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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합리성과 디자인: 장식미술에서 모던 디자인으로
근대적 합리성과 디자인: 장식미술에서 모던 디자인으로
  • 최범
  • 승인 2021.05.31 13: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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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하우스, 데사우, 1925년. 사진=위키피디아

“장식은 미개인이나 범죄자들이 하는 것이다.” 20세기 초 오스트리아의 건축가 아돌프 로스는 <장식과 범죄>에서 이렇게 말한다. 로스는 현대의 문명인에게 장식은 필요 없다고 주장했다. 어느 시대나 문명과 야만의 기준은 있는 법이어서 인간은 그에 따라 세상을 바라본다. 아마 전통사회에서는 아무런 장식이 없는 상태, 즉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벌거숭이를 야만으로 취급했을 것이다. 아름답고 질서정연한 장식을 하는 것이야말로 문명의 표지였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근대는 이러한 기준을 다시 뒤집는다. 서구의 모던 디자인(Modern Design)은 장식을 벗어던지면서 시작된다. 그것은 일종의 악령 추방(exorcism)이었다.

인류의 역사 거의 대부분은 차지하는 장식미술의 시대는 이렇게 하여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되었다. 물론 장식에게 모든 전근대적 비합리성의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것은 부당하다. 하지만 20세기 초의 디자인 합리주의자(모더니스트)에게 장식은 전통적인 신분의 상징이자 노동의 낭비이며 악취미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었다.

디자인의 합리성

서구 근대 사회의 기본 원리는 이성(理性)에 기반 한 합리성이다. 이러한 합리성이 디자인에 구현된 것을 모던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모던 디자인의 합리성은 생산주의와 미학과 프로그램이라는 일련의 결합체이다. 그것은 우선 생산상의 합리성을 추구했다. 기계에 의해 물건을 대량생산하는 시대에 제품에 일일이 장식을 한다는 것은 비합리적이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실제로 산업화 초기에는 기계로 생산된 제품에 후가공으로 장식을 입히는 일이 벌어졌다. 오래된 문화적 관습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이내 아무런 장식이 되지 않은 날것(?)으로서의 공산품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직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기계미학(Machine Aesthetic)이다. 처음에는 그처럼 장식이 되지 않은 건물을 벌거벗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유리 표면의 밋밋한 건물을 현대적이라고 여긴다.

이러한 모던 디자인의 생산 합리성과 기계미학은 기능주의(Functionalism)라는 프로그램으로 완성되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는 유명한 격언이 바로 이 모던 디자인의 교리이다. 전통사회에서라면 당연히 “형태는 신분을 따른다”라고 했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왕이 앉는 의자는 신하가 앉는 것과 달라야 하기 때문에. 하지만 기능주의는 신분을 알지 못하고 다만 그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기능)에만 관심이 있다.

유토피아의 꿈

모던 디자인의 합리성은 조형적 차원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된다. 그러니까 합리적인 디자인은 합리적인 환경을 만들고 합리적인 환경은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 것이라는 믿음이 사회적 유토피아로 나아가게 만든 것이다. 디자인에 의한 사회공학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런 점에서 20세기 초의 모던 디자인은 사회주의와 친화성을 가진다. 나치가 바우하우스를 그렇게 싫어한 이유도 게르만 민족의 정념의 표현인 고딕 양식이 아닌 무개성적인(?) 모던 디자인을 사회주의와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모던 디자인은 20세기 초 모더니즘 운동의 일환이기도 했다. 영국의 역사학자 페리 앤더슨은 모더니즘이 가능했던 시대적 조건으로 세 가지를 들었다. 귀족문화의 잔존, 사회혁명에의 기대, 과학기술의 발전. 모던 디자인은 이 세 가지에 모두 해당된다. 민주주의를 주장했지만 모던 디자이너들은 그 누구보다 엘리트주의자였다. 이탈리아의 미래파, 네덜란드의 데스테일, 러시아의 구성주의 등이 모던 디자인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 당대의 예술운동이었다. 하지만 모던 디자인은 1930년대 바우하우스가 폐교되고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대두되면서 전성기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후 모던 디자인은 미국을 비롯한 세계로 퍼져나갔고 자본주의 시장 논리와도 융화되어야 했다. 아무튼 모던 디자인은 유토피아 디자인 운동으로서 디자인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고 할 수 있다.
 

최 범
디자인 평론가. 디자인을 통해 사회를 읽어내는데 관심이 있으며, 특히 한국 디자인을 한국 근대의 풍경이라는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평론집 <한국 디자인 뒤집어 보기> 외 여러 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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