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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기의 호모 루덴스
냉전기의 호모 루덴스
  • 김성희 숭실대 한국기독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 승인 2021.07.22 0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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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의 North Face 5
사진=위키피디아
사진=위키피디아

1980년대 초반 한국에서는 ‘루빅스 큐브(Rubik’s Cube)’라는 헝가리에서 온 완구가 인기를 끌었다. 루빅스 큐브는 1970년대 중반 헝가리 부다페스트 응용예술공예대학의 교수였던 루빅 에르뇌(Ernő Rubik)가 고안해낸 정육면체의 퍼즐 장난감이었다. 이 완구는 1975년에 헝가리에서 매직 큐브(Magic Cube)라는 이름으로 처음 특허를 얻고, 1977년에 헝가리의 완구점에서 팔리기 시작했다. 1980년에는 해외에 수출되기에 이른다. 

한국에 이 퍼즐장난감이 들어오기 시작한 건 1981년 즈음이었던 것 같다. 1981년 10월에는 제1회 루빅스큐즈 경연대회가 서울 명동에 있었던 엘칸토예술극장에서 개최된다. “7세 꼬마부터 67세 노인까지, 가정주부로부터 미국인 선교사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참가한 이 대회를 당시의 언론은 꽤 자세히 보도했다. 사람들은 이 장난감이 동유럽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이념의 문제는 이념의 문제였을 뿐이다. 

물론 국내 언론은 단순한 유희일 수 있는 이 퍼즐놀이를 국가간 경쟁의 담론으로 가두기도 했다. 어쩌면 그런 경쟁의 형식이 이 장난감에 관한 관심을 더 높였을 수도 있다. 명동에서 열렸던 제1회 루빅스큐브 대회에서는 18세의 고교생이 42초의 기록으로 우승했고, 2등은 초등학교 4학년 소년이 차지했다. 1981년 10월 6일 <조선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1등의 기록은 세계기록의 영국보다는 3초 뒤지지만, ‘숙적’ 일본보다는 10초나 앞선 것이었다고 한다.

현재 루빅스 큐브 세계 랭킹 1위와 2위는 모두 중국인이 보유하고 있는데, 1980년대 초반만 해도 중국 공산당 당국은 이 퍼즐완구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1982년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맞춰질 듯 맞춰질 듯 맞춰지지 않아 사람의 애만 태우게 하고 시간낭비”만 시킨다며, 루빅스 큐브가 “모든 불행의 근원”이 되고 있다고 이 완구의 중독성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던 것이다.

하지만 루빅스 큐브를 비난했던 <인민일보>도 이 퍼즐의 “교육적 가치”는 인정했다. 동서간 체제경쟁이 국가간 기술개발과 두뇌계발의 경쟁으로 발전하고 있었던 시기, 동유럽에서 발명된 루빅스 큐브는 세계 각국에 유통되며 “교육적 가치”를 지닌 완구로 인식됐던 것이다. 미국에서도 이 장난감은 큰 인기를 얻었는데, 경연대회가 각 주(州)에서 열리기도 했고(지금도 열린다), 텔레비전 등 매체를 통해 만화영화 등 다양한 형태로 재생산되기도 했다. 

국내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루빅스 큐브는 국가의 과학인재 양성 담론과 맞물려 두뇌계발의 도구로 받아들여졌다. 1980년대는 주산, 바둑 등이 어린 학생들의 두뇌계발에 도움이 된다고 말해지던 시기였다. 실제로는 유희에 불과하지만, 주판을 이용해 계산을 한다든가, 흑백의 돌을 쥐고 바둑을 한다든가, 큐브를 돌려 맞추면, 어린 학생들의 머리가 좋아진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긴, 놀이가 머리를 좋게 만든다는 것은 상식에 가까운 사실 아닌가?

그래서 루빅스 큐브는 단순한 완구가 아니라, 동유럽 기술력의 표상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1983년 10월 19일 <매일경제>의 보도에 따르면 체코에서 발명된 소프트콘택트렌즈와 함께 헝가리의 루빅스 큐브를 언급하며, 동유럽의 창의력이 소련의 그것보다 앞선다고 말할 정도였다.

루빅스 큐브 이후 두뇌계발 및 학습능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완구는 주기적으로 등장하곤 했다. 가령 지난 2017년에는 피젯스피너(fidget spinner)라는 완구가 집중력, 즉 학습능력을 높여주고, ADHD의 치료와 개선에 효과가 있다며 광고되며 판매되기도 했다. 이 완구는 평면의 원형 받침대를 중심으로 세 개의 구멍이 있는 일종의 팽이인데, 모바일 게임인 ‘포켓몬 고’와 함께 당시 미국 청소년들에게 인기를 끌던 상품이었다. 하지만 2017년 하반기에 이르면, 미국의 많은 학교에서 이 완구는 금지된다. 수업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다. 루빅스 큐브든 피젯스피너든 두뇌계발과 학습능력 향상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을 수 있다. 아니,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하지만 인간은 손과 눈을 가만히 둘 수 없는 경망스러운 동물, 즉 유희하는 동물이 아니었던가! 

하지만 이러한 유희도 냉전기 루빅스 큐브처럼 국가 경쟁의 담론에 들어오면 뭔가 진지한 게임이 되어버리고 만다. 

김성희
숭실대 한국기독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현재 숭실대 한국기독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로 있으면서, 연세대 언더우드국제대학, 고려대 국어국문학과에서 한국문학과 영어논문쓰기 등을 가르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문학이론, 북한문학, 동아시아 냉전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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