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10:10 (목)
교육부 구조조정∙왜곡된 능력주의… 석학이 진단한 한국교육 현주소
교육부 구조조정∙왜곡된 능력주의… 석학이 진단한 한국교육 현주소
  • 박강수
  • 승인 2021.06.30 08: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 한국사회, 그리고 한국교육에 대한 사회학적∙정치철학적 접근

한국교육학회(회장 정일환)는 지난 25~26일 ‘한국, 한국사회, 그리고 한국교육’라는 제목을 내걸고 학술대회를 열었다. 첫날인 25일 프로그램 편성표 앞 줄에 저명한 인문사회학자 두 사람이 초청강연자로 이름을 올렸다. 송호근 포스텍 석좌교수와 윤평중 한신대 교수. 두 교수는 각각 사회학과 정치철학의 관점에서 한국교육의 현실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 발제했다.

송 교수는 “입시와 재정을 모두 쥐고 한국 대학들을 통제하는 교육부의 권한을 구조조정해야 한다”고 말하며 “교육부는 대학입시에서 물러서고 규제 중심에서 지원 중심으로 재편돼야 한다. 가장 심혈을 기울일 곳은 첨단 미래 산업의 시대에 맞는 교육 백년대계를 세우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윤 교수는 “한국 교육에서 능력주의 담론의 공과를 다시 살펴야 한다”면서 “능력을 측정하는 잣대가 대학입시, 입사시험 같은 일회적 측정의 한계를 넘어 사회생활 전반에 투명하게 확장되고 공정하게 적용되는 제도와 관행으로 확립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두 석학의 발표를 요약했다.

 

송호근 포스텍 석좌교수. 사진=박강수
“대학은 돈을 찾아 헤매고, 교육부는 규제권력을 움켜쥐고 몸살을 앓는다. 한국 교육은 돈과 규제 사이에 끼어 운다”
송호근 포스텍 석좌교수. 사진=박강수

 

“교육부, 규제권력에서 지원권력으로 구조조정돼야”

 

송호근 교수는 “유은혜 장관이 (이 강연을) 보면 불편할 거다”라고 입을 열었다. 강연 제목은 「한국의 교육, 교육부가 두렵다」였다. 송 교수는 “입시와 정원, 재정을 틀어쥔 교육부는 통제권한을 결코 내려놓지 않는다. 대학은 미래대응적 구조조정을 단행할 여력과 자율성이 없고, 자체 경쟁력을 배양할 자원이 절대 부족하다”면서 “대학은 돈을 찾아 헤매고, 교육부는 규제권력을 움켜쥐고 몸살을 앓는다. 한국 교육은 돈과 규제 사이에 끼어 운다”고 설명했다. “대학 총장들은 취임하자마자 재단에 을이 되고 교육부에 을이 돼 실제 할 수 있는 일이 지극히 적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어떤 정권도 교육부 권력 해체에 나서지 않을 것이지만 교육부 자체의 구조조정은 필수적이다. 권한이 ‘있을 곳’과 ‘없을 곳’을 가려야 한다. 규제권력이 아니라 지원권력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교육부는 입시와 정원은 큰 원칙의 윤곽을 제시하는 선에서 그치고, 수업관리와 운영요건 감독, 행정감사 등으로 작고 세밀한 곳까지 일일이 간섭하는 지난날의 개입양식은 철회해야 한다”며 교육부의 권한이 ‘없을 곳’에 대해 짚었다.

송 교수가 언급한 교육부의 과제는 퇴로 마련을 통한 사립대 구조조정과 중장기적 교육 백년대계를 세우는 일이다. 송 교수는 “재단의 재산 회수권한을 어느 정도 인정해주는 방식으로 ’벗꽃 엔딩’에 직면한 대학들의 퇴출구를 넓혀 줘야 한다. 폐교 위기에 처한 대학들에 산소호흡기를 달아주거나 쥐꼬리만한 지원으로 연명하게 하는 것은 소목적이다”라고 말했다. 교육 백년대계에 대해서는 “강요가 아니라 권고가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지선다형 지식으로 AI시대를 돌파할 수 있는가”

 

