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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교수의 내가 본 함석헌 55
김용준 교수의 내가 본 함석헌 55
  • 김용준
  • 승인 2005.03.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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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귀하다, 정신은 죽지 않는다

<물론 지금 세계의 지배권을 쥐고 온갖 수단 방법을 다해서 자기네의 자리를 지키려는 낡은 정치와 싸우려면 많은 희생자를 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희생은 세계를 이 정치에 하는 대로 맡겨 두어서 고등기술로 하는 전쟁을 마음대로 할 때에 있을 그것에 비하면 비례가 못될이만큼 적은 것입니다. 10억년 동안 느리고 느린 길을 걸어 이루 헬 수 없는 희생을 값으로 내며 겨우 해서 오늘날 이 정신이요 도덕이요 하는데까지 간신히 추어 올라온 이 생명이 달팽이를 생각 옅은 싸움꾼들의 장난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멸망에 빠지도록 차마 그냥 보고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면 그만 희생을 못 감당할 것도 아닙니다. 이제 생명은 귀하다는 것 정신은 절대 죽지 않는다는 것, 정의의 법칙은 영원히 살아있다는 것은 몸으로 증거할 때가 왔습니다.
나는 이 때야말로 정말 우리가 우리의 가지는 민족적 개성을 살려서 세계 역사에 이바지할 수 있는 때라고 생각합니다. 속알없는 죽은 입새나 마른 가지에는 서풍이 무서운 죽음의 음성이겠지만 억만년 진화의 총결산과 미래 영원한 발전의 설계를 한데 합한 신비의 말씀인 알갱이를 속에 품고 있는 산 씨ㅇ·ㄹ에게 그것이 신나는 복음입니다. 그렇기에,
겨울이 만일 온다면
봄이 어찌 멀었겠냐!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아직 우리에게 긴 엄동설한인지 모릅니다. 이제 그 사나움이 절정에 오른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한몫할 날이 가까웠을 것입니다. 멀지 않아서 3천년 전에 이사야가 외쳤던 “그날, 창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검으로 낫을 만드는 날”이 올지 모릅니다. 평화의 새역사입니다. 나는 우리가 지루한 고난의 역사에서 닦아낸 우리의 특성은 여기 있다고 봅니다. 교만으로가 아니라 겸손으로, 강함으로가 아니라, 사랑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알갱이요, 또 인류의 알갱이, 따지고 보면 우주 진화의 알갱이입니다. 이것을 부끄럽게 알아서는 아니됩니다. 이것을 살려 써서 생명의 역사를 건져야 합니다. 서풍이 붑니다. 가슴을 헤쳐 마음껏 들어마십시다. > (전집 5: 18~19).


위의 함 선생님의 글을 박정희 군사정권의 유신체제하에서 1973년 ‘씨알의 소리’ 11월호에 발표된 것이지만 아마도 오늘의 우리의 상황에서도 그리고 인류 역사의 영원한 염원의 노래일지도 모른다.


제아무리 만화요 골계이며 또한 으스스한 빙토의 사나운 서풍이 불어닥치는 전두환 정권도 강압의 총칼만 가지고 민중을 다스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1981년 5월 28일부터 6월 1일까지 5일간에 걸쳐 일본의 가미가제(神風)을 모방하여 소위 “국풍 81”이라는 웃지못할 천만명에 가까운 관람객을 동원하는 ‘제5공화국의 태평성대’를 구가하는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1973년 12월 3일 석유파동으로 없어진 아침방송을 7년 6개월만인 81년 5월에 다시 선을 보였으며 1981년 9월 30일 서독의 바덴바덴에서 열린 제 84차 IOC총회에서 88년도 세계 올림픽대회를 서울에서 개최한다는데 성공하였고 연이어 같은 해 11월 26일에 86 아시안게임 유치에도 성공을 거둠으로써 명실상부한 올림픽 공화국의 가치를 높였던 것이다. 1945년 9월 7일 미 군정치하에서 미군사령관 하지중장의 군정포고 1호로 야간통행금지가 시작된지 36년만인 1982년 1월 5일 12시를 기해 전방 접경지역과 후방 해안지역을 제외한 전국에서 해제되었다. 그야말로 일반국민에게는 참으로 오래간만에 맛보는 해방감이었다. 이렇게 한편에서는 일반국민들에게는 태평성대를 구가하는 듯한 모든 표면상의 규제를 풀어가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반항하는 학생들의 강제징집과 소위 녹화사업으로 알려진 특수요원 양성이라는 미명하에 강제징집 대상자는 1천여명에 이르렀고 이들 중 일부는 소위 ‘역의식화’ 교육을 실시하고 이들을 다시 학원에 복귀시켜 소위 ‘프락치’ 임무를 맡기는 말하자면 인간성 파괴행위를 다반사로 자행하는 우를 범하고 있었다. 당시 소위 기관원들의 학원상주는 상식에 속하는 일이었다.


