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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등반 15] 그런 깨달음은 없다
[한민의 문화등반 15] 그런 깨달음은 없다
  • 한민
  • 승인 2021.06.22 0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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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달관 세대라는 말을 들어보셨는가? 달관 세대라는 말은 어떤 신문의 특집 기사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 신문은 저성장, 장기 불황 시대에 좌절해 자신을 ‘88만원 세대’, ‘(연애 · 결혼 · 출산을 포기한) 삼포 세대’라고 자조하던 20 · 30대 가운데 “그래 봐야 무슨 소용이냐”는 젊은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면서 이들을 ‘달관 세대’로 부른다.

달관 세대는 일본의 사토리 세대를 연상케 한다. 사토리 세대는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에 태어난 일본 젊은이들을 이르는데, 미래가 절망적이라는 현실을 냉정하게 인정하고 현실에 만족하며 사는 게 이들의 특징이다. 사토리(さとり)는 ‘깨달음’, ‘득도’라는 뜻이다. 그래서 사토리 세대를 일러 ‘득도 세대’라고도 한다.

해당 신문에 따르면, 달관 세대는 기성세대와 다른 직업관을 갖고 있다. 이들은 정규직으로 입사해 뼈 빠지게 일하더라도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으며 정규직이 되었다고 해서 미래가 보장되는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규직에 목매지 않는다. 

대신 이들이 직업을 선택하는 최우선 기준은 ‘여유 있는 삶의 보장’이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비정규직 삶을 영위한다. 달관 세대의 라이프스타일 역시 기성세대와 다르다. 이들은 “풍요로운 시대에 태어난 덕에 돈 없어도 재미있게 살 수 있는 방법은 많다”고 말한다. 비정규직인 이들은 명품 옷, 좋은 레스토랑, 개봉 영화관 같은 ‘고비용’ 소비엔 관심이 없다. 중저가 옷을 입고 햄버거와 떡볶이를 먹으며, 집에서 영화를 보거나 카페에서 친구와 수다를 떨면서 시간을 보낸다.

달관 세대는 정규직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들은 승진을 위해 삶을 희생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존 정규직과 다르다. “직장에서 승승장구하는 것은 어차피 소수일 뿐이기 때문에 일을 위해 지금 누릴 수 있는 행복과 여가 생활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생각으로, 이들은 많은 연봉을 포기하면서까지 ‘저녁이 있는 삶’을 찾아나서고 있다.

얼핏 그럴 듯해 보이는 이런 분석은 크게 잘못되어 있다. 첫째, 지금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의 삶을 영위’한다는 것인데 청년들한테 물어보라. 그들이 과연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의 삶을 선택했는지. 정규직으로 사람 뽑는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고 기사를 쓸 일이다. 

삼포세대는 연애, 결혼, 출산 등 삶에 있어 중요한 무엇인가를 ‘포기했다’는 뜻이다. 포기라는 것은 자발적 선택처럼 들리지만 전혀 자발적이 아니다. 연애와 결혼, 출산에는 돈이 든다. 그 돈을 마련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것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즉 절망의 결과가 포기다. 그런 이들이 갑자기 달관을 했다?

그건 달관이 아니라 합리화다. 이솝 우화의 ‘신 포도와 여우’ 이야기 아실 것이다. 아무리 해도 포도를 먹을 수 없었던 여우는 결국 포도를 포기하며 ‘그 포도는 실거야’라고 합리화한다. 소확행, 욜로,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어, 어차피 인생 혼자 사는 거야... 이게 깨달음의 결과가 아닌 증거는 최근 두드러지고 있는 관찰예능의 유행에서 찾을 수 있다. 

TV에는 남들의 연애, 결혼, 육아 등을 보여주는 프로그램들이 넘친다. 인터넷에는 남의 연애사와 남의 아이의 재롱에 일희일비하는 랜선오빠, 랜선이모와 같은 프로참견러들이 널렸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이다,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아 기르는 자신의 모습을. 돈이 없어서 포기했다지만 연애, 결혼, 출산의 욕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둘째, 일본의 사토리 세대와 비슷하다는 이유에서 달관이란 말을 끌어온 것 같은데, 한국과 일본은 다르다. 문화심리학자로서 하는 얘기다. 주어진 사회적 역할에 충실해야 하고 거기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일본인들은 자신의 현실에 만족하고 달관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억울하고 화가 난다. 그래서 그것을 얻기 위해 분노하고 싸워왔다. 격동의 현대사에서 한국이 이루어낸 모든 것들은 우리가 우리의 현실에 만족하지 않은 결과다. 

애초에 가질 수 없는 것을 원래 나는 갖고 싶지 않았다고 합리화하는 어설픈 깨달음보다는 결혼자금을 털거나 대출을 땡겨 코인에 때려박고 정부는 왜 내 투자금을 보전해주지 않느냐고, 청년들이 코인에 올인하도록 나라는 무얼 했느냐고 분노하는 편이 훨씬 한국적이다. 분노는 에너지를 동반하고 에너지는 변화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한민 문화심리학자
문화라는 산을 오르는 등반가. 문화와 마음에 관한 모든 주제를 읽고 쓴다. 고려대에서 사회및문화심리학 박사를 했다. 우송대 교양교육원 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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