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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건축물은 상상력과 이념의 표현”
“모든 건축물은 상상력과 이념의 표현”
  • 김재호
  • 승인 2021.06.11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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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건축과의 대화』 데이비드 리틀필드, 사즈키아 루이즈 지음 | 이준석 외 2인 옮김 | 대가 | 376쪽

자아, 지위, 가치가 반영된 건축물
폐허가 지니는 매력과 울림

영국의 잉글랜드 워릭셔주에 있는 콜스힐. 이곳의 한 공방은 여느 시골집과 비슷한다. 연장들이 쌓여 있는 벽 한 가운데에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건물은 자아, 사회, 신분 등을 표현한다.” 이 책의 저자 데이비드 리틀필드는 “모든 건축물은 상상력의 산물”이라며 “모든 건축물은 우리의 자아, 사회, 지위, 유산, 가치 등의 개념을 붙잡고 있는 골격, 즉 이념의 표현”이라고 적었다. 그는 건축물을 이해하는 건 언어 습득과 비슷하다고 간주했다.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은 이 책을 추천하는 글에서 “건축물은 민주주의나 귀족정치에 대해, 소탈함이나 거만함에 대해, 환대나 적대에 대해, 그리고 미래에 대한 공감이나 과거에 대한 동경에 대해 말한다”라며 “이 책의 강점은 순전히 시각적·기술적인 것에서 벗어나 건축물이 발현하는 가치 쪽으로 논의의 초점을 바꿔준다는 것”이라고 적었다. 

이 책의 표지는 영국 요크셔 지역 리즈시에 있는 라운드 주물공장이다. 사진을 보니 벗겨진 회반죽과 비둘기 배설물에서 나는 고약한 암모니아 냄새까지 감지된다. 라운드 주물공장은 1790년대에 증기기관 제조를 위해 지어졌고, 2004년부터 4년간 재개발됐다. 이 건물은 ‘페허’처럼 보인다. 리틀필드는 “건물이 폐허가 되는 건 철학적 문제”라고 밝혔다. 폐허는 그 자체가 지니는 매력과 울림뿐 아니라 복구·수리의 분기점, 전쟁, 파국, 사회적 격변과 연결된다. 

건축물의 폐허는 철학적 문제

또한 눈에 띄는 건축물은 성 캐서린 예배당과 극빈자 숙소다. 잉글랜드 남서부지역 데본 엑스터에 자리한 이곳은 1457년 지어졌다. 하지만 1942년 독일군의 공습으로 무너졌다. 2005년 건축가와 예술가에 의해 조명과 설치 작품이 꾸며졌다. 복구 작업에 참여한 예술가 파트리시아 매키넌데이는 그 옛날 세세한 기록들과 현재 노숙자들의 삶을 비교했다. 

성 캐서린 예배당과 극빈자 숙소를 상징하는 단어는 ‘유리문’이다. 유리문이라는 상징은 방문자들이 비밀스러운 부분을 보고 있다는 인상을 갖게 한다. 유리문들은 역사적 파편을 담고 있다. 리틀필드는 “(유리문이라는) 장식장에는 부지의 역사로부터 회수된 작은 오브제들, 즉 반짝이는 천연색의 로마 시대 항아리와 중세의 질그릇, 1942년 폭격으로 주변 선술집으로 흩어져 녹은 맥주병의 유리 조각들이 포함돼 있다”라고 설명했다. 리틀필드는 “기존 문의 정확한 치수와 위치를 표시하는 유리 박스는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흔적이며 공간을 표시하는 사인”이라고 설명했다. 유리에 비친 빛은 보는 이로 하여금 과거를 회상하게 한다. 

맺음말에서 공저자인 사스키아 루이스는 자신의 집에 있는 낡은 계단을 묘사했다. 계단은 지나치는 사람들에 의해 조금씩 밑으로 처진다. 루이스는 이를 “소리 없이 진행되는 느린 형태의 조형 작업”이라고 표현했다. 

『건축과의 대화』를 읽다보니, 조세희 작가의 사진 산문집 『침묵의 뿌리』(1995)가 떠오른다. 조세희 작가가 강원도 사북 탄광 지역에 직접 들어가 찍은 1백 점의 사진은 글과 함께 시·공간과 대화하도록 한다. 이제는 폐허가 된 사북 탄광. 책의 제목은 ‘침묵의 뿌리’이지만 마치 ‘건축과의 대화’처럼 그 옛날 탄광촌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그곳에 담긴 광부들의 땀과 지난한 일상들은 현재의 우리에게 대화를 거는 듯하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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