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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을 사회에 환원하는 교수들
학문을 사회에 환원하는 교수들
  • 이민선 기자
  • 승인 2004.12.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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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육에서부터 ‘IT평화봉사단’까지

‘뛰어난 연구업적’에만 몰두하는 학계 분위기 속에서 사회봉사를 하기 위해 시간을 내기란 힘든 일이다. 그러나 찾아보면 자신의 학문을 사회에 환원하며 즐거움을 찾는 교수들이 꽤 많다. 심리 치료를 해주는 교수, 성교육을 하는 교수, 사진을 찍어 주는 교수, 철학하는 묘미를 알려주는 교수, 무료 인터넷 교육을 하러 해외로 나가는 교수 등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추영국 원광대 교수(생명과학부)는 전북 지역 일선 고등학교에서 성교육을 하는 교수로 유명하다. 보통 청소년 대상의 성교육이 따분한 비디오를 틀어주며 시간을 때우는 데 급급하지만, 추 교수의 성교육은 ‘실전’을 위한 것이다. 예컨대 성관계를 맺더라도 임신은 어떻게 피해야 할지, 낙태를 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알려준다.

추 교수가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실전형 성교육’에 신경을 더욱 쓰기 시작한 것은 ‘성의 과학’이라는 교양과목을 담당하고 나면서부터다. 성과 관련한 학생상담을 받으면서 백지상태에 가까운 학생들의 성관련 지식을 확인하며. 성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한 고등학교 시절부터 교육을 확실히 해야 한다는 생각을 절감했다. 한 해 낙태 건수 1백50만이란 수치가 우연히 나온 결과가 아니라는 게 추 교수의 생각이다. 한 학기에 2~3번씩, 벌써 9년째 해오고 있는 추 교수는 다음 학기에도 청소년 대상 성교육을 계속할 예정이다.

고등교육 하나만으로도 벅찬 상황에서 중등교육의 방향을 새롭게 제시하고, 고등학생들에게 ‘사유하는 재미’와 ‘토론의 열기’를 전해주는 데 푹 빠진 교수들도 있다. 울산대 철학과 교수들이 그들. 지난 1999년 울산지역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청소년 철학교실’ 문을 연 이래, 6년 째 일년에 두 번씩 고등학생 대상 철학교실을 꾸준히 개최하고 있다.

작년 12월에도 ‘제11기 청소년 철학교실’을 개최한 5명의 교수들은 ‘미국, 어떻게 볼 것인가’, ‘퇴계와 율곡-생애와 사상’, ‘무위와 유위’ 등의 테마로 강의를 했고, ‘쌀 개방’, ‘난 너를 충분히 배려하고 있어’를 주제로 심층토론 자리를 마련했다. 논술대회는 물론 철학유적지 답사 프로그램도 넣어 참여 학생 50명의 눈과 귀를 빼앗았다.

김진 울산대 교수(철학과)는 학생을 바보로 만들어가는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고등학생을 구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청소년들이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바람직한 인간상을 스스로 만들어 가고, 그런 그들에게 폭넓은 세계관을 제시하고 싶었다”라고 취지를 밝힌다.

하지만 무료로 운영되는 철학교실은 교수들에게 부담이다. 현재는 학교 측에서 6백만원 정도의 지원을 해주지만 여전히 미흡한 것이 사실. 강좌의 절반을 담당하고 있는 철학과 교수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외부 강사에 대한 강의료 지불이나, 철학 유적지 답사 비용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좀 어렵겠지만 현재 한 반으로 운영되는 철학교실이 앞으로는 두 반으로 분반돼 운영될 정도로 활성화됐으면 좋겠다”라고 욕심을 내비친다.

최성 남서울대 교수(컴퓨터계열)는 5년전부터 ‘IT 평화봉사단’을 이끌고 있다. 방학 때만 되면 어김없이 학생 20여명을 이끌고 중국, 우즈베키스탄 등지로 해외동포를 만나러 간다. 인터넷과 정보화에 소외돼 온 이들에게 무료 인터넷 교육을 실시하기 위해서다.

지난 여름방학 때 최 교수는 중국 연변지역 조선족을 찾아갔다. 매년 여름방학이면 중국을 방문했으나, 이번에는 조선족 장애인 개체경영인협회 회원 및 가족 2백여 명을 만나고 왔다. 중국 내에서 소수민족인데다가 몸이 불편한 이들이 IT교육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이들을 찾아 나선 것. 최 교수와 학생들은 한국에서 마련한 중고 컴퓨터 14대를 기증하고, 인터넷과 OA 교육, 컴퓨터 수리를 실시하고 돌아왔다.

네팔, 파키스탄, 베트남 등도 최 교수의 주요 봉사지역이다. 해외 동포에게 했듯이 인터넷과 OA교육, 컴퓨터 수리를 해줘 현지에서 큰 호응을 받았다. 중고 컴퓨터를 선물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IT교육과 더불어 한글도 알려줬다. 이들 지역에서는 문자가 없는 소수민족이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얼핏 쉬워 보이는 봉사활동이지만 꽤나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다. 3~4주 동안의 체류비와 비행기 삯으로 1인당 1백만원 정도가 소요되고, 중고 컴퓨터를 마련하려면 후원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제가 틈틈이 모아 놓은 약간의 돈에 더해 IT기업들로부터 많은 후원금을 받았고, 중고 컴퓨터는 대학과 기업으로부터 지원받았죠”라고 말한다. 아쉬운 소리를 하기 위해 백방으로 발품을 팔아야 했을 텐데도 별 일 아니었다는 투다.

최 교수는 이번 겨울에도 네팔을 갈 예정이다. 최근 들어 심각한 경제 불황으로 기업의 후원금이 고갈돼 올 겨울 봉사활동이 가능할지 확신할 수 없지만, 네팔 행 비행기를 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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