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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냐고 물으면 "방학 있어 산다" 하지요
왜 사냐고 물으면 "방학 있어 산다" 하지요
  • 최철규 기자
  • 승인 2005.02.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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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잊은 실험실 풍경_ 성균관대 분자유전학 실험실(지도교수 최철용)

방학은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반성과 전망을 풍부하게 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실험실에서 방학은 마음껏 실험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으로 통한다. 쉼을 알지 못했던 선학들의 학문 생활과 닮았다. 차갑고 지루한 겨울의 스산한 풍경도 밤샘 실험과 연구에 대한 열기로 꽉  찬 그곳에 들어설 곳이 없다. <편집자 주>

인간게놈프로젝트에 의해 유전자 지도가 완성되자 이를 제일 반긴 분야는 의학이다. 질병의  생체적 조건을 탐색하고 이를 근거로 암 등의 난치병 연구에 대한 희망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전자 연구가 의학적 효과를 낼 수 있기 위해서는 실험실에서의 기초 연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암 억제 유전자를 연구하는 성균관대 분자유전학 실험실(지도교수 최철용)이 수행하는 연구가 대표적이다. 분자유전학 실험실의 주 연구 주제는 발암 유전자와 암 억제 유전자간의 관계를 분석해 세포내에서 암 억제 유전자가 어떠한 방식으로 불활성화되고, 어떠한 경로를 통해 암을 유발하는지를 밝혀내는 것이다.

건강한 삶에 대한 인류의 관심과 미래가 집약돼있고, 게다가 시장에서의 세계적 경쟁이 하루가 다르게 달아오르는 분야인 만큼, 최 교수의 스케줄에는 방학을 암시하는 어떠한 흔적도 없다. 아침 9시 출근, 밤 10~11시 퇴근. 그렇게 월화수목금토. 그 시간동안 해야 할 일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어 눈을 어지럽힐 뿐이다.

“다른 사람들이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묻곤 합니다. 하지만 과학은 기본적으로 경쟁입니다. 동일한 주제로 많은 실험실들이 불을 밝히고 있는데, 실험 경쟁에서 뒤지게 되면 그동안의 연구와 실험이 물거품이 됩니다. 더 좋은 설비와 실험 운영비가 많은 곳과 경쟁하려면 하루 24시간도 모자라죠.”

소득을 위한 흰 가운에 비릿한 약품 냄새가 진동하리라 예상한 실험실이었지만, 정작 느낄 수 있는 것은 탐구열로 꽉 차 있는 연구원들의 진지함뿐이다. 한켠에 마련된 실험실 게시판에는 요일별로 실험실을 관리하는 연구원들의 명단이 붙어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연구원들이 매일 출석부에 도장을 찍는다. 실험실 한쪽에 마련된 연구용 책상에서는 밤새 불이 밝혀진 듯한 스탠드 아래서 한 연구원이 최신논문 분석에 몰두하고 있었다.

대학원생들은 방학 중 1주일에 두 번씩 돌아가며 최신 논문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세미나를 갖는다. 지도교수 이하 전원이 참가해 프로젝터를 사용해 가며 진행하는데, 세미나의 마지막 순서가 연구 결과들을 영어로 요약하는 작업이라 하니 결코 의례적이거나 형식적인 모임은 아니다. “기초적인 연구 분석과 프레젠테이션 방법을 연습할 수 있으니, 방학은 참 좋은 시간이죠.” 최 교수의 자신에 찬 한마디다.

그러나 실험만으로 실험실 분위기를 만들어 나갈 수는 없다. 실험실 분위기는 지도교수의 철학에 크게 좌우되기 마련인데, 최 교수는 학생과의 거리를 좁히고 생활 전반에 대한 파트너가 되고자 최소한 1주일에 한번은 연구원들과 점심 식사를 한다. 이제는 업무에 쫓겨 식사 시간을 잊고 있으면 연구원들이 먼저 데리러 오기까지 한다고 한다.

신체에 담겨있는 미세 세계에 대한 탐구 의지와 연구원들간의 관심과 애정. 춥고 지루한 겨울 방학을 잊게 만드는 팔팔한 힘은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일 것이다.

최철규 기자 hisfuf@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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