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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
  • 김재호
  • 승인 2021.05.31 15: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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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 (45인의 덕후가 바라본 일본 이야기)』 이경수, 강상규, 동아시아 사랑방 포럼 지음 | 지식의날개 | 488쪽
21세기판 조선통신사 45인의 일본 문화 이야기

조선과 일본 사이를 오가며 문화사절단 역할을 했던 조선통신사.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는 21세기판 조선통신사를 꿈꾸는 ‘동아시아 사랑방 포럼’에서 일본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한 내용을 바탕으로 펴낸 일본 문화에 대한 책이다. 일본어와 일본문학, 일본의 역사, 정치, 경제 등 다방면에서 일본을 공부하고 체험해 온 일본 덕후들이 다채로운 사진과 함께 일본 문화를 이야기한다. 특히 저자로 참여한 45인의 한국인과 일본인 포럼 회원들은 편견과 왜곡 없이 다양하고 입체적으로 일본을 볼 수 있게 독자들을 이끌어 준다. 

45인의 저자들은 각각 전문 분야는 다르지만 일본을 ‘편견 없이’ 바라보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일본 문화의 여러 단면을 하나로 모아서 보면 일본 문화의 전체적인 특성을 헤아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집단지성의 틀을 빌리고 있다. 쓰레기 섬 나오시마가 어떻게 예술의 섬으로 재탄생했는지, 왜 일본에서는 20년마다 자리를 옮겨가며 이세신궁을 새로 짓는지, 왜 일본인은 거절할 때 구체적인 사정을 말하지 않고 애매한 말투를 사용하는지, 군주를 위해 자결하는 할복이 정말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의로운 죽음이었는지 등과 같은 생생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일본인과 일본 문화가 다르게 보일 것이다. 

45인의 덕후가 말하는 생생하고 구체적인 일본 문화

언어, 정치, 역사, 정서, 건축, 비즈니스 등 다양한 분야의 덕후들이 모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일본 문화를 공부한다는 것이다. 방송대 일본학과 이경수 교수와 강상규 교수를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사랑방 포럼’의 회원들은 저마다 직업도 관심 분야도 다르지만 2017년부터 해마다 두 차례 모여 일본 문화에 대해 공부한 내용을 함께 토론한다. 편견과 왜곡 없이 일본을 다양하고 입체적으로 바라보자는 취지로 모인 회원 중 45인의 글을 주제별로 정리한 책이 바로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이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모두 저자로 참여하고 있어 일본 문화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유지한다.

편견과 왜곡 없이 다양하고 입체적으로 바라본 일본 문화

한때 미쓰비시의 산업폐기물로 버려졌던 나오시마 섬이 베네세 그룹과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만남으로 오늘날 예술의 섬이자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재탄생한 것에서 스토리텔링에 강한 일본 문화의 특성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20년마다 자리를 옮겨 새로 짓는 이세신궁, 전통축제 마쓰리, 목욕 문화 센토 등에서는 옛 문화를 지키고 발전시켜 후대에 전하는 일본 특유의 방식이 잘 드러난다. 특히 이세신궁은 옛 모습 그대로 유지하면서 후세에 건축 기술을 온전히 전수하기 위해 20년마다 새로 지어지는 ‘카피’이지만, 2,000년 전부터 존재해 온 신이 그 안에 여전히 진좌하는 ‘오리지널’로 인식하는 일본인들의 강한 믿음을 대표한다. 

일본인은 대화할 때 거절의 순간에 애매한 말투로 말을 줄이면서 미완성의 문장을 구사하는데, 여기에는 구체적인 사정을 말하지 않아도 서로 오해하지 않고 사적영역을 존중하는 일본인의 언어문화가 숨어 있다. 또 지나칠 정도로 맞장구를 자주 치는데 맞장구는 일본에서 인간관계를 크게 바꿀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하나로 중요하게 간주된다. 

근대 문학의 거장인 모리 오가이의 소설 『아베 일족』에서는 일본 봉건시대에 사무라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할복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주군의 허락 없는 할복은 비난받아 마땅한 헛된 죽음으로 매도되는 상황에서 순사를 허락받지 못한 주인공 아베 야이치에몬과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그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독자에게 짙은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한다.

그 외에도 자연 경관을 해치지 않고 최대한 활용하는 일본의 건축과 정원, 인형 병원과 인형 공양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인형 문화, 신교·기독교·불교가 함께 어우러져 공존하는 일본의 종교 등 일본 문화의 면면을 생생하게 들여다본다. 

21세기판 조선통신사가 꿈꾸는 한국과 일본의 미래 관계

『알면 다르게 보이는 일본 문화』에는 일본을 편견과 왜곡 없이 보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오늘날 한일관계는 안개 속에 싸여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이 책을 통해 일본에 관심을 갖고 일본을 더욱 객관적이고 입체적으로 인식하려는 독자들이 늘어나길 바란다. 그렇게 된다면 일본이 더 이상 ‘가깝고도 먼 나라’가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가까운 나라로 거듭날 것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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