아울러 송 교수는 한국에서 교육 혁신의 핵심은 대학입시 개혁이라고 강조했다. 송 교수는 “과거시험으로 대표되는 강력한 시험의 전통이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미래세대를 묶어두고 있다”면서 “중등교육의 변화 방향을 대학이 가로막고 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개혁적 역량을 100% 발휘한다고 해도 서울대가 알아봐주지 않으면 소용 없다”고 말했다. △수능 자격시험 전환 △학생부와 학교활동 중심 선발 △도농 격차 심화에 대비한 특별 사정 기준 마련 등을 중심으로 입시를 개편해 “학력 경쟁을 개성과 자질 배양 경쟁으로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연 내내 송 교수는 “패러다임 전환의 시기를 놓쳤다”고 탄식했다. “하위 50%의 역량을 높이는 대량 생산 체제의 교육에서 상위 1%를 양성하는 첨단 교육으로 옮겨갔어야 하는데 한국은 질문도 답도 늦었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세계 각국의 치열한 경제전쟁과 지식전쟁을 촉발하는 4차 산업혁명은 고답적인 학력경쟁을 요청하지 않는다. AI 시대를 사지선다형 지식으로 돌파할 수 있을까”라고 되물으며 정권과 교육부가 나서 “재정 지원과 거시적인 교육대계에 합의를 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 사진=박강수
“한국에서 입시는 양보 불가능한 계급투쟁의 최전선이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 사진=박강수

 

“약자와 동행하는 ‘열린 능력주의’ 추구해야”

 

“한국에서 입시는 양보 불가능한 계급투쟁의 최전선이다.” 이 같은 진단으로 첫 마디를 뗀 윤평중 교수는 “명문학교 진학을 통해 평생 개인이 얻게 되는 지대(rent)가 비용을 초월하기 때문에 학벌사회의 특징인 과잉 지대 추구가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이러한 특징들이 “진보적인 이론과 교육정책이 넘쳐나지만 현실에서 좌초하는 원인”이라고 짚으며 최근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와 함께 주요 담론으로 급부상 중인 능력주의에 대한 정치철학적 분석을 시도했다. 이른바 “열린 능력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윤 교수가 보기에 오늘날 한국에는 능력주의에 대한 두 가지 부정적인 평가가 존재한다. 하나는 “능력이라는 것이 시험에서 획득한 점수와 동일시 되는 풍토”다. 한 번의 대입이 이후 계층을 결정지어버리는 학벌주의는 이런 시험 능력주의의 결과이기도 하다. 또 다른 시선은 “능력주의가 약육강식∙승자독식∙신자유주의 착취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한다”는 비판이다. 이에 대해 윤 교수는 “수긍 할만 하다”고 말하면서도 ‘능력과 노력에 따른 보상체계’로서 능력주의를 “비판적으로 보완하는 방안을 살펴봐야 한다”고 밝혔다.

첫 번째 호명되는 철학적 도구는 존 롤스의 정의론과 ‘차등의 원칙’이다. 차등의 원칙은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은 그 사회의 가장 취약한 약자에게 최대의 혜택을 안겨줄 수 있을 때에만 허용될 수 있다는 원칙이다. 시험 점수는 능력의 지표일 수 있지만 그 능력의 뒷배경인 가정 환경, 부모의 경제적∙교육적 수준 따위는 선택이나 노력의 결과가 아니다. 이런 선택한 바 없이 주어진 조건들을 일부 보정해 분배에 반영해야 한다는 의미로, 지역∙성별∙계급∙인종∙장애 등을 고려한 적극적 우대조치가 이러한 정의론의 원리에 기반하고 있다.

 

“학력이라는 지대와 노력을 구분해 분배해야”

 

이어서 윤 교수가 능력주의 본연의 의미를 고찰하기 위해 소환하는 철학자는 아리스토텔레스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각자의 몫을 각자에게”라는 간편하고 명쾌한 정의(justice)에 대한 정의(definition)를 내린 것으로 유명하다. 윤 교수는 이 정의론을 통해 학력이라는 지대로 타인이 노력해 얻은 몫을 빼앗으려 드는 ‘시험성적지상주의적 능력주의’와, 학벌사회 타파를 내세우며 학력과 노력의 차이까지 무마시키려고 하는 진보적 평등교육의 이상이 모두 극복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즉, 윤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능력주의는 기본적으로 정당한 노력과 성과에 걸맞은 보상을 분배하는 시스템이어야 하고(아리스토텔레스) 여기에 차등의 원리를 적용해 “패자부활전을 제도화하고 약자와 동행하는” 체계적 기반을 갖춰야 한다. 이런 “열린 능력주의만”이 현실성과 정당성을 두루 갖출 수 있다는 것이 윤 교수의 생각이다. 윤 교수는 “한국교육의 진짜 문제는 능력주의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왜곡된 능력주의가 진보적 능력주의를 압도하는 현실에 있다”고 지적했다.

 

박강수 기자 pps@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