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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폐된 노동 시간,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할까
은폐된 노동 시간, 피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할까
  • 김재호
  • 승인 2021.06.11 15: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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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우리의 시간은 공평할까』 | 양승광 지음 | 씽크스마트 | 224쪽

나의 시간 모두 확보하는 것보단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게 중요

책의 제목보단 부제에 눈길이 더욱 간다. ‘오늘을 위해 내일을 당겨쓰는 사람들’. 요즘 드는 생각은 운동이나 산책, 문화활동 등은 부지런해야 하기보단 시간적 여유가 있어야 가능할 것 같다. 물론 핑계일 수 있다. 공평한 건 시간뿐이라는 말이 있지만 저자 양승광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는 행복을 “내게 주어진 시간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상태”라고 정의했다. 한국 직장인들 다수가 일 중독에 매몰돼 있다. 나는 오늘 하루 나에게 얼만큼의 시간을 주었을까. 양승광은 “자유를 위한 시간은 그가 처해있는 신분과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멕시코 다음으로 연간 가장 많은 시간 노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승광은 법률적으로 점심 시간은 휴게 시간이지만, 바이어와 만남이나 직장 상사 등과의 식사로 “은폐된 노동 시간”이라고 일갈했다. 메신저 역시 퇴근 후 저녁이 있는 삶을 방해한다. 정부의 한 사무관은 애 보느라 저녁 8시 이후 전화를 받지 못한 공무원을 꾸중했다고 한다. 다만, 퇴근 후에도 내가 해결하면 금방 끝나는 일은 동료의식 때문에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 양승광은 “나의 시간을 모두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많이 확보하는 것”이라고 적었다. 

책의 4장 ‘취업을 준비하는 시간은 동일할까’는 부제와 맞닿아 있다. 시작은 ‘내일을 위해 내일을 당겨쓰는 삶’이다. 1997년 처음 학자금 대출을 받았던 양승광은 여전히 빚을 갚고 있다. 책에 의하면, 2017년 기준 부채를 보유한 20대의 비율은 48.1%다. 평균 부채는 2천385만 원이다. 나 역시 부채를 떠안고 산다. 내 주위에서 부채 없는 이들은 보지 못했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학기 중에도 대학생 55.3%가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응답했다. 양승광은 여기서 질문을 던진다. 대학생은 본 직업이 없는데, 왜 아르바이트는 부업으로 간주되어야 하는가? 그 이유는 △낮은 임금 △짧은 노동 시간 △사업장의 적은 인원 때문이다. 더욱이 양승광은 주휴수당을 안 주고자 성행하는 ‘쪼개기 알바’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현재 주 15시간 이상 일을 하면 아르바이트생에게도 주휴수당들 줘야 한다. 그래서 편의점이나 호프집, 식당 등에선 14시간 이하 2일짜리 아르바이트 공고를 자주 올린다. 저자 양승광은 “주 15시간이라는 경계는 노동하는 사람을 고용보험의 가입자에 편입시키기도, 빼기도 한다”라고 밝혔다. 그는 영세사업장이 부담해야 하는 주휴수당이나 휴가수당을 국가에서 지원해주자고 주장했다. 

책에선 취업 준비 시간과 대학의 현실도 꼬집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하는 학생과 그 시간에 어학연수와 자격증 시험 준빟는 학생. 둘 중에 누가 취업이 잘 될 것인가? 양승광은 “결국 노동소득자를 준비하는 미취업자들 사이에서 시간은 불공평해진다”라고 적었다. 이 불공평의 기원은 다 알다시피 금수저냐 흙수저냐에 달렸다. 아울러, 그는 “대학이 지성의 전당이라는 말은 오래전에 사라졌다”라며 “국가가 원하는 대학은 노동자를 찍어내는 컨베이어벨트가 됐다”라고 비판했다. 또한 양승광은 “젊은 교수들은 스스로를 노동자들을 만드는 ‘생산직 노동자’로 칭하는 자조의 유머를 나누게 된 지 오래”라고 지적했다.  

함께 나누는 삶, 그건 아마도 시간을 좀 더 공평하게 쓰는 삶이 아닐까.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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