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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현상과 능력주의
이준석 현상과 능력주의
  • 정영인
  • 승인 2021.07.19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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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정영인 논설위원 / 부산대 의학과 교수·경암교육문화재단 이사

 

정영인 논설위원 / 부산대

인간의 본성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다. 물론 이기적이라고 해서 항상 자기 이익만을 쫓아 움직인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종국적으로 인간의 행위는 자신의 욕구나 욕망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타적 행위도 일종의 고차적인 이기적 행위의 반동형성일 수 있다. 자본주의 경제도 인간의 행위가 이기적 동기에서 결정된다는 점을 전제하고 있다. 사회를 추동하는 힘은 다름 아닌 인간의 욕망이다. 그런 점에서 개인이 모인 집단 사회에서 개인의 이기적 행위는 사회적 갈등의 핵심적 요인이다. 공정(公正)은 사회적 갈등을 방지하거나 해소하는 도덕적 당위다. 정치는 공정이라는 도덕적 당위에 의거해 집단내 혹은 집단 간의 갈등을 최소화해서 정의를 구현하는 행위다. 

평등한 기회, 공정한 경쟁, 정의로운 결과는 문재인 정부 출범의 핵심 슬로건이다. 이 슬로건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으로 초래된 내로남불 논쟁에 휘말리면서 오늘날 한국사회를 논하는 담론의 화두로 떠올랐다. 공정의 사전적 의미는 공평하고 올바름이다. 도덕적 당위를 일컫는 이 말을 한국사회에서는 주로 경쟁에 국한해서 사용한다. 그렇다 보니 경쟁력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능력주의에 기반을 둔 절차와 형식에서의 공정이 강조된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능력주의에 기반한 공정 경쟁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정치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공정한 경쟁의 출발선은 과연 존재하기나 할까. 비록 경쟁의 출발선이 같다고 해서 그 경쟁을 통해 선택된 결과는 과연 정의로울까. 경쟁에서 선택되지 못하거나 선택되지 못할 기회조차도 없었던 데 대한 공정성은 어떤 것일까.

이준석은 누구나 교육을 통해 공정한 경쟁의 출발선에 설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고 말한다. 그의 꿈은 현실에서 구현될 수 없는 희망 사항일 뿐이다. 교육을 받고 싶어도 원초적으로 받을 수 없는 환경에 처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공정한 절차와 형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경쟁의 대열에 끼일 기회조차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공정 경쟁이 과연 정의를 담보할 수 있을까. 변호사 시절 노무현은 한 강연에서 그 어려운 그리스-로마 신화의 신들의 이름을 줄줄 외면서 그런 머리를 가진 사람이 대학 못 가는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인가라고 일갈했다. 송기인 신부는 가슴에 맺힌 게 많다고 생각하고 노무현 변호사를 성당에 나오라 했더니 성당에 나가지 않아도 착하게 살겠다 해서 그에게 가톨릭 영세를 줬다는 일화가 있다.

능력주의(meritocracy)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보상해주는 사회를 추구하는 정치철학이다. 누구에게도 차별적 특혜를 주지 않고 사회적 배경이나 지위에 상관없이 오로지 능력에 따라 분배하는 것을 공정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능력과 무관한 차별이 극심한 한국사회에서 매력적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경쟁에 기초한 능력주의는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기회의 격차를 촉진해서 오히려 사회를 양극화한다. 능력주의란 말을 처음 사용한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영도 완전한 능력주의가 실현된 사회는 승자독식과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무자비하고 암울한 디스토피아와 같다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젊은 세대들은 왜 이준석의 능력주의에 환호하는 것일까. 한국사회는 연고주의와 온정주의가 지나치게 작동하는 사회다. 그런 사회는 편법이나 반칙이 횡행해서 실력이나 능력에 따른 정당한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능력주의는 불평등을 심화시키지만 최소한 경쟁의 절차와 형식에서 공정성은 담보할 수 있다. 젊은 세대가 능력주의에 환호하는 이유가 아닐까. 한국사회의 곳곳에 배어있는 차별적 요소를 제거하고 반칙을 없애 형식적 기회 평등만이라도 이루고자 하는 염원의 표현일 것이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는 원초적으로 평등한 상황에서 소득이나 부를 똑같이 분배하지 않더라도 불평등한 사회적·경제적 분배는 사회구성원 가운데 가장 어려운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야만 정의롭다고 주장한다. 이준석을 비롯한 능력주의자들이 깊이 마음속에 새겨야 할 부분이다. 

정영인 논설위원
부산대 의학과 교수·경암교육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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