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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의 인류학적 의미
단식의 인류학적 의미
  • 김광억 서울대 인류학
  • 승인 2005.02.21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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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사유되는 場

순국은 고귀한 행위일진 모르나 ‘온전치 못한’ 죽음인 자살에 해당된다. 반면 단식은 신체에 변형을 수반하지 않고 완만하게 스스로를 파괴하는 행위다. 한국과 같은 유교 문화권에서는 명분이 고귀한 자살일지라도 조상에게 물려받은 신체를 지키지 못한 것이기에 불효에 대한 죄책감이 남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저항의 방식으로 폭력적인 자살보다는 흔히 단식이 선택된다.

‘한솥밥을 먹는다’는 말이 있듯이 음식을 함께 나눠 먹는 것은 공동체 구축의 상징으로 간주된다. 옛날 대가족 제도하에서 ‘한 상’은 사회적, 정치적인 단위를 상징하며 공동체의 경계를 의미했다. 때문에 새 신부가 혼례를 올리고 나면 시댁에서 처음 2~3일 간은 따로 상을 받았다. 그녀는 아직도 이방인이거나 또는 적어도 완전한 식구로 결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식사틀 같이 한다는 것이 사회적 정체성의 근거였던 것이다. 

음식은 상징분류를 위해 사용돼왔다. 추도의례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는 飮福 혹은 鄕飮禮로서, 신과 참례자들이 함께 음식을 나눠 먹는 것이다. 제사후 이웃사람들과 음식을 함께 나눠 먹는데, 이는 상징적인 공동체를 구성한다. 의형제를 결의할 때도 음식을 함께 나눠 먹는 의식을 행한다. 의례적 공회에서도 특별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끼리 음식을 서로 교환하는데, 즉 음식은 가족의 범주를 넘어 사회?정치적인 연망을 형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음식을 거부하는 행위는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기존 사회체계를 거부하거나 부정하는 행위로 비쳐져 곧 사회, 정치적인 관계에 위협적 요소가 된다. 이를테면 경쟁상대와의 자리에서 음식을 거부하는 것이나 혹은 시아버지가 며느리의 밥상을 거부하는 행위 등은 상대방에 대한 증오나 불만을 나타내는 전략의 하나로 채택된다. 아이들도 부모에 대한 항의로 식사를 거절하기도 하는데, 이는 따지고 덤벼드는 불효를 범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불만을 표현하는 방식이 된다.

그렇다면 단식자를 사회구성원들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였을까. 예전부터 한국에서 ‘먹는다는 것’은 물질적 풍요를 의미했다. 굶어죽은 자의 여혼은 텅빈 위를 가진 아귀가 되어 이승을 헤매고 다니게 된다. 그러나 단식으로 죽은 사람의 영혼은 온당한 조상으로 여겨져 제사를 받을 수 있는데, 이는 그가 세속적인 한계를 의지력으로 극복했기 때문이다. 즉 음식으로부터의 격리는 순수한 정신상태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영적인 고양을 성취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텅빈 상태’는 개인의 윤리적 우월성과 인격을 증명하느나 지표인 셈이었던 것이다. 

한국인의 문화코드에 의하면 단식은 저항의 한 폭력적 형식으로 인식돼 왔다. 사람이 자신의 몸을 희생한다는 것은 피를 흘리지 않고 실천할 수 있는 간접 폭력의 한 형태로서 정당화되고 신비화되는 것이다. 단식은 먼저 자신을 사회로부터 소외시키는데 한국에서 자신의 소외화는 거대한 압제자로부터 위협당하는 ‘역사’, ‘민족’ 등의 어휘로 장식되며 개인의 선택으로 취해진 이 단식은 비로소 정당성을 부여받기 시작했다. 

오늘날 단식(투쟁)은 너무나 흔해 그 자체로서 정치적 성공을 보장할 순 없지만, 그것은 어떻게 준비를 하고 상징수단들을 동원하는가에 따라 성공과 실패의 가림길에 서게 된다. 단식은 성공적으로만 이끌어낸다면 새로운 의미의 체계와 사회적 양심을 창조하는 행위로 취급받고 있다. 즉 한국에서의 단식은 인간의 몸이 사유되고 개별적인 존재로서라기보다는 공동의 영속적인 소유물이자 공공의 대상으로 인식되는 과정인 것이다.

김광억 / 서울대 문화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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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2005-02-28 08:18:33
본문 중 향음례의 한자표기가 "響音"으로 잘못돼 있다는 독자분의 지적을 받고 "響飮"으로 바로잡았습니다.
한자표기에서 빈번히 오류가 발생해서 죄송합니다.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