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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계몽의 시대
잃어버린 계몽의 시대
  • 이지원
  • 승인 2021.07.08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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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프레더릭 스타 지음 | 이은정 옮김 | 길 | 880쪽

 

중앙아시아 지역은 단순한 ‘문명의 교차로’가 아닌,

새로운 세계사적 문명을 창출한 ‘길목문명’ 

실크로드를 비롯해 몽골, 중앙아시아 지역을 떠올리면 무엇보다 ‘문명의 교차로’라는 문구가 제일 먼저 인상적으로 떠오를 것이다.  자연스럽게 이들 지역은 척박한 기후와 정착해 살기에는 힘든 조건들 때문에 유목 생활방식이 적합하며, 이는 곧 기질적으로 싸움을 좋아하고 약탈을 주로 일삼아 수준 높은 문명을 만들지는 못했다는 이미지로 굳어져 왔다. 과연 이 지역에 대한 이러한 지금까지의 평가가 올바른 것일까?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우리의 상식의 근저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만들면서, 중앙아시아 지역이 결코 단순한 문명 ‘전달’의 역할만이 아니라 새로운 문명을 창출하는 데 세계사적으로 기여했음을 다양한 사료와 접근방식을 통해 증명해내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길목문명’으로서의 중앙아시아의 특장점을 부각시킨다.

 

 

이슬람 문명의 중심을 더 동쪽으로 옮겨놓다

사마르칸트, 투스, 메르브, 부하라, 니샤푸르의 중요성 

이 책은 우선 흔히 이슬람 문명의 중심지로 아라비아반도와 고대 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 오늘날의 이란 지역인 서부 페르시아 지역 정도를 뇌리에 떠올리는 우리의 생각을 송두리째 뒤흔든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테러가 빈번하며 아편 판매로 생계를 유지하는 등 무정부적인 정치 상황으로 알려진 북부 아프가니스탄 지역을 비롯해 우리에게는 여러모로 멀고도 생소한 중앙아시아 지역이야말로 이슬람 문명의 요람이었다고 강조한다.

발흐, 메르브, 니샤푸르, 투스, 시스탄, 부하라, 사마르칸트 같은 도시들을 열거하며 중앙아시아적인, 즉 페르시아적이면서도 도시적이고 일찍이 실용기술이 발달한 도시의 면면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다시 말해 저자는 이슬람 세계의 공간을 동쪽으로 확장해 이슬람 문명의 축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저자는 세계의 지적 허브로서 서기 1000년을 전후로 400~500년 동안 문화적 전성기를 누리던 ‘계몽의 시대’에 주목한다. 즉 중앙아시아는 지리적으로뿐만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교량 역할을 하며 고대와 근대 세계를 연결하는 위대한 고리였고, 인도와 중국, 중동, 유럽 모두와 교류하며 비범한 문화적, 지적 활력을 전수했다는 것이다.

언어와 인종, 민족, 지형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중앙아시아의 주민들은 매우 다원적인 하나의 문화권에 속해 있었고 세속 및 종교 영역 모두에서 풍부하게 축적된 문화적, 지적 경험을 가지고 황금기에 접어들었다. 그 결과 중앙아시아의 사상가와 예술가들은 서구의 르네상스보다 500년이나 앞서 개인을 발견하거나 재발견했고 미래에 도래할 과학혁명의 선각자가 되었다.

 

 

‘페르시아적인 요소’가

중앙아시아의 문명 내지 문화의 핵심을 이루다 

이러한 중앙아시아 특유의 문명 내지 문화에서 주목할 만한 점 가운데 하나는 아바스 시대의 이른바 ‘아랍 르네상스’를 주도한 대다수의 선구자들이 실상은 아랍인이 아니라 주로 중앙아시아에서 온 이란계의 다양한 원주민이거나 다른 동부 지역민들이었다는 것이다. 즉 중앙아시아 역사의 저류에 페르시아적인 요소가 매우 강하게 영향을 끼쳤다. 

