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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프롤레타리아 여류시인, 조선을 애달파하다
일본 프롤레타리아 여류시인, 조선을 애달파하다
  • 김재호
  • 승인 2021.06.18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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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조선 처녀의 춤』 마쓰다 도키코 지음 | 김정훈 옮김 | 범우사 | 206쪽

조선인 징용피해자 진상규명에 앞장서
조선과 일본의 화합과 선린을 강조

“일본 근현대사에 시집 발매금지 처분을 받은 유일한 여류시인”, “최후의 프롤레테리아 여류시인”. 마쓰다 도키코(松田解子, 1905∼2004)에 대한 진보적 시 평론가 도이 다이스케(土井大助, 1927∼2014)의 평이다. 최근 출간된 이 시집은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일본문학)가 번역했다. 김 교수는 마쓰다 도키코에 대해 “그녀의 활동은 조선인들과의 교류, 연대 속에서 빛을 발하는 것이기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라며 “사회참여의 깃발을 내건 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몸부림치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시인의 의지가 시집을 낳았다”라고 밝혔다.

마쓰다 도키코는 일본인으로서 조선인 징용피해자의 진상규명 및 하나오카 사건 해결을 위해 앞장섰다. 하나오카 사건은 해방 직전 일본 아키타현의 광산 하나오카의 중국인 포로 986명이 사망한 일이다. 마쓰다 도키코는 조선일 김일수(1919~不明)와 함께 중국인 피해자의 유골발굴과 송환 운동에 앞장섰다. 말년에는 조선인 피해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작품들을 발표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조선 처녀의 춤』은 일본에서 발매금지 처분을 당한 『참을성 강한 자에게』(도진샤, 1935)의 시들과 해방 전의 시편을 함께 번역했다. 『조선 처녀의 춤』 제3부 조선 관련 시편엔 「8월의 염천(炎天)에」(1951), 「조선 휴전)」(1953), 「조선 처녀의 춤」(1955), 「호송차에서」(1960)가 실려 있다. 

책의 제목인 「조선 처녀의 춤」의 한 구절을 보자. “작두콩 소매의 조선 처녀가 어깨를 들썩인다 / 춤을 추는 처녀의 온몸에서 증오는 흔들리고 / 괴로움이 흘러 녹아 그리움으로 가득 찬다 / 아아! 좋은 민족이여! 좋은 나라 조선이여!” 마쓰다 도키코는 일본작가로서 조선 처녀의 춤에서 눈물을 흘린다고 적었다. 김 교수는 작품 해설에서 “마쓰다 도키코는 춤의 아름다움 속에 조선분단에 대한 안타까움과 일본을 향한 우리의 마음을 동시에 새겨 넣었다”라며 “휴머니즘의 관점에서 조선과 일본의 화합과 선린을 강조해 노래한 작품”이라고 적었다.   

모든 시집의 첫 번째 시는 의미가 있다. 첫 시는 「유방」(1928)이다. “테어나면서부터 프롤레타리아 / 태어나면서부터 영양실조 / 태어나면서부터 아버지는 유치장 / 하지만 아들이여!/ 먹고 싶어서 안달하는 너의 목소리에서 / 나는 새로운 힘을 느낀다 / 너의 운명인 너의 양식 / 지금이야말로 / 복수의 의지가 끓어오른다 / 바짝 마른 양쪽의 유방이여!” 마쓰다 도키코는 시와 한참 멀어져 있다가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할 때 처음으로 이 시를 발표했다. 그녀가 장남을 낳았을 때 남편은 감옥에 있었다. 가난과 투옥, 그 가운데서도 정의와 혁명을 꿈꿨던 여류시인의 비련이 느껴진다. 일본인 군국주의자가 아닌 평범한 이들, 특히 전쟁에 반대하고 피지배자들을 위했던 혁명가들의 삶 역시 비극이었을 것이다. 

역자 후기에서 김 교수는 “일제강점기 제국주의에 항거한 강력한 엔솔로지이며, 탈식민주의적 시집이 돋보이는 유의미한 표현의 집합”이라며 “문화 통제가 공공연히 자행되는 풍토 속에서도 국책에 굴복하지 않고 약자 층을 대변해 휴머니즘과 인간 평등을 부르짖었다”고 평했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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