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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밍아웃’ 네 명의 그녀들, 남대문시장에 가다
‘암밍아웃’ 네 명의 그녀들, 남대문시장에 가다
  • 김재호
  • 승인 2021.06.16 1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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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암밍아웃 Vol. 2: 서울시장 편』 금정화, 유지현, 정수빈, 이정아 지음 | 아미북스 | 156쪽

 

암으로 삶의 새로운 앎을 알아간 ‘아미’

암이랑 맞짱 뜨며 여전히 잘 살고 있다

“살아 있는 한 희망이고, 또 누군가의 희망이 되고 싶다.” 저자 소개에 나온 이 한 문장이 아련하다. 책에 등장하는 금정화, 유지현, 정수빈, 이정아 씨는 평범한 사람으로 살다가 암 환자가 됐다. 『암밍아웃 Vol. 2: 서울시장 편』을 출간한 아미북스는 암 환자들의 경험을 담은 『암밍아웃 Vol. 1: 제주도 편』을 지난해 4월 출간한 바 있다. 이번에는 암 환자들이 서울의 시장들을 무대로 삼았다. 

세포를 움직이게 하는 건 웃음이다. 사진=아미북스

첫 번째 주인공은 금정화 씨다. 유방암 1기 진단을 받았다가 재발했다. 총 세 번의 수술, 4차레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 15회를 받았다. 그녀는 ‘글과 그림, 춤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아미’다. 여기서 ‘아미’는 이 책에서 “‘암’을 통해 삶의 새로운 ‘앎’을 알아간 이들”을 표현하는 단어다. 책 제목인 ‘암밍아웃’은 ‘암’과 ‘커밍아웃’을 합친 단어로 스스럼없이 암 환자임을 밝히고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금정화 씨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여행 가방을 싸듯 필요한 짐을 꾸리고 호텔 체크인하듯 입원 절차를 밝는다. 그리고 여행을 온 듯 주부가 아닌, 다시 나만의 시간이 시작된다.” 병원가는 것을 여행가는 마음으로 여긴다면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질 듯하다. 우리 일상이 모두 여행이 아니던가. 그녀는 그동안 자신의 예민한 마음을 잘 보살펴주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앞으론 “내 마음의 단골이 되어 더 자주 들여다보고 아껴주며 사랑하겠노라고!” 다짐했다. 

금정화 씨는 친정엄마와 함께 남대문시장에서 쇼핑을 하고 맛난 것 먹는 걸 즐겼다. 경주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오던 어머니를 대신해, 이젠 딸과 함께 남대문 시장에 간다. 책에는 남대문 시장의 명소들이 사진과 함께 담겨 있어 마음이 훈훈해진다. 한편, 그녀는 항암 작용으로 머리카락을 잃은 후, 머리가 다시 자라나면서 새로운 헤어 스타일로 바꿨다. 금정화 씨는 “살다가 어쩔 수 없이 다른 길로 가게 되더라도 겁먹지 말자. 그 곳에서 또 다시 나의 길을 가게 되더라도 겁먹지 말자. 그 곳에서 또 다시 나의 길을 찾아 가면 될 일이다. 그 길을 나설 용기만 잃지 않으면 된다”라고 적었다. 

금정화 씨는 다시 나에게로 가는 여행 중이다. 사진=아미북스

또 다시 찾아나서는 나만의 길

두 번째 주인공은 ‘치유 공동체를 꿈꾸는 아미’ 유지현 씨다. 난소암 3기를 진단받았다. 세 번의 수술, 6차례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 8회를 받았다. 그녀는 영국의 암 환자 공동체인 ‘매기센터’처럼 암 경험자와 가족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싶어한다. 그게 그녀의 제2의 인생이다. 책에 따르면, 1996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첫 번째 매기센터가 생긴 후 영국, 유럽, 홍콩 등 20여 개 매기센터가 암 환자들의 자활을 돕고 있다. ‘매기’란 이름은 암 환우였던 매기(Maggie Keswick Jencks)의 이름에서 따왔다. 유지현 씨는 간호사였다. 그래서 더욱 암 환자나 가족들의 걱정과 궁금증을 이해한다. 한국의 매기센터를 꿈꾸는 유지현 씨의 소망이 이뤄지면 좋겠다. 

