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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 아닌 학교 '자율' 중요 … 이사회 폐쇄성 극복해야
법인 아닌 학교 '자율' 중요 … 이사회 폐쇄성 극복해야
  • 허영수 기자
  • 승인 2004.11.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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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기획] 사립학교법 개정 논란, 무엇이 쟁점인가

 

개방형 이사제 도입, 대학평의원회의 심의기구화 등을 담은 열린우리당의 개정안에 한국사학법인연합회의 반발이 드세다. 대부분의 학교법인들은 개정안이 통과되면, 법률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하고, 헌법재판소에 위헌심사를 청구하고, 합헌 결정이 날 경우에는 정부에 대한 보상요구와 함께 학교를 폐쇄할 것이라고 밝힌 상태다. 학교 폐쇄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집단 위헌소송 등 법률적 공방이 이어질 것은 정해진 수순처럼 보인다. '사학법인의 기본권 침해'로 요약될 수 있는 이들 한국사학법인연합회의 주장들과 '학내 구성원의 참여를 통한 학교의 자치'를 강조하는 주장들에 대해 전문가들의 견해를 살펴보았다. <편집자주>

사립학교법 개정 논란은 표면적으로 한국사학법인연합회와 정부여당,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교육시민단체들간의 힘 대결로 치닫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면에는 현재 첨예한 법논리 싸움이 진행되고 있다. 힘의 논리로 풀 수 없는, 간단치 않은 문제들이 놓여 있는 것이 사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교육의 자주성과 대학의 자율성에 대한 해석 논쟁이 재연되고 있다.

여야 사립학교법 개정안 현황 : 열린우리당이 개방형 이사제 도입, 대학평의원회의 심의기구화를 강조했다면, 한나라당은 대부분의 조항을 현행대로 유지하면서 비리임원 복귀 제한을 강화하고 친족 이사수를 줄이는 데에 머물렀다. 반면 민주노동당은 개방형 이사제 도입과 함께 교원임면권을 학교장에 부여하고, 비리 임원의 복귀 기간을 10년 이상으로 늘린 것이 특징이다.

□ 법인의 자율성인가 학교의 자율성인가= 한국사학법인연합회의 주장은 일관된다. 사립학교 법인은 사법상의 재단법인이며, 학교의 모든 재산은 법인이 소유하게 돼 있으므로 학교재산은 학교법인의 사적 소유재산이라는 주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는 헌법 제23조의 따라 소유권을 보장받는다는 것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사립학교가 사회에 환원된 공적 재산이라는 주장은 私人인 법인의 재산을 사회화"하려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한국사학법인연합회의 주장은 일관된다. 사립학교 법인은 사법상의 재단법인이며, 학교의 모든 재산은 법인이 소유하게 돼 있으므로 학교재산은 학교법인의 사적 소유재산이라는 주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된다"는 헌법 제23조의 따라 소유권을 보장받는다는 것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사립학교가 사회에 환원된 공적 재산이라는 주장은 私人인 법인의 재산을 사회화"하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제철웅 한양대 교수(법학)는 "학교법인이 일단 설립되면 독립된 법인격으로 인정되고, 설립자의 설립정신을 담지한 학교법인은 자연인과 마찬가지로 재산권 등 기본권을 가지기 때문에 학교법인을 국유화하거나 그 경영을 사회화하는 것은 모두 학교법인의 기본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립학교 운영의 주체로 학교법인만을 상정하는 이같은 주장에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다. 임재홍 영남대 교수(법학)은 "헌법이나 교육기본법은 사학법인이 아니라 사립학교가 교육의 담당자이며, 공교육주체임을 상정하고 있다"라면서 "헌법이 보장하는 '교육의 자주성'은 사립학교가 국가나 사립학교법인 혹은 설립자로부터 독립돼야 하며 부당한 지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가능하며, 이를 위해선 교육의 자치 및 학교의 자치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라고 말했다. 사립학교는 국·공립학교와 설립주체만 다를 뿐 공교육을 수행하는 곳이기 때문에, 학교 구성원들의 다원적 참여와 민주주의가 실현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설립자의 건학이념과 학풍과 관련, 임 교수는 "건학정신은 설립자의 개인적 사상인 경우에도 창의적 인재 양성 등 추상적 이념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학풍이라는 것도 오랜 전통 속에 국·사립을 불문하고 생기는 것으로, 사학의 특수성은 설립자의 자의적 판단이 아니라 학교 구성원에 의한 자주적 자치에 획득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개방형 이사제 도입되면 학교가 정치판 된다? = '개방형 이사제 도입' 논란은 학내 구성원들의 정치세력화를 부추긴다는 주장과 맞물려 전개되고 있다.

