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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비평_偏愛가 건강한 양육법인가
매체비평_偏愛가 건강한 양육법인가
  • 전규찬 한예종
  • 승인 2004.12.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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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라는 단어는 최근까지 일반 독자는 물론이요 학자에게도 생소한 외국어였다. 매체의 조명을 전혀 받지 못한 정체불명의 언어였다. 인터넷을 검색해도 안 나온다. 그러던 ‘뉴라이트’가 2004년 11월초 갑자기 현란한 빛의 사례를 받는다. ‘동아일보’가 “뉴라이트 신보수 역할을 기대한다”는 사설을 싣고부터였다. 거룩한 출현이었다. 한국사회를 오랫동안 주도해왔고 또 앞으로 영원토록 주도코자 하는 거대 신문사에 의해 ‘뉴라이트’ 만들기의 대 役事가 시작된 것이다. 이제 ‘뉴라이트’는 일개 신문이 제조해 낸 올해 최고의 히트상품 중 하나로서 시장에서 잘도 팔리고 있다.

사설은 “노무현 정부 출범 이래 침묵을 지켜 오던 지식인과 단체, 정재계 법조계 인사들의 움직임이 시작됐다”라는 선언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당황스러운 것은, 그 움직임이 대체 무엇인지 짐작하기 너무나 힘들다는 점이다. ‘동아일보’조차 그전에 ‘뉴라이트’에 관해서는 단 한건의 기사도 싣지 않았다. 언론학자의 상식에 비춰보자면 매우 예외적인 일이다. 사설은 사건이 발생하고 이에 관한 보도가 일정하게 있은 후 실리는 게 정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경우 신문과 방송 어디에도 ‘뉴라이트’ 관련 기사가 하나 없는 상태에서 생뚱맞게 사설이 툭 튀어나온 셈이다. 뜬금이 없다. “새로운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뉴라이트(New Right)'가 건강한 비판세력으로 자리 잡을지 주목”하겠다는 대단한 관심을 보이지만, 그 실체가 없다. 유령에게 홀린 느낌이다. 아무튼 사설은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의 시장중심주의를 내세운 ‘뉴 라이트 신 보수’의 중추적 역할을 기대한다”고 끝을 맺으며, 이를 신호로 관련 기사와 칼럼이 줄줄이 이어진다.

사태의 제대로 된 이해를 위해 우리는 오히려 역사를 거슬러 가야 한다. 사실 ‘뉴라이트’ 기획은 이전 ‘신보수’ 담론의 번역 프로젝트에 불과하다. 2003년 3월초 ‘신보수’의 문제를 최초로 집중 조명한 ‘문화일보’는 ‘뉴라이트’의 원조다. “보수층도 세대교체와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합리적 ‘신보수’를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는데 동의하면서, 신문은 ‘부상하는 진보, 반발하는 보수’라는 기획취재물을 5회에 걸쳐 싣는다. 당시까지만 해도 ‘문화일보’가 상대적으로 온건 보수적인 입장을 모색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보수의 살 길은 도덕성을 회복하고, 보수 이념에 맞는 개혁을 지지하면서 원칙을 지켜나가는” 것뿐이다. “시장경제를 위한 개혁, 기업투명성과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개혁 등에는 찬성해야 한다”는 고려대 이내영 교수의 입장을 두둔할 때 신문은 ‘수구와의 결별’을 도모하면서 스스로 ‘신보수주의’에서 ‘절망 속 희망 찾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수세력 내부의 제법 성찰적인 흐름으로 출발한 움직임은 안타깝게 별 소득 없이 끝났고, ‘문화일보’도 결국은 ‘조중동’과 같은 길을 걷게 된다.

‘신보수’의 바턴은 이후 한나라당이 이어받는다. 올해 2월 여의도연구소 주최 토론회에서 한림대 전상인 교수, 서울대 박효종 교수, 동아대 박형준 교수 등 바로 지금의 ‘뉴라이트’ 주창자들이 대거 참석해 한나라당 변신의 이야기를 내놓았다. “한나라당이 지금처럼 보수 이데올로기의 생산과 전파를 전경련이나 조·중·동 등 언론사에 맡기지 말고 직접 연구하라,” “당내 잔존하는 5공 인사, 퇴행적 기득권유지 인사, 낡은 이미지 확대재생산에 책임 있는 인사들을 배제하고 전문성과 개혁성을 가진 인물로 새로운 정책세력을 형성해야 한다”는 의미 있는 주장이 제기됐다. ‘구 보수주의를 補修해 신보수로’라는 제안,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서는 선진화의 미래 비전’이라는 지금 ‘뉴라이트’의 수사들이 이미 이 토론회에서 소개된다. 다만 일회적 행사에 그친다. 이후 당내 일부 진영이 이 ‘신보수’ 담론을 점유해 정략적으로 활용코자 기도하지만, 매체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여론을 형성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자기 갱신을 목적으로 했든 다른 이유이든, 경쟁지와 보수학자, 거대 야당이 시도했지만 모두 띄우는데 실패한 프로젝트를 ‘동아일보’는 너무나 쉽게 단숨에 성공시켜버린다. ‘뉴라이트’로 말 바꾼 이념을 현실보다 더 현실적이게 비추는 놀라운 요술쟁이의 모습이다. 비난의 칼날을 구 보수가 아닌 신자유주의 노 정권에 마구잡이 들이대고, 소위 ‘꼴통 진보’의 고해성사를 억지로 다그친 결과다. ‘뉴 라이트, 침묵에서 행동으로’라는 다섯 차례 시리즈물도 부족해 ‘뉴 라이트, 분열에서 통합으로’라는 기획물을 또다시 연재한 덕분이다. 지면을 ‘신보수’ 전문가들에게 무한대로, 독점적으로 할애하는 전술이 주효했다. 이들의 과격하고 일방적인 발언을 부추겨라. 한나라당을 유혹하고, 열우당을 압박하라. 타 신문을 선도하라. 마침내 ‘동아일보’는 한편의 신화를 완성시킨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이념 지도까지 맘대로 짜내는 욕망을 주저 없이 프로그램으로 실행한다. 고작 한달 프로젝트로 현실을 완벽히 바꾸어놓는 이념 기계의 환상적인 쇼다.

고려대 김민환 교수가 ‘중앙일보’ 시평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요즘 뉴라이트 운동에 대한 일부 언론의 편애가 눈길을 끈다. 봐주기가 정말 이례적이어서 마치 자사 사업을 홍보하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든다…운동은 맞으며 크는 것이지 은혜 입어 크는 것이 아니다.” ‘386’이나 ‘주사파’, ‘좌파’, ‘꼴통 진보’와 한참 거리 먼 이 언론학자의 보수 일간지를 통한 일리 있는 조언에 ‘뉴라이트’ 일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전규찬/한예종·문화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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