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1-09-17 16:24 (금)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신간 『한국의 민주화운동에서 노동과 여성-노동의 서사와 노동자 정체성』 발간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신간 『한국의 민주화운동에서 노동과 여성-노동의 서사와 노동자 정체성』 발간
  • 이승주
  • 승인 2021.07.06 14: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 민주화운동에서 여성 노동운동의 의미와 현재로의 연속성을 조명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는 한국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여성 노동의 역할과 성장, 좌절, 그리고 현재의 삶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젠더적 시점에서 다룬 신간 『한국의 민주화운동에서 노동과 여성-노동의 서사와 노동자 정체성』(김경일 저)을 펴냈다. 

김경일교수가 집필한 '한국의 민주화운동에서 노동과 여성-노동의 서사와 노동자 정체성'표지

 소비와 개인이 중심인 지금도 노동과 노동운동의 현재적 가치는 결코 퇴색하지 않는다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노동이나 노동운동은 대중이나 연구자들에게 더 이상 관심을 끄는 주제가 아니다. 물론 지난 시대에도 노동자가 중심이었던 적은 거의 없었으며, 노동운동이 정치적으로나 개인 삶의 민주화에 미친 영향에 대한 평가도 다양하기만 하다. 지난 40여 년간 한국 사회는 운동과 저항, 변혁의 시대에서 소비와 자기계발 그리고 투기의 시대로 바뀌었다. 특히 우리 시대의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벗어날 수 있는 여지를 거의 남겨 두지 않고 전 지구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강렬하다. 그럼에도 필자인 김경일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 사회학 전공)가 시대의 관심에서 멀어져가는 노동자와 노동운동, 그중에서도 주변부에 머물렀던 여성과 젠더문제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노동자는 과거에도 그랬듯 현재도, 미래에도 노동현장에서 자신의 삶을 이어갈 것이며, 노동현장의 환경이 결국에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도 만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독재타도나 노동환경 개선을 외치는 구호는 사라졌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에서 비롯된 공정의 문제, 중대재해 처벌과 위험의 외주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 등 새로운 노동 어젠다가 떠오르는 만큼 노동운동과 노동자라는 주제는 미래진행형이라고 하겠다.

 한국 민주화운동에서 여성 노동과 젠더 문제가 차지하는 위치에 주목하다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여성 노동과 젠더의 문제는 당위와 도식으로서의 노동자나 노동 계급이 아닌 개별 노동자 의식 내면의 기억과 주관의 경험을 미시 차원에서 드러내 보였다. 오랜 시간에 걸쳐 사회과학 이론에서 논쟁거리가 되어 온 구조와 행위의 딜레마에서 주로 후자에 초점을 맞춰 강조한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맥락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 노동과 젠더 문제를 1950년대 노동운동에서의 급진주의 전통, 197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의 민주노동운동 그리고 2020년의 시점에서 사회운동의 현황과 쟁점 속에서 살핀다. 그 과정에서 심층 인터뷰를 통한 생애사 자료나 노동자 자신이 직접 쓴 일기나 회고록, 자서전 등의 질적 자료를 주로 활용했다. 노동자나 노동 계급이 아닌 개별 노동자 의식 내면의 기억과 주관의 경험을 잘 드러내는 이들 자료를 통하여 거대 담론의 그늘에서 드러나지 않는 노동자의 다양한 반응과 유형을 재구성해 보고자 했다. 이를 통해 도식화되고 공식화된 노동자상이 아니라 역사와 현실을 살아가며 일하는 사람의 노력과 이상, 갈등과 좌절이 지니는 다중의 모순과 복합의 양상을 구체화하여 제시했다. 
 노동과 노동운동에 대한 기존의 시각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다이 책은 노동과 노동운동의 거대 서사에서 흔히 제시되어 온 ‘단일한 노동 대오’, 혹은 정반대의 신화를 비판의 시각에서 검토했다. 1970년대 이전까지의 노동사와 노동운동 연구에서는 흔히 자본과 때로는 국가에 맞선 단일한 의식과 지향을 지니는 실체로서 노동 계급을, 그렇지 않은 시기에는 정권의 지지를 배경으로 하는 어용노조가 득세한 시기로 묘사해 왔다. 그러나 예컨대 1950년대는 대한노총이 전일로 지배한 단독 무대라기보다는 각각의 조직들 안에 다양한 이념과 지향을 포함하는 복합의 여러 운동이 모색·시도된 시기였다. 정권에 종속된 어용의 부패, 타락한 흐름이 있었는가 하면, 서구의 경제 노동조합주의를 지향하는 세력도 있었으며, 기독교나 가톨릭 선교의 하나로 전개된 조직도 있었다. 비록 방법의 차이는 있었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평등하게 사는 새로운 세상을 꿈꾼 집단도 있었다. 그 전체상이 아직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1950년대는 이러한 다양한 흐름의 운동이 이합집산하면서 선택 결합하여 대한노총의 혁신 세력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전국노협이라는 새로운 단체로 부상했는가 하면, 대구시연맹이라는 독자 조직으로 출현하기도 했다.
