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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에 대하여
자살에 대하여
  • 이지원
  • 승인 2021.07.16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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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 크리츨리 지음 | 변진경 옮김 | 돌베개 | 180쪽

그동안 금기시되던 주제인 ‘우울증’이 최근 한국사회에서 사적·공적 담론의 장으로 나온 것처럼 ‘자살’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인 국가다. 뉴스에 나오는 유명인의 죽음부터 ‘사회적 타살’의 사례로 신문 사회면에 제시되는 죽음과 ‘극단적 선택’이라고 모호하게 처리된 죽음, 그리고 이웃에게도 알리지 않고 쉬쉬하는 죽음까지, 자살은 도처에 만연하다. 우울증이나 좌절, 또는 신체적 고통이나 생활고로 인한 죽음,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사회적 불합리함에 항의하는 죽음, 법적 처벌을 회피하기 위한 죽음까지, 그 양상도 매우 다양하다. 자살을 생각하거나 자살을 시도해본 사람들, 자살한 가족과 친구를 둔 사람들까지 감안한다면, 자살이라는 말과 자살 사건은 우리에게 매우 일상적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자살을 일상적 화제로 올리는 것을 금기시한다. 그것은 검색되어선 안 되는 것이며, 정신과 의사와 자살 상담전화 상담사와의 대화에 국한되어야 한다. 자살은 비도덕적이거나 끔찍하거나 슬픔을 불러일으키는 일이기에 우리는 그것에 대해 침묵한다. 

하지만 진실들은 ‘극단적 선택’과 ‘사회적 타살’이라는 말 사이에 있을 것이며, 우리는 그 영역을 좀더 섬세하게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야기해야 한다. 그곳에는 최근 대두되는 ‘안락사’나 ‘자살생존자’의 문제 또한 존재한다.

윤리학과 정치이론을 연구해온 철학자 사이먼 크리츨리의 『자살에 대하여: 죽음을 생각하는 철학자의 오후』는 이러한 자살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한 최적의 책이다. 크리츨리에 따르면, “자살에 대한 무의미하고 상투적인 말 몇 마디”를 제외하곤 “우리에게는 자살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할 언어가 없다.”(37~38쪽)

이 책은 자살의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우리는 왜 자살에 대해 침묵하는가’, ‘자살은 잘못된 것인가’, ‘사람은 왜 자살하는가’, ‘그럼에도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들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자살을 둘러싼 굵직한 윤리적·철학적 쟁점들을 두루 살펴본다. 아울러, “자살하는 사람은 유서에서 항상 누군가에게 이야기한다”(89쪽)며, 작가와 예술가와 일반인들의 다양한 자살 유서에 귀를 기울인다. 『자살에 대하여』는 다른 이야기의 물꼬를 터주며, 자살에 대해 말하는 법과 듣는 법을 배우기 위한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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