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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의 문화등반 14] 쉽게 불행해지는 방법
[한민의 문화등반 14] 쉽게 불행해지는 방법
  • 한민
  • 승인 2021.06.15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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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행복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습관 중 하나는 현재가 불행하기 때문에 미래 역시 불행할 거라는 믿음이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현재의 행복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을 떠올려 보면 희망 없는 미래가 오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사람들은 오늘을 근거로 내일을 예측하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실수다. 이름난 석학들의 미래 예측조차 시간이 지난 후에 웃음거리가 되는 일이 흔하다. 19세기 후반만 하더라도 과학자들은 기계가 하늘을 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코웃음쳤다. 최초의 비행기가 날아오른 것은 불과 몇 년 후(1903년)의 일이다.

개인용 컴퓨터가 막 보급되던 시기, 하드 드라이브의 용량은 20 메가바이트가 안 됐다. 처음 100메가 짜리 하드가 나왔을 때 컴퓨터 전문가들은 일반인들이 그렇게 큰 용량을 쓸 필요가 뭐가 있겠냐며 혀를 찼다. 지금 여러분의 손바닥 안에서 재생되고 있는 드라마 동영상 하나의 크기가 1기가 바이트를 넘는다.  

내일을 상상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중요한 능력이다. 하지만 이 능력에는 문제가 있다. 아직 경험하지 않은 미래를 그려보기에는 재료가 부족한 것이다. 따라서 뇌는 내일을 개념화하면서 오늘이라는 재료로 빈 곳을 채워넣는다. 

배부른 상태에서는 미래의 배고픔을 상상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배고픈 상태에서 미래의 배부름을 상상하기 어렵다. 자신이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사실을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추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캘리포니아 사람들의 행복을 과대평가하였다. 따뜻하고 날씨가 좋은 캘리포니아 사람은 자신들보다 당연히 더 행복하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사람들의 실제 행복도는 그렇게 높지 않았다. 

우리는 미래의 사건을 상상할 때 그 사건의 장단점이 무엇인지 일일이 따져보지 않는다. 대신 일어날 일들을 머릿속에서 그려보고 그 상상에 대해 어떤 감정이 드는가에 기초해 미래를 예측한다. 상상해 본 미래에서 우울하고 답답한 느낌을 받았다면 그 미래는 불행할 거라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라는 뜻이다.

한국인들은 미래가 불행할 것이라 전망하는 경향이 있다. 뉴스를 보면 경제는 이미 파탄났고 2,30대는 영원히 내집을 가질 수 없으며 유례없는 속도로 진행중인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한국이라는 나라는 곧 사라질 것만 같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경제는 늘 나빴고 2,30대가 내집을 가질 수 있었던 시기는 존재한 적이 없으며 한국은 불과 30년 전만 해도 인구가 폭발할 것을 걱정하던 나라였다.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이 미래에 자신이 행복해질 것이라고 예측하는 건 당연히 어려운 일이다. 현재도 미래도 행복할 수 없다면 사람들은 과거에서 그것을 찾으려 한다. 다음은 인터넷에 떠도는 글이다.

대학생: 고등학교 때가 좋았지
직장인: 학생일 때가 좋았지
은퇴 후: 일할 때가 좋았지
노년: 젊을 때가 좋았지

지나고 보면 인생은 늘 좋았다. 지금 그것을 모를 뿐. 과거가 항상 아름다운 이유는 현재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부족한 긍정적 정서를 보충하기 위해 과거의 기억을 들춰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과거에도 항상 나름의 불행이 있었다. 그리고 그 불행의 정도는 어쩌면 현재보다 훨씬 컸다. 옛날에는 출산률은 높았지만 동시에 영아사망률도 높았고, 공기는 맑았지만 가난했다. 사람들 사이에 정은 있었겠지만 이웃 사람이 영문도 모르고 알 수 없는 곳에 끌려가던 역사가 있었고, 그 시절 아름다웠던 노래들은 국가 권력의 검열 끝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과거가 아름답기 위해 현재가 불행해질 필요는 없다. 오늘, 여기서 찾을 수 없는 행복을 지나 버린 과거에서 찾는 것은 도피이며 도피로 얻은 행복은 행복이라 말하기 어렵다. 

한민 문화심리학자
문화라는 산을 오르는 등반가. 문화와 마음에 관한 모든 주제를 읽고 쓴다. 고려대에서 사회및문화심리학 박사를 했다. 우송대 교양교육원 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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