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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민주화운동사
대구경북민주화운동사
  • 이지원
  • 승인 2021.06.25 1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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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기획), 대구경북민주화운동사편찬위원회 지음 | 선인 | 612쪽

대구경북은 현재 수구보수 세력의 아성으로 알려져 있다. 87체제 이후 역대 선거에서 진보적 정당이 승리한 적이 한 번도 없으면서 이런 평가가 굳어졌다. 하지만 대구경북이 대한민국 성립 이래 줄곧 이랬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해방 이후 전개된 주요한 민주화운동이 대구경북에서 시작하거나 선도했던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은 1970년대까지 이어지다가 1980년 광주항쟁을 기점으로 흐름이 바뀌었다 할 수 있다. 5·16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권력기반을 강화하기 위해서도 출신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자신을 반대하는 민족민주운동세력을 탄압하고 제거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60년대 중반에서 유신시기에 일어난 중요한 공안사건의 관련자가 대구경북지역에 집중되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면서 1950~60년대 진취적이고 개방적 시민의식을 가졌던 대구경북 지역은 1970년대를 거치면서 서서히 보수화되어 갔다. 

1980년대 대구경북지역 민주화운동 세력은 지배세력의 탄압에 맞서며 다양한 영역에서 치열하게 활동을 전개했지만, 지역주의 통치의 장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 결과 보수대연합과 김영삼 정부의 출범을 막지 못해 30여 년간 수구보수의 아성이라는 대구경북의 정치적 지형을 초래하고 말았다.

그들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 강고하고도 치열한 투쟁을 통해 지역 민중에게 민주주의와 민족통일과 민중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사회건설에 대한 전망을 제시해왔다. 그러면서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지역 민주화운동을 새롭고 다양한 형태로 전개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수구·보수 세력의 심장부에서 민주주의의 의지를 끊임없이 표출하고 그들을 타격(압박)함으로써, 한국 사회 민주주의 발전에 중요한 보루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진보적이나 고립된 투쟁을 넘어 지역대중을 설득하여 정치적 다수가 될 수 있는 대중적 활동을 강화할 책무 또한 떠안고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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