 수출지향의 산업화 전략과 여성 노동자의 집중수출 중심의 고도의 경제 성장은 한국 사회를 전통 농업사회에서 근대 산업국가로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1970년대는 이러한 이행의 변화 양상이 집약되어 나타난 시기였다. 산업화의 급속한 진전에 따라 산업노동력이 형성되면서 노동력의 내부 구성도 빠른 속도로 변화했다. 산업별 취업자 구성에서 제조업 부문 노동자 비중의 압도적이었으며, 내부의 업종별 구성도 섬유, 의류나 음식료품과 같이 노동 집약의 경공업 중심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유, 의류와 음식료 부문의 노동자는 조립 금속이나 석유, 화학 부문과 함께 1980년대 중반까지도 제조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더구나 조립 금속에 포함된 전자산업의 예에서 보듯이 중화학 공업이라고 하더라도 사실상 노동 집약의 경공업과 다를 바 없었다. 이러한 점에서 보자면 1970년대 노동력의 주류는 노동 집약의 경공업 분야에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시기 노동자의 대부분은 여공 영자나 철공소 직공 창수와 같이 농촌과 농업 부문에서 왔다. 따라서 이 시기에 형성된 공장 노동자에서 여성의 비중이 높았다는 사실도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공장 노동자의 대부분은 소년이나 청년층이었고, 특히 여성의 경우에는 80퍼센트 정도가 이 연령층에 속했다. 196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남성 노동자에 비해 여성 노동자는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났으며, 여성 노동자의 증가는 1970년대 중반까지 가장 두드러졌지만, 그 이후부터 점차 증가세가 둔화하기 시작했다. 공장 노동자의 구성에서 여성의 비중이 높았던 것은 산업화의 햇수가 짧다는 사실과 아울러 주력 산업이 노동 집약의 경공업으로서 노동에 대한 자본의 수요가 값싼 미숙련·반숙련 노동력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 여성 노동자의 대부분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경공업 분야에 진출했고, 산업화가 본격화하는 과정에서 노동자 1세대를 구성했다.
 1970년대 여성 노동운동은 급진혁명과 온건주의를 상호 수렴하는 다양성의 결정체1970년대 민주노동운동의 전형을 이룬 여성 노동자들 역시 단일의 투쟁만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널리 알려진 소모임 활동에서 보듯이 여성 노동자들의 정서 욕구와 의식화의 필요는 반드시 상호 배제하는 방식으로 작용하지 않았으며, 소모임을 통한 정서적이고 사적인 일상 활동들을 배제하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흔히 노학연대에 의한 대학생들의 현장 활동으로 알려진 1980년대 전·중반기에도 이 점은 마찬가지이다. 노동 현장에 투신한 학생 출신 노동자들의 주류는 급진 혁명에 대한 과격한 실천과 정치 편향, 엘리트 영웅주의, 이론 지향과 경직된 교조주의를 표출하기도 했지만, 이 흐름에 회의의 눈길을 보내면서 그에 동조할 수 없었던 소수의 지식인·학생들은 ‘혁명 전선’에서 이탈하여 자아의 성찰에 몰두하는 경향을 보였다. 운동권의 지식인·학생이 단일 층이 아니듯이 노동자 역시 단일 계급의 이미지로 파악하기는 어렵다. 집단적이고 전투적인 정치투쟁을 강조하면서 학생·지식인에 오롯이 호응한 노동자 그룹이 있었는가 하면 학생 출신이 주도한 집단의 정치투쟁에 합류하면서도 노동자로의 자의식과 존재의 극심한 갈등을 경험한 사례들도 있었으며, 학생들의 현장 활동의 양상을 비판하면서 노동에 대한 감각과 노동 현장의 중요성과 아울러 노동자로서의 자기 주관과 자주성을 강조한 경우도 있었다. 노동운동 내부에서 단일한 하나의 거대 서사로는 수렴되지 않는 다양한 복합의 정체성 유형들에 대한 이러한 분석을 통하여 필자는 노동운동의 주류가 표방해 온 ‘신화’를 해체하고 그 과정에서 나타난 다양한 목소리들을 복원하고 그에 귀 기울이고자 했다. 