유지현 씨는 목숨 걸고 ‘나’를 바꾸자고 한다. 집착하지 않고, 파고들지 않기. 대인관계와 대화습관 바꾸며, 아이들과 애착 관계 해지하기 등. 혁명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달라질 수 없다. 강낭콩, 엄지손톱, 스테플러 심, 와이셔츠 단춧구멍 그리고 유지현 씨의 직장(直腸)은 1센티미터다. 이 1센티미터로 그녀는 살아 있다. 그녀의 소원들에는 ‘산티아고 순례길 가보기’가 있다. 소망이 이뤄지길 나 역시 기원한다. 

유지현 씨는 기분 좋은 에너지가 내 몸을 두드리며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장소가 좋다. 사진=아미북스

1센티미터에 기대어 사는 삶

세 번째 주인공은 정수빈 씨다. 폐암 4기를 진단받고 4차례 항암치료를 받았다. 현재 정수빈 씨는 표적항암치료를 거부하고 자연치유 중이다. 항암이 아니라 생활과 생각습관을 바꾸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수빈 씨는 더 많은 암 환우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자신의 자연치유 방법과 변화 과정을 유튜브로 기록하고 있다. 그녀는 “암 선고! 암울하며, 꿈도, 희망도, 미래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암은 나에게 여유로운 시간을 선물했고, 암에 관해 공부하게 했다... 그렇다. 나는 행복한 암 환자다”라고 적었다. 

군대에서 휴가 나온 아들은 그녀를 위해 암 전문식당에 데려갔다. 애틋한 아들이다. 정수빈 씨는 자신의 아들 휴대폰 번호를 저장하며 이름을 ‘방파제’로 저장했다. 아들이 선물한 ‘방파제’라는 시의 제목에서 따왔다. 시의 한 구절을 보자. 

“무심히도 빨리 지나가 버린 세월에
나는 당신의 상처를 봅니다.
파도에 깊게 패인 홈
해풍에 깎여나간 처연한 그 뼈대
당신이 견뎌온 인고와 감내의 시간은 
어쩌면 내겐 상상하기에도 벅찬 것이겠지요. 

이제 나는 당신의 옆에 서려 합니다.
강렬히 몰아치는 파도에도,
매섭게 불어오는 해풍에도,
당신이 내 뒤에 몸을 맡길 그날까지
당신의 옆에 나는 서렵니다.

나는 당신의 방파제가 되렵니다.” 

- 정수빈 씨의 아들이 쓴 시 중 일부 -

정수빈 씨는 간절히 소망하면 불가능한 일도 실현된다고 믿는다. 바로 '피그말리온' 효과다. 사진=아미북스

네 번째 주인공은 ‘손맛으로 온기를 나누는 아미’ 이정아 씨다. 그녀는 자궁내막암 1기를 진단받았다. 끝내 자궁적출을 했다. 웃을 일 많은 미래를 꿈꾸는 이정아 씨는 “뜨끈한 국물에 밥을 말아 훌훌 넘기다 보면, 국밥의 뜨거움이 상처받은 내 마음을 달래고 어린 시절의 배고픈 나를 위로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오늘도 난 시장에 가 땀을 한 바가지 흘리며 뜨거운 국밥을 먹을 것이다”라고 적었다. 

암은 이정아 씨에게서 어머니와 오빠를 데려갔다. 이제 그랬던 암이 그녀를 찾아온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어느새 암이라는 이 녀석을 이겨보리라 마음 먹으며 오늘도 암이랑 맞짱 뜨며 잘살고 있다”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이정아 씨는 아프고 난 후 ‘남에게 아픈 말 하지 않기’를 연습 중이다. 아픈 애와 장애아 둘을 키우는 엄마로서 예전에 들었던 아픈 말이 가슴에 박혀 욕심을 내려놓으려는 것이다.  

이정아 씨에게 내가 만든 작은 천국은 텃밭이다. 사진=아미북스

책의 마지막에는 「남대문시장 호떡이 촉발한 ‘욕망’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네 명의 주인공들은 남대문시장에 가서 각자 사고 싶은 것들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각양각색의 물건들은 그녀들을 환하게 웃음짓게 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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