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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프트' 없는 '라이트'는 공허하다
'레프트' 없는 '라이트'는 공허하다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4.11.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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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쟁점: '뉴 라이트'를 어떻게 볼 것인가

‘뉴 라이트’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새로운 보수를 내세운 지식인 집단인 ‘자유주의연대’, 실용주의적, 현실적 외교정책의 브레인을 표방하는 ‘21세기 지구넷’, 수도이전 위헌판결을 이끌어낸 이석연 변호사를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헌법질서를 수호하겠다고 나선 변호사들의 ‘헌법포럼’, 그리고 종교단체까지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이들은 대체로 정치적 자유주의, 경제적 시장주의, 외교적 국제주의를 내세운다. 국내에서 보수의 뉘앙스를 띠고 이렇게 많은 집단들이 연달아 생겨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현 정부에 대한 파상공세, 정치색 짙어

현재 이들의 정체성을 둘러싼 이념논쟁이 온-오프라인간 한창이다. 우선 표면으로 드러난 슬로건을 보자. 움직임의 핵심인‘자유주의연대’는 신지호 서강대 겸임교수(정치학)를 대표로 지식인 60여명이 뭉쳤다. 이들은 “수구우파와 수구좌파가 주도하는 정치는 종말을 고해야 한다”라며 ‘수구좌파’는 운동권 386세대가 주축이 된 노무현정권, ‘수구우파’는 기득권유지에 전전하는 한나라당이라고 지목했다. 이들의 ‘보수혁명’의 내용은 △시장주도형 경제 △자유무역협정의 능동적 추진 △빈부격차가 아닌 빈곤의 해소 추구 △북한인권개선 및 민주화추구 등이다.

‘21세기 지구넷’은 하영선 서울대 교수(외교학)를 비롯해 김태현 중앙대 교수, 현인택 고려대 교수,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 이정훈 연세대 교수, 전재성 서울대 교수, 한용섭 국방대 교수 등 대학교수 82명의 결성체다. 이들은 “한국의 외교안보가 진보와 보수라는 냉전시대 담론으로 양극화되는 것을 우려”하며, 정파와 이념을 초월한 외교안보정책을 꾸려야 한다고 말한다.

21세기 국제질서를 그물망으로 비유하는 이들은, 북한 핵문제, 주한미군 조정문제, 이라크파병 등 중요 이슈에 대해 ‘우리 눈’과 ‘세계적 수준’이라는 두 관점에서 풀어나갈 것이라 밝히고 있다.

하지만 ‘21세기 지구넷’의 실용주의 노선은 그렇다 치더라도, ‘자유주의 연대’가 내건 ‘수구우파와 좌파’, 시장주도형 경제, 빈곤해소 등의 주장에 대해서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다”는 견해가 대다수다. 김진방 인하대 교수(경제학)는 “노 정권이 철저한 시장주의자인데, 또 무슨 시장주의냐”라고 반박한다. 현 정권의 법률제정과 정책, 자본과 금융시장개방, 기업정책은 모두 철저히 시장 우위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사회보장제도가 빈약한 상태에서 정부의 재정축소는 맞지 않고, 세금을 인하할 거라면 어떤 부분에서 그럴 것인지 정확히 하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조선, 동아 등 주류 신문들은 자유주의 연대를 피라미드의 꼭대기로 삼고 그 아래로 이런 저런 벽돌쌓기를 하느라고 분주하다. 이들 언론의 ‘라이트’ 띄우기의 배경에 대해서는 부시의 재선성공에 탄력받아 야당의 재집권을 위한 언론-정치권의 발전기가 가동되면서 보수적 시민사회가 그 빈자리를 찾아들어왔다는 의견부터, 구조조정 발표가 연이어지는 등 신문시장의 어려움으로 인해 심층보도로 인한 정보경쟁보다는 자극적 이슈의 끊임없는 생산으로 독자를 붙들고자 하는 언론의 네거티브적 활로모색이라는 해석까지 분분하다. 하지만 구체적인 활동이 시작되기 전까지 이들 모임과 정치권, 언론의 관계에 대해서 지나치게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다고 지적하는 학자들도 많다.

다만 현 단계에서나마 보수연합 담론의 창출을 통해 노리는 정치적 효과에 엄밀한 검토는 필요하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매우 부정적인 입장인데 “박정희 정권의 국가주의 정책을 부정하면서도 노무현  정부의 시장주의 정책까지 비판하는 건 결국 노 정부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비춰질 수 있다”라고 지적한다. 과연 이들이 구보수와 차별성을 지닐 수 있을까라는 우려와 함께 말이다.

시민사회 이념 스펙트럼의 다양화로 나아가야

미국학 전공자들은 뉴라이트가 미국의 신보수주의와 동일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안병진 창원대 교수(정치학)는 “이들은 ‘중도’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라는 강한 비판과 함께 “미국의 신보수주의는 외교에선 강경이었지만, 국내정치에선 상당히 개혁적이었다”라고 강조한다 그는 “비교정치학적 시야”를 주문한다. 권용립 경성대 교수(정치학)는 “아직 실체도 밝혀지지 않았는데 외부에서조차 그런 정치적 규정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나”라는 입장이다. 이들이 과연 ‘보수적인 가치’를 제대로 추구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 속에서 나온 지적이다.

다만 사회가 다원화되면서 계급적, 계층적 이익에 기반한 단체의 출현이, 그것이 보혁구도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앞으로 계속 생겨날 것이라는 장기적 관측이 제기되기도 한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정치적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뤄진 지금 이 시점이야 말로, 시민사회에서 민주주의의 성숙화가 이뤄져야 할 단계”라고 강조하는데, 이 말은 앞으로 언론, 학계, 시민단체 등이 보혁 갈등 구도로 대립하기보다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대화하는 커뮤니케이션 문화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말로 들린다.

권혁범 대전대 교수(정치학)는 “당장이야 어떤 판단이 어렵겠지만, 언론에 의한 보혁 구분짓기의 문제로만 관찰하는 시각도 문제가 있다”라며 “한국에 진정 필요한 자유주의 추구 움직임이 이런 움직임들 속에서 자라나길 기대해본다”라고 밝혔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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