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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T와 포드주의
모델 T와 포드주의
  • 오창섭  건국대 교수
  • 승인 2021.07.22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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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파노라마 8_ 오창섭 건국대 교수

얼마 전 로버트 레드퍼드가 감독한 흐르는 강물처럼를 보았다. 시카고대학 영문과 교수였던 노먼 맥클레인(Norman Maclean)의 자전적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플라이 낚시 장면으로 유명하다. 전에 보았던 영화를 다시 보는 것은 여러 가지로 매력적인 일이다. 이전 관람에서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내용이나 장면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그런 매력 중 하나다. 이번에 흐르는 강물처럼을 다시 보면서 거기에 등장하는 자동차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1920년대 전후 미국 북서부 몬태나주의 한적한 산골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에서 자동차는 문명의 이기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연의 일부처럼 보였다. 이러한 느낌은 영화 속 포드의 모델 T가 그만큼 삶에 녹아든 모습으로 그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 나오는 포드 모델 T. 디자인 분야에 떠도는 거창한 이념이나 사용자의 필요가 디자인을 결정한다는 낭만적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 나오는 포드 모델 T. 디자인 분야에 떠도는 거창한 이념이나 사용자의 필요가 디자인을 결정한다는 낭만적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모델 T가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906년의 일이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1908년, 미국인들의 삶을 바꾼 모델 T가 모습을 드러냈다. 출시 다음 해인 1909년 포드는 앞으로 포드사에서는 모델 T만 만들 것이라고 선언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기이한 그의 선언은 대중을 위한 자동차를 만들어 누구나 자동차를 타고 다닐 수 있게 하겠다는 자신의 꿈을 담은 것이었다. 자동차는 고가의 제품이었다. 따라서 누구나 소유하고 이용하려면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해야 했다. 포드는 이를 생산방식의 개선을 통해 이루어냈다. 

1913년 포드사는 부분적으로 컨베이어 시스템에 따라 제품을 만드는 조립방식을 도입했다. 1914년에는 모델 T의 전체 제작이 그 방법에 따라 이루어졌다. 이 방식은 도살된 소를 이동하면서 순차적으로 고기를 발라내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착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체가 아닌 조립이라는 면에서 포드의 컨베이어 시스템에 의한 라인 생산방식은 푸줏간의 작업 프로세스를 거꾸로 돌린 것이라 할 수 있다. 포드의 공장에서 조립라인을 따라 배치된 노동자들은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자기 앞을 지나가는 내용물의 특정 부분을 조립함으로써 자동차를 만들어냈다. 생산효율을 높여 제작 단가를 낮춤으로써 모델 T의 가격을 떨어뜨리는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한 이 방식은 20세기 상품의 민주화를 가능하게 했다. 

라인 생산방식에 따르면 숙련된 노동자가 아니어도 복잡한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래서 포드의 하이랜드 파크 공장에는 수천 명의 미숙련 노동자들로 채워졌다. 그중에는 유럽에서 이주해 온 이들도 다수 있었다. 그들이 어디에서 왔건 무엇을 하다 왔건 작업이 세분되어 조직되었기 때문에 누구나 짧은 시간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익힐 수 있었다. 이것은 그중 어떤 조립 일을 하던 노동자가 그만두더라도 쉽게 그 자리를 채울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하이랜드 파크 공장에서의 노동은 인간의 리듬이 아닌 기계의 리듬에 맞춰 단순 작업을 반복하는 기계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이전과 다른 성격의 노동이었다. 그런 방식의 노동을 처음 접해보는 노동자들은 당황했고,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 어려움은 380%라는 높은 이직률로 나타났다. 하지만 포드는 임금을 두 배로 올림으로써 노동자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며 조립 라인에 앉힐 수 있었다. 

컨베이어 벨트에 따라 움직이는 부품들의 조립을 통한 생산성 향상만으로 포드주의를 설명할 수는 없다. 그것은 재료와 부품의 공급, 하나의 기계와 같이 돌아가는 공장, 노동자들의 기계적 몸놀림, 쏟아져 나오는 같은 제품들, 그것들의 판매와 대량소비, 그리고 그러한 제품들이 만들어내는 대중적 생활과 문화를 포함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생산 영역에서의 포드주의는 소비 영역에서 대중 소비사회의 출현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그것은 생산과 소비의 주체가 분리되었던 이전 시대와 달리, 생산을 담당하는 노동자가 곧 소비자가 됨으로써 가능했다. 오늘날 너무도 당연한 이러한 구조는 포드주의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1913년 새로운 생산방식을 통해 생산의 효율을 달성한 이래로 포드의 모델 T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다. 1920년대 초 포드 자동차의 시장 점유율은 50%를 넘어섰다. 하지만 1920년대 중반에 이르러 포드주의의 생산방식은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나의 모델만을 잘 만들어 미국 대중들에게 자동차를 싼값에 공급하겠다는 포드의 기획은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1920년대 중반에 이르러 경쟁자들의 움직임은 포드의 아성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1927년 제너럴 모터스는 45%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며 포드를 추월했다. 제너럴 모터스는 매년 새로운 모델을 출시하며 가구당 1대꼴에 다다른 포화상태의 자동차 시장을 공략했다. 그해 포드는 모델 A로 생산 차종을 바꾸었다. 1909년의 선언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이제 자동차가 이전과는 다른 논리를 따르는 산업영역이 되었음을 알리는 움직이었다. 1929년 대공황 이후 자동차는 이윤 확대를 위한 산업자본주의의 논리와 소비를 통해 사회적 위치와 정체성을 확인받으려는 대중의 욕망이 관계하는 매개가 되었다. 

모델 T의 성쇠는 디자인 분야에 떠도는 거창한 이념이나 사용자의 필요가 디자인을 결정한다는 낭만적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오창섭 
건국대 교수(예술디자인대학)

디자인연구자로 한국디자인학회 최우수 논문상(2013)을 수상했으며,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전시 「안녕, 낯선 사람」(2017)와 DDP디자인뮤지엄의 「행복의 기호들」(2020)을 기획했다. 저서로 『내 곁의 키치』, 『이것은 의자가 아니다: 메타디자인을 찾아서』, 『인공낙원을 거닐다』, 『9가지 키워드로 읽는 디자인』, 『근대의 역습』, 『우리는 너희가 아니며, 너희는 우리가 아니다』 등이 있다. 현재 건국대  ‘메타디자인연구실’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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