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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건네 시작하는 ‘인정’
말을 건네 시작하는 ‘인정’
  • 신희선
  • 승인 2021.06.03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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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신희선 숙명여대 교수(기초교양대학)

존재하되 인식되지 않는 ‘투명인간’, 여성노동자
인정하고 공감할 때 비로소 인식할 수 있다

 

“계단 청소를 하고 계셔서 말을 건네는 데 용기가 필요했어요.” ‘젠더로 읽는 여성’ 수업에서 한 학생이 한 말이다. 그 학생은 아파트 환경미화원 아주머니를 인터뷰했다. 인터뷰 과제는 자신의 주변에 있는 여성 노동자의 얘기를 들어보는 일이었다.

학생들은 대형마트, 백화점, 청소용역, 식당, 콜센터 등에서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 여성을 인터뷰했다. 이를 통해 코로나 시대 여성노동의 현실과 문제를 생각해 보도록 했다. 해당 분야의 직업을 갖게 된 배경과 계기, 구체적인 노동환경과 조건을 여쭙고 노동현장에서 그들이 겪었던 애환과 보람을 들으며 느끼고 배우라고 마련한 숙제였다.

잘 나가는 엘리트 여성에 주목하는 게 아니라 ‘아주머니’로 불리는 여성 노동자의 삶을 살펴보도록 했다. 학생들이 자신의 경험 바깥 세상에 관심을 갖고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분들과 얘기 나누며 젠더와 노동의 문제를 생각해 보길 기대했다. 

학생들이 인터뷰한 여성 노동자들의 사례는 그 자체가 텍스트였다. 학생들이 들려주는 생생한 경험과 뾰족한 문제의식은 내게도 큰 공부였다. 아파트 계단을 쓸고 건물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여성 환경미화원분들 덕분에 우리의 공간이 쾌적하게 유지되어 왔음을 새삼 인식하는 시간이었다.

또 정작 그들에게는 고된 노동을 잠시 내려놓을 휴식 공간조차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는 사실과, 불안정한 고용으로 언제 해고당할지 모르는 게 실은 더 힘들다는 점, 반찬값을 벌러 나온 게 아니라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는 것과, 불편함을 말하는 게 눈치 보이고 두렵다는 목소리도 함께 듣게 됐다.

학생들은 거의 보도되지 않는 LG 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겠다고 했다. 낮은 소득, 저학력, 하위 계층에 속한 여성 노동의 현주소를 발견하며, 여성 노동자가 '기계'나 '투명인간‘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로 시작된 노회찬의 연설은 지금도 진한 울림을 준다. 사람들이 출근하기 전, 이른 새벽부터 나와 강남의 빌딩을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은 투명인간이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을 위해 우리 사회는 그동안 무엇을 해왔나 수업을 통해 돌아보게 됐다.

삶의 영역 대부분이 물화(物化)되고 있다. 루카치는 “물화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물건 같은 성격을 띠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을 도구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자동기계 혹은 물건처럼 취급하게 됨을 뜻한다.

경제적 가치로 모든 게 환원되는 사회에선 타자만이 아니라 자신조차 물화되고 이것은 점점 더 심해진다. 결국 물화된 사고습관과 행동방식은 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인정하는 것을 망각하게 하고 서로에 대한 관심과 공감의 정서를 잃게 만든다.

“사회적 상호작용이라는 직물은 인지적 행위라는 재료가 아니라 인정하는 자세라는 재료로 짜여 있다”라고 했던가. 여성 노동자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학생들은 그동안 우리 주변에서 보이지 않는 수고를 했던 노동자들에 무관심했고 부주의했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또한 열악한 노동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염려스러웠고 마음이 계속 쓰였다고 전했다.

학생들은 인터뷰를 하며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못한, 앞으로도 경험할 일이 거의 없을 수 있는 여성 노동자들의 고단한 현실에 눈을 뜨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이러한 ‘마음 씀’은 이제 방관자나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참여자 관점으로 그들이 이동하게 됐음을 의미한다.

악셀 호네트가 인식보다 우선된다고 강조한 ‘인정’이 중요하다. 인정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상호작용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스무 살 청춘들이 50~60대 여성 노동자들에게 직접 말을 건네는 인정이 그들의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함께 인식하게 만든 것이다.

“인식의 정확도는 우리가 얼마나 많이 다른 관점들을 정서적으로 인정하고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비례한다”라고 했다. 더 이상 노동자들이 자신이 일했던 건물 앞에서 인정투쟁을 하지 않도록 마음의 귀를 기울이는 것은 타자에 대한 공감이자 인식의 시작이다. 노동하는 사람들이 귀하게 여겨지는 세상을 말하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공감적 실천’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는 목요일 오후 수업이다.

신희선(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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