를 알았는지에 대하여는 확신할 수 없지만, 결국 이 돈을 바탕으로 프랑스에서는 우파세력이 결집되는 계기가 됐고, 현재 아롱 연구소나 생시몽 재단 연구소 등이 그 맥을 이어 받고 있다. 최근에 좌파 지식인 그룹에서 레이몽 아롱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지는 이유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프랑스의 교육개혁 논쟁과 그 이면에서 활동하는 지식인들의 역할을 바라보면서 한국의 교육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두 가지 사항을 지적하고 싶다. 첫째는 한국의 교육이 당면한 현실은 프랑스가 당면한 시장주의 논리가 적용되기에는 아직도 공공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물론 교육의 효율성이나 경쟁력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효율성 얘기만 나오면 신자유주의적 시장주의라고 매도하는 교육운동의 진보세력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한국교육의 현주소는 교육을 통해서 신분적 질서가 재생산되고, 경제적 부를 가진 자와 못가진 자가 누리는 교육혜택의 수준이 지나치게 차별화되고 있어, 개인이 가진 저마다의 소질을 발휘할 기회가 점차 줄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더 많이 공공성이 강조돼도 시장주의적 요소가 가미된 프랑스 교육현실보다 아직도 우측에 위치하고 있는 셈이다.

둘째는 한국에서 관료엘리트나 지식인들의 양성과정 자체가 지나치게 미국식으로 편중돼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교육을 인력관리의 측면에서 인식하게 된 계기는 1950년대 미군정 이후이다. 인력관리라는 단어자체가 군사용어이며, 그 이후에는 경제적인 차원에서 인력관리라는 말을 사용해 왔는데, 그 전통이 현재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나는 이처럼 왜곡된 교육관이 미국식으로 주입되고 길들여진 경제 관료와 학계의 잘못된 관행에서 지속적으로 재생산돼 왔다고 꼬집고 싶다.

“한국교육, 공공성 강조해도 프랑스보다 우측이다”

교육부총리의 취임일성이 ‘기업에서 필요로 하지 않는 지식은 대학에서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연설이었다는데, 이러한 발상은 세상을 온통 미국식 발전논리와 근대화의 정치논리로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이렇게 놓고 보면 미국으로부터 한국학문이 자립해야 하는 필요성은 경제나 군사영역 못지않게 매우 중대하고 시급하다고 하겠다. 생시몽재단을 통해서 은밀하게 미국의 소프트 파워(soft power)가 전달되는 프랑스와는 달리,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지식 엘리트들이 너도 나도 미국대학으로 달려가고 있으니 말이다. 미국유학이라는 직접투자를 통해서 지식인들의 특권이 보장되고 있는 상황에서 克美나 用美라는 말이 우습게 들린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의 교육개혁은 지식의 생산과 유통과정을 혁신해 일상생활의 가치관을 바꾸는 문화운동과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음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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