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04:25 (목)
지율 斷食 무얼 남겼나: 生命의 힘, 그러나 “목숨 걸 일이었나” 논란
지율 斷食 무얼 남겼나: 生命의 힘, 그러나 “목숨 걸 일이었나” 논란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5.02.2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단식의 윤리학과 사회학

한국사회에서 개인의 단식을 통한 의사표현이나 운동이 늘어나고 있다. 이번 천성산 터널공사와 관련한 지율의 단식은 그 표현의 정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국책사업의 중단과 경제적 손실에 대한 성토 및 생명에 대한 사회의 인식 제고로 이 사태에 대한 평가가 양분되는 느낌이지만 좀더 본질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변동과, 생명이나 목숨 그리고 ‘가치’ 같은 철학적 문제에 대한 세대별 계층별 인식차에 대해서도 논의할 필요성이 있어보인다. 학자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정리하고 있는지 의견을 들어봄으로써 남겨진 과제를 짚어봤다./편집자주

오진탁 한림대 교수(철학)는 강의석 군의 단식 을 “학교가 종교를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그 실존적 선택을 인정하면서도, 이번 승려 지율의 단식에 대해서는 머리를 흔든다. 천성산 사태는 “종교적, 환경적 측면에서만 아니라 정치경제적으로 쟁점으로 부각된 것이기에 사회의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는데, 한 개인의 의견만으로 국책사업이 중단된다는 것은 안 좋다”라는 것이다.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민속학)도 “종교인답지 않은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라며 “생명을 살리자는 일인데 단식이 생명소홀로 비치는 것도 생각해야 하지 않았을까”라며 숙고된 행동은 아니라고 본다.

“영성적 실천이지 환경운동 아니다”

한국의 단식투쟁은 생존 위기에 처한 사회적 약자의 극한 행동이거나, 아니면 정치인들의 문화정치로 크게 구분돼 왔다. 이번 지율의 단식은 이 스펙트럼을 벗어난다. 그렇다고 환경운동의 일환이라고 보기도 힘든데, 왜 단식하냐는 질문에 “산이 깎여나가는 것을 보니 눈물이 났다”라든지, 대안에 대해서도 “천성산이 아니면 다른 곳이 생채기가 날 것 아니냐”라면서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니 지율을 놓고 환경운동의 극단성을 비판하는 것도 대상을 정확히 겨눈 것이 아니다. 단식 60일이 넘도록 환경연합에서는 이에 대한 성명서조차 발표하지 않았다.

한면희 서강대 교수(환경철학)는 “삼보일배, 단식이 자극적”이라고 말하면서도 “비폭력 표현수단은 존중받아야 하고 지율 스님 단식이 영성적 차원의 결정이라 세속적 잣대로 평가할 수 없다”라고 본다. 이것은 판단의 딜레마를 안겨준다. 종교인이면서 동시에 시민이라는 모순적 정체성이 공공적 사유의 대상이 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또 하나의 딜레마는 단식을 두고 타인이 왈가왈부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박동천 경북대 교수(정치학)는 “산의 울부짖음을 들을 정도로 내면의 울림이 강한 사람이기 때문에 목숨을 걸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인류 역사에서 “자기 목숨을 개의치 않았던 이들이 대체적으로 타인의 생명을 존중했다”라는 박 교수의 견해는 수긍할 점이 많다.

하지만 천성산 터널통과가 목숨을 걸 일인가에 대한 일반론은 “그렇지는 않다”는 쪽이다. 가령 이상훈 수원대 교수(수질관리)는 “지질학회에서 조사를 해서 과학적 안정성을 제시했는데도 전문가 집단의 견해가 묵살되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이 교수는 꼬리치레도롱뇽은 국내 여러 곳에 서식하며, 선진국도 동물을 원고로 한 소송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한 미생물학자는 “연못물의 구성비에서 强雨는 보통 5%선”이라며 “터널이 뚫리면 지하수 고갈과, 지하수를 통해 유입되는 미생물들이 사라져 정화기능이 타격받을 것”이라며 환경영향평가를 비판한다.

그래도 단식을 부를 만큼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은 공유되지 않는다. 그런 상태에서 단식을 행한 개인이나 집단의 의견이 관철될 경우 앞으로 그와 유사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단식이 그야말로 하나의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런 점에서도 천성산 사태가 사회적으로 쟁점화된 과정에 대한 성찰적 시선이 필요하다. 김종법 한국외대 교수(정치사상)는 “이미 큰 사회적 쟁점이 된 지율 단식을 개인 문제로 보는 건 문제”라고 하지만, 오히려 어떻게 천성산이 단식이라는 문화적 기제를 통해서 사회 이슈가 될 수 있었고, 그 이슈의 핵심이 단식에 대한 ‘심정적 참여’인지, 아니면 천성산의 환경가치에 있는 것인지에 대한 구별이 필요하다.

‘생명’을 바라보는 시각의 다원성 인정해야

가령 주무현 경상대 교수(정치경제학)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 개발과 보존에 대한 세대의 시각차가 존재한다”라고 지적했다. 이른바 장년 층은 개발을 중시하고, 젊은 층은 개발을 급하게 보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천성산이 사회적 쟁점이 됐을 때의 쟁점은 바로 ‘단식’으로 위험에 처한 한 개인의 목숨과 경제적 비용 사이의 결정이었다. 그렇다면 그런 세대 차이는 오히려 ‘생명’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여론 분산으로 보는 것이 정확한 해석이 아닐까.

또한 이번 사태가 남겨준 과제는 환경영향평가의 객관성이 담보되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이다. 박재묵 충남대 교수(환경사회학)는 “환경오염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제도인 환경영향평가제도가 사회적으로 불신받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국책사업이 줄줄이 무산된 정부는 사업계획단계에서 주민들의 참여를 의무화하는 것으로 환경영향평가제를 변경했고, 올 상반기 내에 국무총리실 주도로 갈등을 미리 점검하고 대비할 수 있게 하는 ‘사회갈등관리기본법’을 입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법제정은 분명 고무적인 측면이 있다. 이제 한국사회가 사후관리가 아니라 사전대비의 필요성을 인식한 지표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