 노동운동을 단절과 격리가 아닌 연속의 차원에서 조명하다일반으로 일제 강점기인 1945년 및 1970년대를 경계로 노동운동에서 커다란 단절과 격리가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해 왔다. 이에 대하여 필자는 20세기 근대로의 이행 이후 노동운동 전통의 연속과 계승의 차원을 강조했다. 먼저 일제 강점기와 이른바 해방 정국으로 이어지는 1950년대의 노동운동이 그러하다. 비록 특정한 지역에 한정된 사례 연구라 하더라도 그것은 앞 시기와의 연속선에서 복합의 양상을 지니고 전개되었다. 워싱턴대학의 전임교수인 남화숙은 대한조선공사의 자료를 이용한 『배 만들기, 나라 만들기』를 통해서 1950년대 노동운동의 전통이 1960~1970년대를 거쳐 최근 한진중공업의 노동운동으로 이어지는 연속의 측면을 구명한 바 있다. 이 책에서도 필자는 1970년대와 1980년대 이후 운동에 나타난 단절과 연속의 문제라는 쟁점을 비판의 시각에서 검토했다. 노동운동 전통의 단절과 분리라기보다는 연속과 계승의 양상에 대한 강조는 역사의 궁극에서 노동자의 자발성과 낙관주의의 비전을 확인하고 공유하고자 하는 노력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공간의 범위와 시간의 지속이라는 점에서 1970년대 서울·인천 중심 지역의 여성 노동자들이 광범위하고 안정된 형태로 의식의 고양과 자율의 형성을 경험한 사실에도 주목했다. 그것은 “더 당할 수 없을 만큼 당한 데서 나온 힘”이고, “목숨을 어디에다 던져야 좋을까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치열한 투쟁의 발현이었다. 스스로의 힘과 공동의 연대로 확보한 자율과 주체의 공간을 지키기 위해 이들 여성은 온몸의 힘을 다해 싸울 수밖에 없었다. 나아가서 이들은 1970~1980년대의 특정한 운동 공간에만 머물지 않았다. 젊은 날의 가난과 고통을 배경으로 의식의 고양과 연대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성장한 이들은 이를 토대로 이후로도 사회의 각 방면에서 깨인 의식을 가지고 살아갔다. 1970년대 민주노동운동에 참여한 노동자 대부분은 자신들이 노동 현장에 있었던 1970년대 당시에도 그러했지만, 현장을 떠난 이후에도 현실에 관한 관심과 운동에 대한 헌신을 버리지 않고 지역과 현장의 일상생활을 통해서 운동 자체가 생활이 되는 그러한 삶을 만들어 가고자 했다.
 민주노동운동, 특히 여성 노동운동에서 드러난 활력과 주체성1970년대의 민주노동운동에서 특히 그러하지만, 여성 노동자에게서 나타난 노동운동의 활력과 주체성을 강조했다. 1970년대 여성들이 주도한 민주노조운동은 이후 1980년대 전·중반기의 학생 출신이 주도한 노동운동이나 1987년 이후의 이른바 남성 중심의 민주 노조와도 구별되는 고유한 전통과 역사를 만들어 냈다. 이 시기 거의 모든 여성 노동자는 자본의 지배와 착취를 받는 계급 억압과 더불어 가정과 공장 모두에서 남성이 지배하는 가부장 질서의 희생자였다. 출구가 없는 절망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듯이 보였던 엄연한 현실에서 이들은 소그룹이나 노동조합에 참여함으로써 노동자로서의 가난과 여성으로서의 차별이라는 이중의 억압에서 절망과 허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과 비전을 찾았다. 이러한 활동들을 통하여 이들은 여자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더불어 여성으로의 자각을 갖게 되었다.
 갈등과 분열에도 노동 현장에서의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노동자의 낙원을 만들어 줄 테니 노동조합을 포기하라”는 제일모직 사업주의 말에 노동자는 “자신들이 필요한 것은 노동자의 낙원이 아니라 가족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일에 대한 대가이다. 지옥 같은 작업 환경과 저임금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행복하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이다”라고 답한다. 우리는 40여 년의 시간을 민주화운동 속에서 저항과 변혁의 시간을 거쳤으나, 지금은 노동이나 노동운동이 더 이상 관심을 끌지 못하는 시대에 와 있다. 그러나 과거에 있던 개별의 투쟁이나 파업의 사례들은 분명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 왜냐하면 투쟁의 방법이나 관심사는 다르다 하더라도 시대를 막론하고 우리의 노동은 계속되고 있으며, 그 현장에서는 바라는 점은 오직 보다 나은 작업 환경과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60년의 민주화운동을 통해 경험한 커다란 변화들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의 화해와 공존, 부의 불공정 분배와 불평등, 세대와 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 그리고 환경 위기, 팬데믹 등과 같은 다양한 도전에 여전히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도전에 맞서 노동운동의 전선을 점점 확장하고 그 주제를 시대에 맞게 변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노동운동의 가능성은 무한히 열려 있다. 이 열린 상황에서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는 지금 살아가는 구성원들에게 남겨진 과제일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