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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통일, 어문 규범 통일이 디딤돌이다
남북통일, 어문 규범 통일이 디딤돌이다
  • 이관규
  • 승인 2021.06.04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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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의 어문 규범 변천과 과제』 이관규 지음 | 고려대출판원 | 신국판 | 448쪽

남북한 어문 규범 통일이 어떻게 남북통일의 디딤돌이 될 수 있을까?

언어는 의사소통을 위해 약속된 도구다. 언어를 통해 우리는 서로의 뜻을 확인한다. 남북은 75년이 넘는 분단 때문에 정치, 사회, 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이질화가 심해졌지만 여전히 공통점은 남아 있다. 바로 말과 글이다. 이 책은 말과 글이 따라야 하는 규범, 즉 남북한의 맞춤법, 띄어쓰기법, 표준어와 발음법, 문장 부호법, 외래어 표기법, 로마자 표기법 등 모든 어문 규범의 역사적 변천 과정과 실제 용례들을 꼼꼼히 살피고 구체적인 과제를 제시하였다. 

남북한의 어문 규범은 조선어학회의 『한글 마춤법 통일안』(1933)에 뿌리를 두고 있다. 광복 이후 한글판 『한글 맞춤법 통일안』(1946)이 나오는데, 이것을 남북한이 함께 사용하였다. 남한에서는 최현배를 비롯하여 조선어학회 회원들이 이 통일안을 보급했으며, 북한에서는 김두봉과 이극로가 중심이 되어 이것을 보급하였다. 특히 이극로는 일제하 조선어학회 사건 때에 학회 대표를 지냈던 사람이며, 조선어학회의 정신적 지주인 주시경의 수제자였던 김두봉은 당시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으로서 북한의 최초 어문 규범인 『조선어신철자법』(1948)에 절대적 영향을 끼친 사람이다.

1945년 광복의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우리나라는 남북한 분단의 시기로 접어들었다. 남한은 자본주의 진영과, 북한은 공산주의 진영과 주로 교류하면서 서로 지향하는 방향이 달라졌다. 말과 글 문제에서도 접하는 언어들이 많이 다르다 보니 외래어 표기법 등에서 이질화의 길을 걷게 됐다. 남한은 몇 차례 변천 과정을 거쳐서 현재 「외래어 표기법」(1986)이 유지되고 있음에 비해서, 북한에서는 『조선어 외래어 표기법』(1956)이 나온 이래로 이후 『외국말적기법』(1969, 1982, 2001)이 사용되어 왔다. 북한은 외래어 표기법이 아니라 외국말 적기법이라 하여 남한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사실 국어의 하나로서 외래어는 사전에 등재되면 되는 것이고 인·지명 같은 것은 외국어로서, 결국 외국말 표기법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남한에서도 외래어 표기법이 아니라 외국말 표기법이 유용할 것이다.   

1992년, 남북한 학자들, 로마자 표기법 통일안 합의한 경험

남북한 어문 규범 논의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로마자 표기법이다. 남한은 「한글을 로오마 자로 적는법」(1948), 「한글의 로마자 표기법」(1959),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1984, 2000, 2014) 등 여러 어문 규범이 있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것은 주체적인 차원으로 규정된 로마자 표기법으로서 특수 기호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이에 비해 북한은 「로마 자모에 의한 조선어 표기에 관한 일반적 규칙」(1956), 「영어문자에 의한 조선어표기법」(1969), 「조선말라틴자적기법」(1985), 「조선어의 라틴문자표기법」(1992) 등으로 로마자 표기법이 변천해 오는데, 2012년 유엔에 제출된 북한의 로마자 표기법이 바로 1992년 것이다. 북한의 현행 로마자 표기법은 모음에서 특수 기호를 사용하고 있는데, 특히 모음 로마자 표기법은 1939년 매큔 라이샤워(MR) 표기법과 완전히 일치한다. 결국 북한은 전사법, 남한은 전자법에 기운 이질성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이 책에서는 자음은 북한 것, 모음은 남한 것을 주로 따른 통일 로마자 표기법을 제안하고 있다. 실제로 남북한은 국제표준화기구(ISO)의 요구로 학자들 차원에서 로마자 표기법 통일안을 1992년에 이미 도출한 바 있기도 하다.   

남북한 어문 규범의 핵심은 한글 맞춤법이다. 띄어쓰기법, 문장부호법도 중요한데, 『한글 마춤법 통일안』(1933)에서는 이것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남한의 『한글 맞춤법』(1988, 2017)에는 맞춤법은 물론이고 띄어쓰기가 본문에, 그리고 문장 부호가 부록으로 제시되어 있다. 한편 북한의 『조선말규범집』(1966, 1988, 2010)에는 ‘맞춤법’, ‘띄여쓰기규정’, ‘문장부호법’, ‘문화어발음법’이 그 중요도를 균등하게 지니고 들어 있다. 북한에서는 띄어쓰기와 문장 부호에 대하여 무척 중요하게 다루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남한은 “한글 맞춤법은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 함을 원칙으로 한다.”라고 하고 있음에 비해서 북한은 “조선말맞춤법은 단어에서 뜻을 가지는 매개 부분을 언제나 같게 적는 원칙을 기본으로 하면서 일부 경우 소리나는대로 적거나 관습을 따르는것을 허용한다.”라는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즉 남한은 음소주의 혹은 형태주의 둘 중 어느 것이 기본 원리인지 확답을 하지 않고 있음에 비해서 북한은 형태주의가 한글 맞춤법 기본 원리인 것을 확실하게 밝히고 있다. 북한에서는 『조선어신철자법』(1948), 『조선어철자법』(1954), 『조선말규범집』(1966, 1988, 2010)에서 일관성 있게 형태주의를 그 원리로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통일 어문 규범은 남북한의 의사소통 매개체

이 책은 남북한의 어문 규범이 어떤 변천 과정을 겪었고, 그 결과 현재 남북한 어문 규범이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지, 나아가 통일 시대를 준비하면서 어떤 방향으로 어문 규범을 합일시켜 나갈지 등을 적극적으로 모색한다. 언어가 의사소통의 수단이라고 한다면 어문 규범은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한이 상호 의사소통을 잘 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어문 규범을 이해하고, 나아가서는 통일된 어문 규범을 가질 때 통일로 가는 길은 더욱 가까워질 것이다. 이 책은 남북이 서로 더욱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작은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관규
고려대 교수·국어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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