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09:30 (금)
동물의 정치적 권리 선언
동물의 정치적 권리 선언
  • 김재호
  • 승인 2021.05.28 10: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앨러스데어 코크런 지음 | 박진영, 오창룡 옮김 | 창비 | 164쪽

동물권 논의는 가까운 미래에 닥칠 사회의제

동물을 대하는 사회적 태도를 보면 그 사회의 성숙도를 판가름해볼 수 있다고 한다. 한국인 네명 중 한명이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고, 국내 반려동물 양육 가구 수는 계속해서 늘어나는 추세인데, 동물을 보호하는 사회적 시스템은 이에 부응하지 못하고 여전히 미진한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우리나라 동물보호법은 아직까지 대중적인 공감대 위에 자리잡지 못하고 있으며, 여전히 선진국 법제에 따라 구색을 맞춘 듯한 인상을 준다. 반면 일부 해외국가에서는 동물권 운동이 활발한데, 네덜란드·호주·스페인 등 19개 나라에 동물당이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동물당(PVDD)이 2017년 총선에서 하원 150석 중 다섯개의 의석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고, 한국에서도 동물당 창당을 위한 움직임이 2020년부터 본격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물권 논의는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될 사회의제임이 분명하다.
동물을 보호하고 그들의 고통을 줄여줘야 한다는 것에 어느정도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 할지라도 동물에게 정치적 권리를 주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의구심과 반발심을 표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현실이다. 동물에게도 인간과 동등하게 대우받을 권리가 있는가? 현실정치가 동물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만큼 동물의 기본권이 중요한 문제인가? 동물은 우리 정치 공동체의 구성원이 될 자격이 있는가? 더 나아가 동물이 민주적 대표성을 띨 수 있는가? 대단히 논쟁적이고, 윤리적?정치적으로 민감한 이 질문들에 대해 저자 앨러스데어 코크런(Alasdair Cochrane)은 구체적 사례와 단계적인 논증을 통해 독자들을 설득한다.

동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담론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동물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존중받아야 하는 주체

코크런은 1장 「서론」을 통해 동물의 권리가 그동안 정치에서 소외되어왔던 이유를 역사적 맥락에서 짚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정치적 동물’로 정의한 이래로 정치는 인간의 본질이자 목적이며, 다른 생명체와 공유할 수 없는 특성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았다. 즉 정치는 철저히 인간 중심의 학문과 실천에 기반해왔기 때문에 ‘동물과 정치의 분리’가 이루어졌다는 분석이다.
2장 「동물복지법」에서는 정치 공동체가 동물복지법 제정을 통해 동물과의 관계를 규정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동물이 인간의 이익에 부합할 경우에만 보호를 받는 현실을 짚어본다. 저자는 동물에게 ‘내재적 가치’가 있다고 설명하는데, 이때 ‘내재적 가치’란 동물의 이익이 단지 인간에게 이익이 될 경우만이 아니라 동물의 존재 자체만으로 성립되는 가치를 의미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동물복지법만으로는 동물의 내재적 가치를 존중하기 어렵다. 매우 강력한 동물복지법이 시행되더라도 동물을 위한 보호 조치가 인간의 프라이버시권,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과 같은 헌법에 규정된 권리와 충돌할 경우 쉽게 무시되는 경우가 다반사임을 코크런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실증해 보인다.
3장 「헌법 조항」에서는 헌법을 통해 동물복지법을 강화할 수단을 분석한다. 헌법이 동물복지법 등의 일반 법률보다 더 강한 효력을 지니는 것은 사실이지만, 독일 등 헌법에서 동물보호를 공동체의 의무로 규정한 나라조차도 동물의 핵심 이익은 여전히 일상적으로 침해받고, 종종 인간의 이익 때문에 뒷전으로 밀린다. 독일의 헌법 및 동물보호법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동물에게 고통 및 죽음을 야기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많은 수평아리들이 순전히 경제적 편의에 의해 분쇄되어 죽어가는 현실을 막지 못했다. 코크런은 헌법에서 동물에 대한 존중을 규정하고 있는 어떤 국가도 산업화된 축산업이 수반하는 잔혹한 행위에 마침표를 찍지 못했음을 냉정히 고찰하면서 헌법 조항의 한계를 직시한다. 그렇다면 해법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동물도 우리 정치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어야 한다
동물의 민주적 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인 해법

4장 「법적 인격성」에서는 동물의 인격성을 인정함으로써 동물에게 인간과 동등한 법적 지위를 부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논의한다. 동물이 ‘법적 인격’임을 수용하는 것은 동물의 기본권을 부여하는 길을 열어준다. 인간의 최소 이익을 위해 동물이 희생되지 않을 권리를 주는 것이다. 따라서 인격성 개념은 매우 유의미하며 동물이 겪는 엄청난 고통과 도축을 중단시키는 시발점이 되겠지만, 코크런은 동물의 이익 그 자체를 존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의견을 밝힌다. 인격성 개념, 동물복지법, 그리고 헌법 조항으로 충분하지 않은 이유는 이러한 조치들이 동물을 보호하는 데서 그치기 때문이다. ‘지각 있는’ 동물은 단지 상해를 입지 않고 사는 것뿐만 아니라 잘 살아가는 것에도 관심이 있다. 동물이 잘 살기 위해서는 공동의 재화와 서비스 혜택을 향유할 수 있어야 하며, 이는 곧 동물의 이익이 사회의 공공선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이유로 5장 「성원권」에서는 인간 정치 공동체 내에서 동물에게 성원권을 주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논의한다.
6장 「민주적 대표성」에서는 동물이 성원권을 획득하고 민주적 대표성이라는 권리를 누리게 될 때 비로소 동물의 이익이 공공선에 포함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동물은 스스로에게 투표할 수도, 동물을 대리할 입법자에게 직접 투표할 수도 없기 때문에 코크런은 동물이 민주적 대표성을 가질 수 있는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한다. 동물권에 공감하는 정책 입안자에게 투표하기, 동물의 이익에 중점을 둔 위원회 등의 기관 만들기, 동물의 이익을 대변하는 동물 전담 의원 배정하기 등 현재의 정치 시스템을 변화시킬 방법을 다양하게 제안하며, 이 모든 것이 단지 선호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의 의무임을 역설한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