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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 위기, 대학혁신의 기회
지방대 위기, 대학혁신의 기회
  • 정영인
  • 승인 2021.06.08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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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정영인 논설위원 / 부산대 의학과 교수·경암교육문화재단 이사

 

정영인 논설위원부산대 의학과 교수·경암교육문화재단 이사
정영인 논설위원(부산대 의학과 교수)

한국사회에서 수도(Capital City) 서울은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정치, 경제, 교육, 문화,예술 등 모든 것의 중심이다. 모든 것의 중심이다 보니 서울이 곧 중앙이자 표준이고 그 외는 변방이자 주변이다. 말도 서울말이 표준이다. 국립국어원은 표준어를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라고 규정한다. 서울 사람이 곧 중심인이고 그 외는 주변인이다. “사람은 나서 서울로 가고 말은 제주로 보낸다”는 말은 이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수도권이란 말에는 가능한 서울에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그래서 중심인이 되고 싶은 열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서울은 마치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서울로 향하는 건 올라가는 것이고, 서울을 벗어나는 건 내려가는 것이다. 서울행 열차는 상행선이고 서울발 열차는 하행선이다. 서울 소재 대학은 수도권 대학이고 변방 지역의 대학은 지방 대학이다. 한국사회에서 서울에 대립되는 지방이란 말에는 변방, 주변, 이류, 열등, 소외, 차별, 경시, 피해의식 등 다양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서울과 지방은 수직적, 위계적, 차별적 개념으로 읽힌다. 서울이든 지방이든 수평적 개념인 지역으로 부르는 것이 자치제의 진정한 의미다. 지방으로 취급받고 느끼는 열패감은 특히 대학사회에서 유난하다.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의 어느 원로 교수가 사석에서 내뱉은 말이다. “지방 대학 말만 들어도 피가 거꾸로 솟는다.” 그는 서울대를 나왔다. 그래도 서울대를 나왔으니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요즘 언론에서는 한국 교육이 직면한 최대 현안이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 위기, 특히 지방 대학의 위기라고 보도한다. 교육부 장관이 국회 공청회에서 지방 대학 위기의 대책으로 내놓은 말이 “수도권 대학의 정원 감축이 필요하다”였다. 수도권 대학의 정원 감축을 통해 지방 대학의 감축 인원을 줄여보자는 뜻이다. 진학 가능 인구가 줄어드니 등록금에 거의 의존해서 연명하던 지방 대학이 망하는 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망하는 순서도 ‘벚꽃 피는 순서대로’란다. 벚꽃은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먼저 핀다. 해서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는 건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 대학일수록 경쟁력이 없다는 뜻이다. 이 또한 서울 중심적 사고임에 틀림없다. 수도권 대학이든 지방 대학이든 망할 대학은 망해야 한다.

필자는 한국 대학의 위기를 학령인구의 감소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대학에 대한 전근대적 인식과 대학의 낙후된 후진적 운영 체계가 위기의 실체다. 대학은 최고의 고등교육기관으로 무엇보다 공공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많은 사립대학들은 설립자의 소유물로 간주 된다. 그렇다 보니 설립자의 관련 인물들이 대학 운영을 장악하고 있다. 전통적인 유럽 대학들과는 달리 사립 대학이 발달한 미국에서는 설립자의 관련 인물들이 대학 운영에 관여하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 대학에 대한 설립자의 인식과 발상 자체도 한국과는 판이하다. 대학 운영의 재원은 천문학적인 발전기금이 뒷받침한다. 시카고대학의 설립자인 미국의 대부호 록펠러가 당시 하버드대학의 엘리엇 총장에게 훌륭한 대학을 만드는 데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했을 때, 엘리엇 총장은 “시간과 돈”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설립자가 대학을 자신의 소유물로 인식하는데 누가 그런 대학에 거액의 발전기금을 기탁하겠는가. 

학생들의 등록금과 정부의 보조금에 거의 의존하는 영세한 한국 대학에서 학령인구 감소는 대학 생존에 치명적이다. 수도권 대학의 학생 감축을 통해 지방 대학의 생존을 유지하겠다는 것은 가망 없는 환자에게 의미 없는 연명 치료를 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금세기는 지식사회로 평생교육 체제를 지향한다. 대학의 공공성을 제고하는 과감한 인식 전환을 통해 국가가 직접 나서 부실 대학을 퇴출하거나 평생교육원 체제로 운영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위기를 맞은 지금이 대학 혁신과 구조 조정의 기회다. 

대학 설립자 관계인들이 뼈아프게 새겨야 할 내용이다. 미국 코넬대학의 교정에는 설립자 에즈라 코넬과 초대총장 앤드류 딕슨 화이트의 동상이 서로 마주하고 있다. 그런데 설립자 코넬은 서 있고 초대총장 화이트는 의자에 앉아 있는 형상이다. 설립자와 총장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것이 미국 대학의 모습이다.

정영인 논설위원
부산대 의학과 교수·경암교육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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