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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북태평양 고기압의 이상 확장·변동이 원인
폭염, 북태평양 고기압의 이상 확장·변동이 원인
  • 손석우
  • 승인 2021.07.16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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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역대급 '마른 장마'가 두렵다

장마가 사라진 사이, 폭염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7월 1일 첫 폭염 특보 이래 연일 전국적으로 폭염 특보가 발령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 시행으로 증가한 재택근무만큼, 가정용 냉방기기 주문도 폭증하고 있다고 한다.

한 달 전만 해도 급작스런운 폭염을 예상치 못했다. 지난 해 역대급 장마에 시달렸던 탓인지, 언제 장마가 시작할 지에 관심이 집중됐다. 7월 초 중국에서 발달한 저기압이 한반도로 접근하면서 장마전선을 끌어 올리자, 드디어 장맛비를 염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장마전선이 남하하자 이제는 무더위를 걱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장마전선이 사라지면서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폭염으로 인한 피해는 전 세계적이다. 사진=픽사베이

짧은 장맛비를 내리고 남쪽으로 내려간 장마전선은 도통 북상할 기미가 없다. 심지어 두 갈래로 나뉘어, 중국 북동부와 일본 동부에만 잔뜩 비를 뿌리고 있다. 만약 장마전선이 이대로 사라진다면 그리고 일본 동남쪽에 자리잡은 북태평양 고기압이 북상한다면, 올 여름 장마는 이것으로 끝날 수도 있다. 어쩌면 작년과 정반대로 역대급 마른 장마가 기록될지 모른다. 그리고 비가 내리지 않는 날이 많아지는 만큼 폭염이 빈번해 질 것이다. 

폭염은 이미 6월부터 미디어에 등장했다. 먼 나라 캐나다와 미국 이야기였다. 6월부터 비 한 방울 없는 가혹한 폭염이 북미 서부를 덮쳤다. 7월에 들어서 일부 지역에서 한낮 기온이 섭씨 50도를 넘어섰다. 호수는 말라 버렸고 국립공원은 산불에 휩싸였다. 연안의 해조류가 폐사하고 다수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폭염·폭우 매년 역대 기록 갈아치워
폭염 1∼5위, 1994년 제외하고 모두 2010년대 발생
국지적인 대기운동과 이로 인한 지형 영향도 폭염 초래

수 주간 이어진 북미 폭염은 ‘열돔’ 현상 때문이었다. 말그대로 뜨거운 공기로 가득 찬 돔(dome)이 만들어진 것이다. 열돔 현상은 강력한 고기압이 한자리에 오래 머물면서 발생한다. 고기압은 보통 하강 기류를 동반하기 때문에 구름이 잘 생기지 않는다. 구름이 없다 보니 한낮 공기는 강렬한 햇볕에 뜨겁게 가열된다. 그리고 하강 기류로 대기가 안정되다 보니, 이 공기는 주위 공기와 잘 섞이지 않는다. 공기는 계속 데워지지만 정체되다 보니 뜨거운 공기덩어리가 돔 형태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반도 폭염도 종종 열돔 현상을 동반하다. 하지만 그 특성은 북미와 다소 다르다. 실제로 7월 12∼13일 폭염 기간, 한반도 상공에 강한 정체 고기압은 없었다. 대신 중국에서 발달한 저기압과 일본 남동쪽에 치우친 북태평양 고기압 사이로 뜨거운 공기가 한반도로 유입됐다. 이 뜨거운 공기는 남중국해를 통과하면서 다량의 수증기를 머금었다. 이로 인해 지역에 따라 간헐적인 소나기가 발생했다. 

한반도 폭염은 일반적으로 북태평양 고기압의 이상 확장으로 설명된다. 보통 장마가 물러나면 강한 무더위가 찾아오는데 이 무더위는 태풍이 북상할 때까지 종종 오랜 기간 유지된다. 이 무더위가 곧 폭염이다. 보통 장맛비는 제주도를 거쳐 남부지방 그리고 중부지방으로 서서히 북상한다. 이를 결정하는 것이 북태평양 고기압이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충분히 확장해 비구름을 한반도 북쪽으로 밀어내면 사실상 장마가 종료된다. 이 때 한반도 전역은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을 받아 구름 한 점 없는 무더위가 시작된다.  

폭염에 의해서 온열질환이 발생할 수 있어 충분한 휴식과 물 섭취가 중요하다. 사진=기상청 ‘폭염 대응 요령’ 유튜브 동영상 캡처

문제는 북태평양 고기압의 확장 형태와 시기가 매년 다르다는 점이다. 일례로 1994년 폭염은 태풍의 영향으로 북태평양 고기압이 한반도 부근으로 급격히 확장하면서 시작했다. 2018년 폭염은 때 이른 북태평양 고기압의 이상 확장이 원인이었다. 평소와 달리 북태평양 고기압이 강하게 발달했고 일찍 북상했다. 때마침 강하게 발달한 티베트 고기압이 한반도 동쪽으로 확장하면서 폭염을 도왔다. 하층부터 상층까지 고기압이 발달한 것이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전지구적 현상이라면 다소 국지적인 대기 운동도 폭염을 초래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지형에 의한 폭염이다. 여름철 영동에서 영서지방으로 바람이 불면, 습한 공기가 태백산맥을 타고 오르다 영동지방에 비를 뿌린다. 비를 내린 후 건조해진 공기는 태백산맥을 타고 내려오면서 영서지방 기온을 급격히 상승시킨다. 반대로 영서에서 영동지방으로 바람이 불면 비슷한 원리로 영동지방에 폭염이 발생할 수 있다. 

올 여름 폭염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그리고 어떤 형태로 전개될지 아직 예단할 수 없다. 수 주간 유지된 북미 폭염처럼, 장기간 폭염의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폭염으로 기록된 2018년 여름, 7월에서 8월에 걸쳐 전국적으로 29.2일 동안 폭염이 발생했다. 평소 폭염 일수가 8.5일 내외인 점을 감안한다면, 3배가 넘는 장기간의 폭염이 전국 뒤덮었다. 반면 비가 내린 날은 고작 19.3일로 역대 가장 적었다. 

지난해 같이 폭염이 적었던 해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장기 추세를 본다면 한반도 폭염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가장 강력했던 폭염을 나열한다면 1위에서 4위까지 1994년을 제외하고 모두 2010년대에 발생했다. 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1위에서 5위까지 열대야가 많았던 여름은, 1994년을 제외하고 모두 2010년대에 발생했다. 그만큼 무더운 낮과 밤잠 설치는 밤이 최근에 빈번해 진 것이다. 이와 같은 추세는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가까운 미래에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역대급 폭염이 발생한다고 해도 그다지 놀랍지 않은 이유이다. 

안타까운 점은 폭염이 빈번해지는 것과 동시에 폭우도 빈번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8년 여름이 최악의 폭염으로 기록된 반면, 2020년 여름은 최악의 장마로 기록되었다. 한해 걸러 폭염과 폭우가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각각의 폭염과 폭우는 매번 역대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매 10년간 통계를 살펴보면 폭염과 폭우 모두 지난 50년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구온난화가 양 극단의 날씨를 계속 증가시키고 있는 것이다. 

올 여름 폭염, 단지 새로운 기록으로 남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손석우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펜실베니아주립대에서 기상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날씨·기후역학연구실을 이끌고 있다. <조선일보>에 ‘기상인사이드’ 칼럼, <한겨례신문>에 '손석우의 바람'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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