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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중 가장 무서운 건 바로 ‘발설지옥’ 아닐까
지옥 중 가장 무서운 건 바로 ‘발설지옥’ 아닐까
  • 김재호
  • 승인 2021.07.09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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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사색_『살아생전 떠나는 지옥 관광』 김태권 지음 | 한겨레출판사 | 228쪽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기원 전 8세기∼6세기 중반 추정),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기원 전 29년∼19년), 단테의 『신곡』(1308~1321), 존 밀턴의 『실낙원』(1667). 이 작품들의 공통점은 바로 ‘지옥’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만화가 김태권 씨가 『살아생전 떠나는 지옥 관광』을 펴내며, 이 작품들을 ‘지옥을 다룬 네 편의 서사시’라고 표현했다. 그는 “우리가 오늘날 생각하는 악마의 모습은 밀턴과 도레가 빚어놓은 상상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라고 적었다. 귀스타브 도레(1832∼1883)가 그린 『실낙원』의 삽화(1866)를 보니 지옥과 악마의 묘사가 더욱 진전될 필요가 있겠다 싶다. 

 

인간은 이승에 있으면서 왜 지옥을 상상할까? 김태권의 책 2장 ‘지옥은 가까운 곳에 있다’가 바로 정답 아닐까. ‘현실 지옥’이라는 말이 그냥 있는 게 아닐 테다. 김태권에 따르면, 영국 작가 찰스 디킨스(1812∼1870)는 1850년에 다음과 같이 탄식했다. “동식물의 찌꺼기는 물론 온갖 메스꺼운 폐기물이 오로지 템스강에 버려졌다.” 김태권은 “당시 런던은 분뇨를 내버리는 곳 바로 옆에서 식수를 길어다 마실 지경이었다”라며 “위생 상태가 이렇다 보니 19세기 중반에 런던은 잊힐 만하면 콜레라에 시달렸다”라고 적었다. 마시는 물(현세)과 배출되는 액체(지옥)가 함께 있었던 셈이다. 

지옥의 방식도 여러 가지 일텐데 김태권의 책에선 ‘발설지옥’이 가장 흥미로웠다. 제주 큰굿인 ‘시왕맞이’에선 어른 말에 대충 대답하면 죄를 받아 발설지옥행이라고 한단다. 마음에 와닿지 않는 어른들의 말에도 허투루 대답하면 안 되는 것일까. 발설지옥은 다음 문장으로 표현되니 어쨌든 조심하는 게 필요하다. “혀를 부필리고 넓게 펴기 위해 쇠뭉치로 두드린다고 한다. 그 위로 쟁기가 지나간다. 보습(삽모양의 농기구)의 날이 혀를 가르고 고랑을 판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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