한국사학연합회는 "옥상옥격으로 대학평의원회, 학교운영위원회를 심의기구로 둔다면 불필요한 갈등과 마찰이 생기게 된다"라면서 "교원이 학생 지도 교육을 소홀히 하고, 학교 운영에 지나치게 관심을 갖거나 학부모가 학교운영에 직접 간섭하는 일에 전념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개방형 이사제 도입이 법인의 기본권을 제한할 뿐 아니라, 교사회·교수회, 직원회, 학생회가 주도권을 다퉈 학교 현장이 정치판이 되고, 파당을 짓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내 구성원들의 심의가 운영권 침해인지의 여부는 재고의 여지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 박병섭 상지대 교수(법학)는 "오히려 폐쇄적인 이사회 구성이 갈등을 키워왔다"라며 "구성원이 추천한 인사가 이사가 되면 정보가 공개돼 오히려 불신에 따른 불필요한 분쟁이 없어지고, 사학 비리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으며, 학내 구성원 모두가 책임의식을 갖고 참여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학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적 훈련과정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덧붙여 박 교수는 "독일 등 외국의 대부분의 사립대들이 교수평의회를 통해 심의를 넘어 최고의사결정을 하고 있는데, 문제가 됐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라고 지적했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법학)는 "건학이념이 정관에 명시돼 있다고 할 때, 정관 개정권을 누가 가지느냐가 문제가 될 텐데, 이사 1/3로는 정관 개정의 배타적 권한이 없는 등 정관과 건학이념이 침해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 감사만 강화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 이사회를 개방하거나 학교 운영의 중요 사안에 대해 대학평의원회가 심의하는 등 사학운영 구조나 의사결정구조를 바꿀 것이 아니라, 사학 비리 없도록 감사를 강화하자는 의견도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일부 비리사학의 부정비리를 없애기 위해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는 사학법인의 구조까지 뜯어고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군현 한나라당 의원은 "회계의 관리감독을 강화함으로써 회계의 투명성을 높이고, 비리를 저지른 사학의 이사장·이사의 복귀 시한을 늘리는 등의 방안을 통해 회계 부정을 막으면 된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마찬가지로 강경근 숭실대 교수(법학)은 "학교운영의 자율성을 먼저 존중해야지, 비리를 없애기 위해 법을 고치는 등 네거티브하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반면, 열린우리당측은 관할당국의 감사기능을 강화만으로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열린우리당은 지난 18일 "수만명의 학생, 학부모와 교수들이 사학 설립자와 이사장들의 사욕과 비리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라면서 "사학의 부정과 비리를 일소하고 건전한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사립학교법을 개정해야 한다"라고 공식 입장을 발표한 상태다.

실제로 그간 교육인적자원부(이하 교육부)는 예·결산 공개, 감사참관인제 도입, 회의록 자필서명제 도입 등 감사 기능을 강화해왔지만 사학비리는 계속 불거졌다. 지난 5년동안 2천17억원의 법인 재산이 횡령되고, 그로 인해 학습권을 침해당한 학생은 무려 16만7천여명에 달했다. 또 지난 26년간 종합감사를 받지 않은 사립대는 경희대, 고려대, 서강대, 연세대, 홍익대 등 94곳을 넘고 있다.

사학법인의 권한만을 강조할 경우, 대학 자치와 학교의 자율성은 도외시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법인경영과 학사운영의 분리를 어떻게 이룰 것인지에 대한 정도와 방법, 심지어 필요성에서조차 이해관계자들간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 교육의 자주성, 공공성, 대학의 자율성에 대한 법적 논쟁은 더욱더 본격화될 전망이다.
허영수 기자 ysheo@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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