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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요청 “아이비리그를 해체하라”
민주주의의 요청 “아이비리그를 해체하라”
  • 박강수
  • 승인 2021.06.23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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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대학가_부자 선호하는 대학, 특권 세습의 장이 된 고등교육

2019년 3월 12일, 미국 연방검찰청은 ‘바시티 블루스 작전’의 수사 결과를 공표한다. 한국에서는 이른바 ‘미국판 스카이캐슬 사건’으로 알려졌던 대학 입시 부정 스캔들이다. 학부모와 대학 관계자 53명이 기소됐다. 입시 컨설턴트 겸 브로커에게 뇌물과 금품을 제공하고 아이비리그를 포함한 미국 내 유수의 명문대학에 자녀들을 부정 입학시킨 혐의다. 청탁을 의뢰한 사람들은 유명 연예인과 디자이너, 변호사, 기업인 등 상류층이었다. 이들은 체육우수생 특별 전형을 통해 학생들을 가짜 운동선수로 둔갑시키거나 대리시험을 교사해 대학의 앞문도 뒷문도 아닌 ‘옆문’으로 아이들을 밀어 넣었다.

“이제 (명문) 대학은 전보다 더 특별한 선망의 대상이 됐다. 부자들이 자식을 대학에 보내려고 감옥에 갈 위험까지 감수한다면 정말 가치 있는 일 아니겠나.” 피의자 다수가 유죄 판결을 받은 뒤 탐사보도 전문 저널리스트 다니엘 골든은 이렇게 평했다. 대입 스캔들은 단순히 특권층 일부의 교묘한 반칙 플레이를 폭로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미국사회 내 엘리트 대학의 압도적 위상과 힘을 보여주었다는 해석이다. 명문대 졸업장은 이미 ‘좋은 교육’이 아닌 ‘특권과 자격’의 기표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스캔들 이전부터 고등교육이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부자 대학과 부자 시민 사이 담합의 장이 됐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대입 부정 스캔들을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작전명 바시티 블루스'(2020). 사진=IMDB
대입 부정 스캔들을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작전명 바시티 블루스'(2020). 사진=IMDB

 

 

하버드는 교육 시설을 갖춘 헤지펀드다

 

아이비리그는 그 카르텔의 상징이다. 역사학자 샘 하셀비와 반독점 경제 정책 연구자인 맷 스톨러는 지난달 28일 고등교육전문지 <크로니클 오브 하이어 에듀케이션(이하 크로니클)>에 기고한 논평을 통해 “극소수의 초부유층 대학들이 민주주의를 망가뜨리고 있다. 아이비리그 카르텔을 해체할 때가 되었다”는 주장을 내놨다. 이들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격차가 대학에서 재현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미국 대학 교수의 75%는 정년 보장을 받지 못하는 상태이고 지난해 팬데믹 여파로 사라진 교수∙연구자 일자리만 57만개에 달한다. 그 사이 미국 상위 20개 명문대학이 적립한 기부금은 작년 기준 3천110조달러를 넘어섰다. 뉴질랜드, 핀란드, 칠레의 국내총생산(GDP)보다 많은 액수다.

이 기부 적립금은 과세 대상이 아니다. 대학은 기금을 굴려 사모펀드 같은 고위험 금융상품에 투자한다. 비영리적 성격의 교육 기부금을 금융기관처럼 운영하는 것이다. 하셀비와 스톨러는 “’하버드는 교육 시설을 갖춘 헤지펀드’라는 농담이 틀린 말이 아니다”라며 미국의 고등교육 기금이 “‘예일 모델’이라고 불리는 조직적인 투자 시스템 아래 꾸준히 수익을 불려왔다”고 설명한다. ‘예일 모델’은 예일대에서 펀드매니저로 암약한 데이비드 스웬슨이 개발한 투자 체계로 2015년 기준 미국 전체 고등교육 기금 6분의 1 이상이 그의 손을 탄 전문가들에 의해 운용될 정도로 널리 퍼졌다. 고위험 투자를 추구하는 ‘예일 모델’은 불안정성을 노정했고, 그 결과 “2009년 금융 위기 당시 월가의 어떤 기관 못지 않게 많은 구제금융이 아이비리그에 투입됐다”고 필자들은 전한다.

