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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후 겪는 비탄과 회복에 대하여
상실 후 겪는 비탄과 회복에 대하여
  • 유무수
  • 승인 2021.07.09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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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상실의 언어』 사샤 베이츠 지음 | 신소희 옮김 | 심심 | 348쪽

 

‘유족으로서의 나’와 ‘심리치료사로서의 나’
두 개의 나를 오가는 이중구조의 회고록

사별!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몇 차례 겪어야 할 운명이다. 남들이 부러워 할 행복의 관계를 조성하고 있었다면 사별은 더욱 고통스럽다. 이 책의 저자인 사샤 베이츠는 남편 빌 캐시모어를 가장 친한 친구이며 연인이자 소울메이트로 여기고 있었다. 빌은 56세였을 때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훈련 중일 만큼 건강하고 활동적이었다. 그는 아침식사를 마친 후 심장의 통증을 느끼며 쓰러졌고 사흘 후에 사망했다. 

갑자기 유족이 된 사샤에게 낯선 감정과 상황이 폭풍처럼 들이닥쳤다. 비탄, 광기, 분노, 트라우마 상태, 불면, 경직, 해리, 망상, 죄책감, 회한, 자살욕구, 환청, 그리움, 우울, 고독, 공황발작, 시시때때로 흐르는 눈물… 저자는 어느 날 정신줄을 잃지 않으려고 자신의 상태를 일기로 적었다. 저자는 ‘유족으로서의 자아’가 겪는 혼란에 처하여 ‘심리치료사로서의 자아’를 동원하기 시작했다.  

「굿윌 헌팅」(구스 반 산트 감독, 1998)이라는 영화에서 심리학자인 교수는 사별한 아내 이야기를 했다. 침대에서 잠을 자던 아내가 방귀를 크게 뀌고는 자신의 방귀소리에 자신이 놀라더라, 하는 소소한 일상이야기를 하면서 웃기도 하고 그런 아내가 그립다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한 장면이 있었다. 바로 사샤의 현실이 그와 비슷했다. 빌과 나눈 실없는 농담과 습관이 떠오르곤 했고, 빌이 사용하던 일상용품들을 볼 때마다 빌에 대한 그리움이 솟아났다. 한동안 빌은 죽은 게 아니고 일하러 나간 것이고 곧 돌아온다고 믿었다. 퀴블러 로스의 애도 이론에서 ‘부정’의 단계이다. 빌이 귀가했을 때 당황할 수 있으니 빌의 물건을 치우지 않았다. 유족이 이 부정의 단계에 머물러 있는데 누군가가 고인의 물품을 치워버린다면 상처와 갈등을 유발하게 될 것이다. 

“내가 뭘 해주면 좋겠니?” 유족이 된 사샤를 위로하기 위해 방문한 친구들의 애정이 담긴 질문이었다. 저자는 이 질문이 두려웠고 혐오했다. 저자 자신도 대답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저자의 경험에 의하면 “당신은 잘 견디고 있다”는 칭찬은 공허하다. 사실 안 괜찮은데, 괜찮은 척 하며 버티고 있다. 진심으로 유족을 위로하려는 우정이 있다면 유족의 변덕을 수용해주며 따뜻한 배려의 심정을 품고 곁에 머물러주는 게 필요하다는 게 저자의 제안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정도 아픔과 슬픔을 극복한 것 같지만 후퇴하여 다시 압도적인 감정에 휩쓸릴 수도 있다. 

저자는 혼란을 극복하는데 심리치료사로서의 인지활동과 다양한 심리이론이 도움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이론이 각 개인의 상황에 정확히 들어맞지 않을 수 있음도 인정한다. 결국 그 모든 것을 종합하여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상실을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빌의 사망 1주기 즈음의 저자는 여전히 모호하고 불편했지만 일본의 긴츠키라는 전통예술을 떠올렸다. 긴츠키는 ‘금으로 수리하다’라는 뜻이다. 도자기에서 깨진 부분을 금가루와 옻칠로 수선하고 재건하는 과정을 통해 흠집에 아름다움을 부여하는 작업이다. 그리하여 상처가 고귀하게 변형된다. 이러한 저자의 경험과 정신을 요약한다면, “삶은 고통이며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의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상담과정을 기록한 축어록처럼 ‘유족으로서의 나’의 격렬한 감정 변화를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다. ‘심리치료사로의 나’는 퀴블러 로스와 윌리엄 워든의 애도 이론, 프로이트, 빅터 프랭클, 어빙 얄롬, 존 볼비, 도널드 위니콧, 실존주의 치료, 초개인심리학, 영성이라는 관념, 요가와 신체심리치료 등 다양한 심리학 이론을 활용했다. 이 책은 심리학 또는 상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자, 사별의 상황에 처한 자, 그 상황에 처한 자를 위로하려는 자 등에게 의미가 있을 것이다. 번역자는 저자의 문장이 솔직하고 유려하다고 썼다. 번역문도 깔끔하다.

유무수 객원기자 wiseta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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