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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상황, 연구와 치료 구분이 어려울 수 있다"
"재난 상황, 연구와 치료 구분이 어려울 수 있다"
  • 김재호
  • 승인 2021.06.11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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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창궐하던 당시, 미국 식품의약청은 하이드록시클로로퀸과 클로로퀸을 ‘긴급 사용 허가’했다. 하지만 같은 해 5월, 의학저널 「란셋」에 이 두 가지 처방이 심방세동(부정맥 질환)을 증가시킨다는 비판이 발표됐다. 이에 미국 식품의약청은 '긴급 사용 허가'를 철회했다. 하이드록시클로로퀸과 클로로퀸은 항말라리아제이다. 

지난 3월 「코로나19와 연구윤리」(최은경·신성준·유상호, 이하 논문)가 한국의료윤리학회 제66호에 실렸다. 이 논문은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연구윤리 원칙을 제시한다. 핵심은 신속성과 추후 모니터링이다. 구체적으론 △과학적 타당성 △사회적 가치 △위험 대비 이익 비율 △시간에 민감한 심의 △설명 동의이다. 코로나19 확진자를 연구대상자로 할 경우 잠재적 이익과 위험, 사회적 가치와 과학적 타당성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윤리 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건 ‘연구윤리심의위원회(IRB, Institutional Review Board)’다. 일반적인 연구윤리심의라면 몇 주부터 몇 개월이 걸릴 수 있다. 하지만 실시간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는 상황에서는 여러 변수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논문에선 “때로는 정상 상황에서는 허용되지 않았을 연구 설계나 수행 방식(동물에게 약의 효과를 시험해보는 전임상 생략, 의도적인 인체 바이러스 주입 연구, 오버래핑 모델, 클러스터 임상시험 등)을 고려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특히 재난 상황에서는 연구와 치료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재난 구조 참가자가 연구수행의 일원이 되기도 한다. 

"정상 상황에선 불가능한 연구도 재난 상황에선 추진돼야"

논문의 공저자들은 캐나다의 ‘연구윤리심의 거버넌스’, 국경없는의사회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재난이나 공중보건위기 상황에서의 의사결정 구조가 반영된 연구윤리위원회, 캐나대 맥길대 탠시(Tansey) 교수 등 캐나다 연구자 그룹이 제시한 ‘재난 연구와 윤리에 대한 워킹그룹(Working Group on Disaster Research and Ethics)’의 지침,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개발도상국 대상 연구윤리 체계 등을 분석해, 국내 코로나19 위기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사항으로 다음을 추려냈다. 
첫째, 두말할 나위 없이 과학적 타당성이다. 논문에 따르면, 2016년 세계보건기구(WHO)는 팬데믹 상황에서 연구윤리로 특정 결과를 의도치 않은 연구대상 무작위 배정, 위약 대조(임상시험), 포커스 그룹 및 인터뷰(질적 연구) 등을 권고했다. 둘째, 사회적 가치다.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 제한된 인력과 예산으로 연구를 수행하려면 그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 또한 그 결과 구체적인 혜택을 연구대상자 집단에 줄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위험 대비 이익 비율 및 비례성이다. 논문에선 연구에 따른 이익은 “개발된 의약품이나 기기에 연구대상자나 연구대상자가 속한 집단이 접근 가능한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코로나19로 논란이 가중되고 있는 바이러스 인체 주입의 경우, 윤리성 심의의 비례성을 고려해야 한다. 즉, 그 위험에 따른 연구의 정당성과 윤리적 갈등에 대한 우선적 합의가 필요하다. 

넷째, 시간에 민감한 심의다. 신속한 심의가 필요하되, 여러 변수를 고려해 다양한 윤리적 고려사항과 균형을 이뤄야 한다. 시간에 민감한 심의 전략으론 우선적 심의, 원격과 이메일을 통한 심의, 자문가의 사전 윤리성 검토가 방법이다. 다섯째, 충분한 설명 동의다. 팬데믹 상황에선 연구대상자가 설명을 충분히 들으면, 그것이 조사인지 감시인지 치료와 연구참여인지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다. 개인이 동의를 안 하면 어떨까? 논문에선 “만약 시료나 데이터를 익명화할 경우 연구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나 이때에도 해당 연구가 진행되는 공동체에 대한 낙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고 적었다. 

지난해 4월, ‘코로나19 임상연구 특별심의위원회’가 설치돼 신속한 심의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특별심의위원회를 통해 심의면제 등을 포함해 50여 건이 심의를 진행했다. 또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해와 올해 ‘COVID-19 관련 임상시험 고려사항’을 발표했다. 미증유의 코로나19는 연구의 근간인 연구윤리의 방침도 흔들고 있다. 이에 대응하는 건 연구·심의자들의 몫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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