이러한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의 와중에서 1983년 5월 18일 5·18 광주민주화운동 3주년을 기하여 구속인사의 전원석방과 전면해금, 해직교수 및 근로자·제적학생의 복직 복교 복권, 언론자유, 개헌 밑 국보위 제정법률의 개폐 등을 요구하며 김영삼 씨는 단식에 돌입했고 다시 미국에 머물고 있었던 김대중씨는 ‘김영삼총재 단식투쟁 전미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여 반정부운동을 전개하였다.


설상가상으로 1983년 8월 31일 밤에 대한항공 007편은 소련영공을 침범해 소련 미사일에 의해 격추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1983년 10월 9일에는 소위 미얀마 아웅산 묘소에서 폭발사건이 발생하여 전두환 대통령은 기적적으로 생존할 수 있었으나 전 대통령을 기다리던 참모들은 부총리 서석준을 비롯하여 16명이 사망하고 15명이 중경상을 입는 놀라운 사건이 터졌다.


이런 와중에 1983년 12월 21일 전두환 정권은 학원자율화 조치를 발표하였다. 그때 나는 지난번에 소개한 바와 같이 비율빈에 머물고 있었다. 1984년 초에 귀국하고 보니 학원자율화 조치가 발표되고 있었으나 그 실현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 경위를 여기서 상론할 필요는 느끼지 않는다. 어떻든 당시 해직교수였던 내가 그래도 당시 고려대학교 김준엽총장의 적극적인 협조에 힘입어 해직교수 중에서는 가장 빨리 복직한 것이 1984년 7월이었다. 고려대학교를 제외한 다른 대학의 해직교수들이 복직한 것은 2학기가 시작된 9월이거나 또는 1975년 3월까지 미루어지는 기현상들이 벌어졌었다. 이와 같은 경위에 대한 설명도 생략하기로 하겠다. 어떻든 1979년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 전후로 복직하였던 1년여를 합쳐서 근 10년 가까운 나의 소위 해직교수 신세를 완전히 면하게 된 것은 나의 생애에서 또 한번의 전기가 마련되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한번 1985년 10월 27일에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하신 선생님의 ‘새 사람 : 고쳐나지 않고는 종교개혁 절대 못한다’(‘씨알의 소리’지 통권 101호, 53~73쪽)라는 설교 말씀에 나타난 깊은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보자.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종교개혁 주일을 기념하는 예배의 설교였다. 공관복음과 달리 당신은 요한복음을 좋아하신다는 것이다. 요한복음은 겉에 나타난 행동보다는 예수님의 생각에 초점을 맞추어 기록된 복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부터 제목을 붙이자면 ‘새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 ‘새사람’이 아니겠는가. 밤에 예수를 찾아온 유대인의 관원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라는 예수의 말씀을 새사람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특히 “예수의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라는 요한복음 4장 1절의 말씀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대목이 특히 관심을 끌게 한다. 세례요한의 목을 벤 당시의 권력층이 세례요한보다 추종하는 무리가 더 많다는 사실을 어떻게 보았겠는가? 여기서 이미 예수의 십자가는 예견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의 핵심은 이러한 사실을 아신 예수님이 정면충돌을 피하고 갈릴리로 내려가는 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미 당신의 십자가상의 죽음을 예견하신 예수님은 당신이 죽임을 당한 후룰 대비하시기 위하여 다시 말해 제자들을 교육하기 위해 갈릴리로 피하셨다는 것이다.>


당시의 무모한 저항운동을 경고하시는 함 선생님의 깊은 메시지를 우리는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분신자살이 유행하던 당시의 우리나라의 실정에 대한 함 선생님의 통곡은 이렇게 표현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할 시기를 묻는 제자들의 물음에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는 예수님의 답변에서 함 선생님은 모든 해답을 찾고 있다. 한마디로 盡人事待天命이다. 죽음을 건 기다림이다.


당시의 전두환 정권 하의 민주화 운동권뿐만 아니라 오늘의 참여정권 및 숱하게 난립하고 있는 시민단체들이 그리고 이 나라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오늘의 지성인들이 귀를 기울여야 할 깊은 함 선생님의 오늘의 메시지를 다시한번 깨닫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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