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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박하게, 만들어진 신
경박하게, 만들어진 신
  • 이지원
  • 승인 2021.06.10 1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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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진 지음 | 삼인출판사 | 256쪽

 

교회와 종교의 비극적 현실, 그 이유를 말하다. 

팬데믹 상황에서 개신교회가 보여준 반사회적 행위, 시한부 종말론과 극단적 보수성, 탐욕에 물든 목사들... 성서에 정통한 한 신학자가 말한다. 교회가 성서를 왜곡했기 때문이라고. 

왜 그들은 성서를 왜곡했는가. 그들은 성서를 어떻게 왜곡했는가. 신학교에는 왜 학문의 자유가 없는가. 신학대학 교수가 말하는 한국의 개신교회 문제, 성서에 대한 올바른 해석으로 통찰하다.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요한계시록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오랜 시간 신학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쳐온 이광진 교수가 학문적 양심을 걸고, 이젠 말한다. 교단의 교리적 검열로부터 자유로운 신학자, 이젠 진정한 신학자로 말한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한 기독교 비판서가 아니다. 신학자의 눈으로 본 철학과 역사와 문화 얘기다. 성경에 정통한 신학자가 쓴 종교, 철학, 문화 칼럼이다. 경박하게, 떠도는 이 시대의 과학적 담론 역시 성서를 왜곡한 종교인과 다름없다고 칼을 꽂는다. 

 

신약학자, 역사와 문학을 통해 성서를 읽다 

‘팬데믹’이라 불리는 전 지구적인 재난으로 인해 오늘날 우리 삶의 양상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설명할 수 없는 변화의 이면에는 혼돈과 불안이 가득하고, 이 틈을 타 혹세무민하는 음모론과 종말론도 그리스도인들을 어지럽힌다. 이 책은 이런 순간에 우리의 의지가 되어줄 성서를 어떻게 읽어야 하고, 종교는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 또 안팎의 일상을 어떻게 가꾸어가야 할지 어렵게 느껴질 때 길벗이 될 것이다. 

평생 성서를 연구하고 가르쳐온 저자는 성서를 오로지 상징과 알레고리로만 읽고 가르치는 한국 근본주의 신학과 신앙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여기서 조금만 벗어나도 ‘이단異端’으로 몰리는 상황에 대해 비판한다.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비유적인 표현일 뿐, 성서가 기록된 시대의 언어와 문학과 역사를 통해 읽어야 그 책이 전하려는 메시지의 실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신약성서에서 가장 크게 오해받고 있는 요한계시록과 종말론에 관한 진실을 언어학적이고 비평적인 해석을 통해 재조명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에 주로 드러나는 종말론은 로마의 압제 하에 있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불안과 희망을 상징적이고 비유적인 언어로 표현한 것일 뿐, 미래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요한계시록과 종말론의 유래와 특성을 상세하게 짚어준다. 그러면서 이것의 참된 의미는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고 현실에서 도피해 세상이 끝날 순간만 기다리게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상황을 통해 드러나는 변화와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에 깨어있으면서 그 변화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해석은 어렵고 무겁게 느껴지던 요한계시록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고, 사람들의 두려움을 먹이 삼아 암묵적으로 번져가는 음모론의 희생양이 되는 일을 피하게 해줄 것이다. 

 

‘오직 믿음’ 너머 참된 신앙을 향한 열망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은 기독교를 상징적으로 희화화할 때 쓰이는 문구가 되었다. 오늘날과 같은 종교다원주의 시대에는 이런 관점이 지나치게 편협하고 경직된 표현으로, 다른 종교에 대한 존중이 없는 태도라고 비난받기 쉽다. 저자는 이토록 근본주의적인 한국 교회의 태도가 성서의 역사적·문화적 맥락에 대한 몰이해와 오독의 결과로, ‘절대적 확신’이란 무지한 자의 특권이라며 일침을 놓는다. 

그러나 종교의 타락과 현실 세계에서의 무력함에 실망한 사람들의 지지를 업고 무신론 운동이 광범위하게 퍼져나가는 오늘날에도 저자는 유신론의 효용가치가 여전히 높다고 주장한다.

불교가 부처를 신격화해 예배의 대상으로만 보던 것에서부터 마음을 돌보는 테크놀로지로의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교 또한 고대 신화 속 예수를 맹신하는 데서 벗어나 그분의 사랑과 자비의 감화력을 현실에서 구현해낼 방법을 찾아가기를 권하고 있다. 저자는 인간의 이성에만 기대어 신神을 부정하는 태도에 날카로운 지적과 따끔한 충고도 서슴지 않는다. 저자는 바야흐로 종교보다는 영성의 시대가 왔다고 주장한다. 

 

철학과 예술을 도구로 삶이 풍성해지다 

1부에서는 성서와 기독교에 대하여, 2부에서는 기독교와 더불어 불교에 대하여 거론하면서 ‘신앙’이라는 것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3부는 유교를 비롯한 종교뿐만 아니라 철학과 예술로부터도 삶의 풍성함을 이끌어내는 저자의 다양한 관점이 담겨있다.

특히 저자는 추상적이고 현학적인 언어로 인해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철학이 사실은 인간답게 사는 법을 일러주고, 삶의 변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도구로 유용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음악과 영화를 비롯해 명리학에 이르기까지, 일상의 작은 소재들까지도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대하는 지혜를 길어 올리는 방편으로 삼을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대체로 편안하게 읽히지만 때로 촌철살인을 품고 있다. 1부의 성서 해석과 2부의 신앙에 관한 글들은 복잡다기한 현실에서 새로운 관점으로 종교와 신앙을 돌아보며 우리의 중심을 재확인하게 도와주고 있으며, 3부의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는 짧은 글들은 동서고금의 철학과 예술이 결국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고, 우리의 정신과 영혼의 성장에 이바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환기시켜준다. 

은퇴와 함께 ‘교단’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나온 뒤 원하는 연구와 저술을 마음껏 해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저자는 이제야 진정한 신학자로 사는 것 같다며 깊은 숨을 내쉰다. 그리고 이렇듯 진솔하고 편안하게 들려주는 성서와 종교와 철학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의 일상과 정신도 조금은 더 풍요로워지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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