 

 

이렇듯 찬란했던 중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가

왜 지금은 보잘 것 없게 되었는가 

이렇듯 과학적이고도 실용적인/경험적인 학문과 지적 세계를 바탕으로 효율적인 관개시설 운용을 통한 도시의 발전과 대륙 중개무역을 통해 획득한 물질적 풍요, 새로운 사상 및 사고방식에 대한 열린 태도가 중앙아시아 특유의 찬란한 문명/문화를 일구어냈다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주장이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즉 그렇게 찬란했던 이 지역의 문명/문화가 왜 21세기 지금에 와서는 쪼그라들다시피하고 잊혀진 문명 세계처럼 취급되게 되었는지를 추적한다. 

그것은 바로 ‘종교’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선진 문명/문화를 일구어냈던 지식인들 사이에서 좀처럼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시간이 흐를수록 양극화가 심화되었던 주제가 바로 이성과 종교 사이의 관계였다.

철두철미한 합리주의를 열렬히 후원했던 마문 시대에 촉발된 신학논쟁이 궁극적으로 세속 권력과 종교 권력 간의 싸움으로 비화되면서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고 혁신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사회를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게 만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계몽 시대의 절정기에 발생한 신학적 충돌이 곧 노골적으로 힘을 겨루는 시험장으로 발전한 것이다. 철학, 인식론, 형이상학, 윤리학, 물리학, 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논쟁이 벌어졌고 이는 알 가잘리가 합리주의자들의 주장을 초토화시키기 위해 싸웠던 300년 후에나 막을 내렸다. 

 

 

이성과 논리, 경험을 밀쳐낸 수피 신비주의의 도래,

그리고 그 중심에 ‘알 가잘리’가 자리하다 

이성도 논리도 인류의 진정한 목적과는 무관하며,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탐구는 무엇이든지 간에 그저 공허한 망상이라고 생각한 가잘리의 공격은 이슬람의 이름으로 감히 합리주의와 계몽을 옹호하는 이들을 침묵시키고 싶어 안달이 난 자들에게 강력한 지적 무기를 제공했다.

그의 이러한 태도와 공격이 결국 과학과 철학이 꽃피웠던 땅을 황무지로 만들어버렸다. 알 가잘리 이후, 더 이상 자유로운 과학적 탐색과 거리낌 없는 철학적 사유가 다시는 이슬람 세계에서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이성과 논리를 밀쳐내고 합리주의를 지향하는 지식인들을 신비주의적 직감과 전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식에 감히 도전할 수 없는 종속적인 지위로 전락시켰기 때문이다.

비록 그가 중앙아시아 문화와 12~13세기의 역경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는 수피 신비주의 부상을 직접적으로 야기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이슬람 내에서 수피즘을 정당화하고 핵심적인 앎의 방식으로서 수피즘이 자리 잡도록 하는 데 기여를 했다. 

 

 

세계사의 중심으로서의 중앙아시아 역사 복원 

중국 정부의 '일대일로'이니 우리나라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이니 하는 기획을 비롯해, 전 세계는 물론 우리에게도 이제 중앙아시아 지역은 큰 관심 영역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그 관심의 증폭만큼이나 포괄적인 시각을 갖게 해주는 책은 매우 드물고, 주로 역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은 중앙아시아 지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사상, 예술, 종교, 역사 등 전반을 매우 경제적이면서도 짜임새 있게 직조해냄으로써 세계사에 기여한 이 지역의 특장점을 매우 설득력 있게 서술해내고 있다. 

저자는 수차례 이 책의 집필 목적을 누군가에 의해 고집스럽게 주변적이고 후진적인 지역으로 규정되어 온 중앙아시아가 사실은 수세기 동안 정치와 경제 세계의 주축이었고, 유라시아 대륙에서 지적 생활의 중심지였음을 알리고, 이는 개방성과 다양성을 특징으로 하는 중앙아시아의 유구한 전통과 역사적 축적에서 기인했음을 보여 주시 위함이라고 역설한다. 즉 중앙아시아 지역은 단순한 문명의 교차로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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