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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교황청, 언제나 비밀정보기관과 함께 통치
국가·교황청, 언제나 비밀정보기관과 함께 통치
  • 장동석
  • 승인 2021.07.16 0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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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비밀정보기관의 역사』볼프강 크리거 지음 | 이미옥 옮김 | 에코리브르 | 504쪽

 

파라오의 눈과 귀는 어디든 존재했다
최초의 현대적 국가 교황청도 비밀 조직 만들어

솔직히 말하면, 독일의 역사가 볼프강 크리거의 『비밀정보기관의 역사』를 손에 잡은 이유는 스파이 혹은 각국 정보기관이 등장하는 영화를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다. 이단 헌트가 종횡무진하는 영화 시리즈 「미션 임파서블」의 IMF는 실재하는지, 해리 하트와 에그시가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는 킹스맨은 대체 어떤 곳인지, 제임스 본드에게 살인면허를 준 MI6는 또 뭐하는 곳인지 등등의 궁금증을 다소나마 풀 수 있을까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런 것들은 알려주지 않는다. 궁금증을 풀지 못했다고 소득이 없지는 않다. 『비밀정보기관의 역사』는 ‘파라오부터 NSA까지’라는 부제에서 보듯, 인류 역사 이래 “잠재적 적을 염탐하고자 하는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비밀정보기관들의 역사와 그것이 뜻하는 바를 다양한 관점에서 소개하고 있어 오히려 흥미진진하다. 

고대 이집트는 “어마어마한 왕국을 다스리고, 수많은 민족을 수백 년 동안 통치”했다. 그 기저에는 군사력이 있지만, 다양한 “통치기구”들이 파라오의 눈과 귀 역할을 했다. 특히 한 지방을 다스리는 총독은 파라오에게 “지역에 사는 엘리트들과 군소 왕국들의 충성심”을 세세하게 보고했다. 왕의 사자(使者)들은 군대와 관료들을 데리고 다니며 세금을 징수하고, 정보를 수집했다. “파라오의 눈과 귀”는 그곳이 어디든 존재했다. 페르시아의 지도자 키루스 대제 역시 수많은 눈과 귀를 거느리고 있었다. “첩보기관과 잘 정비된 왕의 길”을 통해 강력한 통치의 밑바탕이 된 각종 정보들이 오갔다. 한 사료에 따르면 키루스 왕은 “자신에게 중요한 정보를 알려준 사람에게 넉넉하게 베풂으로써” 많은 사람이 왕에게 자발적으로 유용한 소식을 전해주는 통치술을 사용했다. “도처에서 사람들은 왕에게 손해가 되는 말을 하지 않을까, 자신이 직접 이런 말을 듣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정치와 종교가 한 몸이던 시절에는 성직자들이 “비밀 활동의 수단을 체계적”으로 이용했다. 로마 교황청은 “최초의 현대적 관료화·제도화된 국가로 간주”되는데, 교황들은 세계 교회를 조직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교황의 비밀 업무”들을 다룬 조직들을 만들기도 했다. 종교개혁이 유럽의 휩쓸던 16세기 후반, 영국의 통치자 엘리자베스 1세에게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의 자청해서 스파이가 되었다. 그중 프랜시스 월싱엄은 일종의 비밀 첩보기관의 장으로써 영국의 이익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그는 하인, 목사, 하급 관리, 불량배, 범죄자들까지 동원해 정보를 수집했다. 훗날에는 신분이 높은 사람들까지 포섭했는데, 극작가 크리스토퍼 말로가 대표적이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친구이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로 알려졌다. 

20세기 들어서면서 첩보 활동의 양상은 복잡해졌다. 각국이 “지향하는 이데올로기” 때문이었다. 이전까지는 권력과 영향력, 영토와 원자재를 둔 첩보 활동이 주였다면, 20세기 들어서는 적대적 국가의 이데올로기, 넓은 의미에서 “정치적·사회적 사고”가 주된 관심사로 떠오른 것이다. 소련은 1917년 말 이미 비밀정보부 체카(Cheka)를 가동시켰다. 600명으로 시작된 체카는 불과 1년 만에 4만 명, 1921년 초로 가면 28만 명에 이르는 거대한 조직으로 성장했다. 체카는 “잠정적 수사”에서 “수색과 체포”로 업무 영역(?)을 확장시켰고, 이내 “가차 없이” 반혁명가들을 죽일 수도 있는 조직으로 커갔다. 소련의 정보원들은 스탈린 시대에 이르러서는 독일, 프랑스, 영국 등으로 활동 반경을 넓히면서 적국의 정보를 수집하기에 이른다. 

반면 미국은 일본이 진주만으로 침공할 때까지 “제대로 된 비밀정보부가 없었다.” CIA의 전신인 OSS가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일을 담당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1947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국가보안법’에 근거해 CIA를 창설하기에 이른다. 전성기 요원 수만 1만2천 명에 달하는 거대한 조직이었다. 전 세계 곳곳, 문제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그 이름을 올린 곳이 바로 CIA이다. 역사에서 보듯 비밀정보기관은 통치의 한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당연히 부정적 요소들이 지나치게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비밀정보기관을 연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 했으니, 언제 어디서 비밀정보기관들의 부정적 활동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책 말미에 저자는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자유주의적이고 민주적인 법치국가를 위해 비밀 정보 활동은 항상 특별한 방식으로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요구안에 머물러야 할 것이다.”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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