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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명학의 창시자 왕양명, 시대의 질곡을 견디다
양명학의 창시자 왕양명, 시대의 질곡을 견디다
  • 박상수
  • 승인 2021.06.03 0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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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가 말하다_『왕양명 집안 편지』 왕양명 지음 | 박상수 옮김 | 도서출판 수류화개 | 184쪽

주자를 비판하고 마음의 이치를 강조
그의 편지로 자연인 왕양명을 만나다

명나라 철학자인 왕양명은 어머니가 그를 가졌을 때, 할머니가 오색구름을 타고 내려온 신선이 아이를 전해주는 태몽을 대신 꾸고 나서 ‘운(雲)’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러나 5살이 될 때까지 말을 하지 못하자, 가족들은 혹시나 평생을 이렇게 지내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였다. 

온 식구들이 수심이 잠겨 지내던 어느 날 그의 집으로 어떤 승려가 찾아와 이름을 묻고는, “비[雨]가 위에서 말[云]을 못하도록 가리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논어』에 나오는 “지혜가 거기에 미치더라도 인(仁)으로 그것을 지키지 못하면 비록 얻더라도 잃게 될 것이다(知及之 仁不能守之 雖得之 必失之)”는 구절에서 따와 ‘수인(守仁)’이라고 이름을 바꿀 것을 조언하였다. 그의 부모는 곧바로 승려의 말대로 개명하자 거짓말처럼 말문이 트였다는 일화가 전한다. 이러한 이야기의 진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 일반인과 다른 특별한 스토리를 부여할 만큼의 인물로 인식하고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왕양명은 주자와 쌍벽을 이룰 만큼 철학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주자와 양명은 궁극적인 이치인 ‘이(理)’를 탐구한 것에서는 동일하다. 그러나 주자는 ‘이’는 만물의 본성이 바로 이치라는 ‘성즉리(性卽理)’를 주장하였다면, 양명은 ‘이’는 내 마음이 바로 이치라는 ‘심즉리(心卽理)’를 주장한 것에서 견해를 달리하고 있다. 이같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대별되었던 것은 자신들이 살았던 서로 다른 시대적 환경과 그에 따른 삶의 양상을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철학적 사유로 구현한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삶에서 분리될 수 없는 가족들과의 연대와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일상적 언어에는 그다지 주목하지 않아, 인간 왕양명은 사라지고 철인(哲人) 왕양명만 남고 말았다. 『왕양명 집안 편지』에서는 이에 주목하여 가장 현실에 가까운 그의 속살을 들여다보았다.  

철인으로서 왕양명만 기억돼

왕양명은 평생 후사를 두지 못하다가 55세가 되어서야 측실에게서 겨우 아들을 얻게 된다. 하지만 자신은 벼슬아치로 북경에서 생활하느라 만나지 못하는 고향의 어린 아들이 눈에 밟혀 편지를 보내 “아이는 요사이 어떻게 자라고 있느냐? 언제나 강보에 싼 채로 젖을 먹여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많이 먹이거나 덥게 해서는 안 된다’”며 양육을 당부하고 있다. 한없이 자식을 아끼는 늙은 아버지의 사랑을 담뿍 담았다. 

또한 과거시험을 앞둔 자신의 첫 제자이자 매제인 서왈인에게 수험생이 갖추어야할 생활습관과 마음가짐을 일러주었다. “기필코 시험에 합격할 것이라고 기대하면 기운이 쪼그라들고 뜻이 흩어져 아무런 보탬도 되지 않는다. 시험장에 들어가기 10일 전부터 습관을 익혀야 한다. 평소에 일찍 일어나지도 않다가 갑자기 일찍 일어나게 되면 정신이 아득하여 훌륭한 글을 구상할 수가 없다. 기름진 음식을 지나치게 먹고 심한 농지거리를 즐기면 기운을 안정시킬 수 없다. 몸이 피곤하여 쉬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잠깐 누웠다가 일어나야지 잠이 들어서는 안 된다. 시험보기 이틀 전부터는 책을 보아 마음을 어지럽혀서는 안 된다.” 28살에 과거에 합격했던 자신의 시험 노하우를 고스란히 전수하고 있다. 오늘날 수능시험을 대비하는 자식들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다. 마치 수능만점자의 인터뷰를 보는 것 같다.  

그는 대부분의 편지에 가족에 대한 걱정과 염려를 전하였고, 당시 각 지방에서 일어났던 도적떼를 토벌하는 일련의 사건을 빠짐없이 일기처럼 기록하여 가족들을 안심시켰다. 이처럼 『왕양명 집안 편지』는 철저히 정제된 글쓰기와 달리 다소 느슨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낸 문장으로 구성되어, 그 역시 우리와 다름없는 감정을 가진 아들이자 아버지이자 형으로, 시대의 질곡을 고스란히 살아내었던 자연인 왕양명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박상수 
(사)전통문화연구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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