 

편향된 선발제도 통해 ‘금수저’로 가득 찬 캠퍼스

 

명문 사립대들이 차곡차곡 부를 늘리는 사이 대학 안팎의 불평등은 심화된다. 교육 저널리스트 폴 터프는 그의 저서 『인생의 특별한 관문』(글항아리, 2020)에서 “명문대학들은 부유층 수험생을 선호하며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편중되게 뽑는다”고 설명한다. ‘금수저 집안’일수록 문화 자본과 기회만 풍부한 것이 아니라 제도마저 편향돼 있다는 말이다. 대학 입장에서는 부유한 동문을 확보할수록 등록금 수입도 안정적이고 기부금 확보도 유리해진다. 동시에 대학 명성의 지표가 되는 ‘US뉴스 대학 랭킹’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입학생 SAT 점수를 높이고 합격률을 낮춰야 한다. 이러한 편향이 누적된 결과는 ‘높아진 성채’다. 1940년 85%였던 하버드대 합격률은 1970년 20%, 올해에는 3.4%까지 떨어졌다.

 

 

이른바 ‘아이비 플러스(기존 아이비리그 8개 대학에 스탠포드, MIT 등 명문대를 묶어 부르는 이름)’ 학부생 3명 중 2명은 고소득층 자녀다. 소득분위 최상위인 1% 가정의 학생들이 입학생의 14%를 차지한다. 반면 소득분위 하위 20%는 고작 3.8%다. 대학은 부자 학생을 선호한다. 사진=AP/연합
이른바 ‘아이비 플러스(기존 아이비리그 8개 대학에 스탠포드, MIT 등 명문대를 묶어 부르는 이름)’ 학부생 3명 중 2명은 고소득층 자녀다. 소득분위 최상위인 1% 가정의 학생들이 입학생의 14%를 차지한다. 반면 소득분위 하위 20%는 고작 3.8%다. 대학은 부자 학생을 선호한다. 사진=AP/연합

 

좁아진 병목을 뚫고 입성한 교정은 부자들로 채워진다. 하버드대의 경제학자 라즈 체티 연구팀이 지난해 2월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아이비 플러스(기존 아이비리그 8개 대학에 스탠포드, MIT 등 명문대까지 묶어 이르는 표현)’ 입학생의 14.5%가 소득 백분위 최상위 1% 가정 출신이다. 반면 소득 백분위 하위 20%에 속하는 학생은 3.8%에 불과하다. 아이비 플러스 대학 학부생 3명 중 2명은 사실상 부유층 가정 출신이다. 최상위 명문대 졸업자는 다시 고소득층으로 진입한다. 폴 터프의 설명에 의하면 아이비 플러스 출신이 30대 중반에 연봉 63만달러 이상 상위 1%에 속할 확률은 20%인 반면 그 다음 등급 명문대 출신은 9%, 커뮤니티 칼리지 출신은 0.3%다. 엘리트 고등 교육을 경유해 부는 세습되고 문턱에 이르지 못한 다수는 배제된다.

 

모두를 위한 공교육에 투자하라

 

하셀비와 스톨먼은 “미국 민주주의의 전성기는 모두 공교육이 튼튼했던 시절”이라고 주장하며 반민주적이고 위선적인 엘리트 대학 카르텔에 대한 개혁을 요구한다. 하버드대 대학신문 <하버드 크림슨> 조사에 의하면 하버드 교수진 구성원의 77.6%는 스스로를 부의 재분배를 중시하는 좌파라고 여기지만 “헤지펀드 하버드”는 여전히 아이비리그 기득권의 노른자위에 있다. 컬럼비아대는 ‘인종 정의와 철폐의 민주주의’라는 커리큘럼을 개발하기 위해 5백만 달러 보조금을 지원 받았지만 학내 대학원생들의 파업권을 짓밟았다. 예일대는 소속 교수들이 공화당에 대한 도덕적 비난을 퍼붓는 동안 방역 최전선의 필수노동자들에게 기숙사 제공을 거부했다. 겉으로는 정의를 외치면서 자신들이 차지한 자원은 내놓으려 하지 않는 위선의 사례들이다.

따라서 필자들은 “아이비리그나 고등교육계가 스스로 개혁하기를 바라기는 힘들다. 변화는 소수의 특권 계급이 아니라 민주적 공교육과 정치로부터 비롯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이들이 주목하는 구체적 제안들은 사립대학 기부금에 대한 과세, 저소득층을 위한 공립대학 무상화, 조 바이든 대통령의 ‘미국 일자리 계획’, ‘미국 가족 계획’ 등 재정 지출 방안 등이다. 고등교육의 사회적 책무와 공공성을 강화하고자 한 시도들이다. 세계대학랭킹 상위권을 독점한 미국의 대학경쟁력을 바라보는 미국사회의 시선이 변하고 있다. 망가진 민주주의를 복원하고자 한다면 ‘더 많은 이들을 위한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강수 기자 pp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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