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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못 느끼는 우리는 바이러스와 닮았다
고통을 못 느끼는 우리는 바이러스와 닮았다
  • 정민기
  • 승인 2021.05.20 14: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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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고통 없는 사회 | 한병철 지음 | 이재영 옮김 | 김영사 | 112쪽

재독 철학자 한병철이 내놓은 신작
고통을 탈정치화하는 현대 사회를 비판하다

2017년 미국 국립보건원은 충격적인 통계 자료를 발표했다. 2017년 한 해 동안 4만7천여 명의 미국인이 오피오이드 오남용으로 사망했다는 자료였다. 이는 1999년보다 5배나 높은 수치였다. 게다가 사망자의 약 35.8%가 담당 의사에게 통증 관리를 목적으로 처방전을 받아 약을 구입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미국 사회는 오피오이드로 큰 논란을 빚었다. 

오피오이드는 양귀비에서 추출한 물질로 만든 마약성 진통제를 총칭하는데, 중독성이 강하다는 이유로 말기 암 환자와 같이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처방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데 90년대 후반 미국 식품의약국에서 진통제 처방 규정을 대폭 완화하면서 미국에서는 오피오이드 진통제가 무분별하게 남용됐다. 제약회사는 완화된 규제를 상업적으로 이용해 오피오이드계 진통제가 기존약보다 의존증 위험이 적다는 허위 광고를 내보내고 의사들을 안심시켰다. 

이 사태를 두고 미국 사회 내에서는 제약회사의 비윤리적인 탐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트럼프 정부는 오피오이드 위기대책위원회를 설립했다. 피해자를 대신해 제약사를 상대로 2천5백여 건의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 책의 저자 한병철은 미국 오피오이드 사태를 일으킨 원인이 비단 제약회사의 비윤리적 욕심 때문만이 아니라고 분석한다. 한병철에 따르면 현대 사회는 고통이 담고 있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묵인하고 이를 의학의 영역으로 대체한다. 즉, 사회가 책임을 지고 개선해야 할 고통은 사적인 문제로 간주된다. 고통은 성과를 저하시키는 방해 요인일 뿐이다. 따라서 고통은 약이나 컴퓨터 게임, 음악, 영화와 같은 매체로 진통된다. 

한병철은 진통에 익숙해진 사회는 날카로운 개혁을 추구할 능력이 없다고 비판한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나 기능장애는 그저 은폐될 뿐이다. 고통이 언어가 되고 더 나아가 비판이 되는 것을 막는다. 그래서 고통 없는 사회에는 혁명 대신 우울이 있다. 탈정치화된 고통은 개인의 문제로 인식되고 개인들은 고통의 책임이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고통의 사회적 차원이 억압되고 은폐되어 우울증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고통이 무감해진 사회는 좋은 삶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린다. 건강은 그 자체가 목적으로 떠받들어진다. 건강하게 살면서 고차원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건강 그 자체만을 쫓는다.

코로나19로 이러한 고통 없는 사회의 경각심을 극도로 예민해졌다. 한병철은 코로나19가 건강만을 성찰 없이 떠받드는 현실의 민낯을 드러냈다고 분석한다. 종교 행사가 취소되는 등 기본권이 심각하게 침해당했지만 이에 불만을 품는 사람은 소수다. 대부분 사람은 오히려 자발적으로 격리 공간 안에 들어간다. 홈오피스는 건강 이데올로기와 자기 착취의 역설적인 자유가 만든 강제노동수용소와 유사하다.

고통은 멀리하고 편안하고 만족적인 것만 쫓는 사회에서 예술도 본래의 기능을 잃었다. 예술은 관객을 낯설게 하고 당황하게 하면서 고통을 주면서 관객이 완전한 타자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고통 없는 사회에서 예술가들은 그저 만족을 주는 사람이 됐다.

한병철은 고통을 병적으로 거부하는 현대 사회를 다음과 같이 바이러스에 비유한다.

“좀비의 사회다. 우리는 죽기에는 너무 살아 있고, 살기에는 너무 죽어 있다. 오로지 생존만을 염려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살지도 않으면서 증식하는, 다시 말해 생존하는, 덜 죽은 존재인 바이러스와 닮았다."

정민기 기자 bonsens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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