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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들, 스승의 날 앞두고 “차별 없는 대학을 소망한다”
강사들, 스승의 날 앞두고 “차별 없는 대학을 소망한다”
  • 김봉억
  • 승인 2021.05.13 0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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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비정규교수노조, 12일 교육부 앞에서 '강사 고용 보장' 성명 발표
지난 5월 12일, 한국비정규교수노조는 세종시 교육부 앞에서 '강사 고용 확대'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한국비정규교수노조는 5월 3일부터 교육부 앞에서 천막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사진=한국비정규교수노조

“대학에는 스승이 될 수 없는 자들이 있다. 스승 노릇을 하더라도 스승이 아닌 자들이 있다. 강사라는 직급으로 불리는 자들이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위원장 박중렬)이 12일, 세종시 교육부 앞에서 ‘강사 고용 보장, 처우 개선 예산 확대’를 촉구했다.  

이들은 “지난 2019년부터 강사법이 시행되고 있으나 4주분의 방학 중 임금과 5시간 이상 강의하는 강사에게만 퇴직금을 지급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처우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사립대 강사는 이마저도 내년부터 삭감될 위기에 처해 있다”라고 말했다. 

비정규교수노조는 교육부는 사립대 강사 처우개선 예산을 확대하고, 대학 강사의 방학 중 임금을 전면 확대하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모든 대학 강사에게 퇴직금을 지급하고, 교육연구비 지급, 직장건강보험 적용을 요구했다. 대학기구 참정권과 함께 총장선출권 보장도 요구했다. 

비정규교수노조는 ‘고등교육교부금법’ 제정을 촉구하며 “교육부는 대학에 제대로 돈을 주고 관리 감독을 제대로 하라”고 밝혔다. 이들은 “교육부는 전임교원 최대강의시수제를 도입하라”며 “60명 이상의 대규모 강좌를 폐지하고 소형 강좌로 재편해 교육의 질을 회복하라”고 했다.

비정규교수노조는 “우리는 지금, 차별받는 강사의 자리에서 차별 없는 대학을 소망하며 이 자리에 서 있다”며 “우리의 요구 사항은 그저 처우개선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교육의 문제이고, 학문의 문제이고 인간 존엄성의 문제이다. 대학 강사는 자기 학문 분야의 연구자, 학자가 되고자 하는 자들이다. 그들이 자신의 학문 분야에서 학자가 될 수 있도록 하라. 대학은 이들이 연구와 교육을 할 수 있게 하라. 그것이 대학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비정규교수노조는 지난 5월 3일부터 교육부 앞에서 무기한 천막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아래는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성명서 전문이다.

대학 강사의 고용을 보장하라 

대학에는 스승이 될 수 없는 자들이 있다. 스승 노릇을 하더라도 스승이 아닌 자들이 있다. 스승으로서의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스승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스승이 될 수 없다. 강사라는 직급으로 불리는 자들이다. 그들은 왜 스승이 될 수 없는가? 대학은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그들에게 스승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하면서도 제자를 둘 수 없게 만들었다. 대학의 강사들은 학생들을 교육·지도하지만 학생들을 제자로 삼지 못한다. 학생들은 강사에게 가르침을 받지만 강사를 스승으로 삼지 못한다.

  대학 교수는 연구하고 교육하는 자이다. 대학 교수의 교육은 제자를 양성하는 것이다. 대학 교수는 자기 혼자 연구하고 그 연구를 끝내는 사람이 아니다. 후대의 연구자를 육성하여 그 학문의 대를 잇게 하는 것이 교수가 해야 할 교육이다. 그 교수의 대를 이은 제자들이 강사가 되었다. 그리고 강사는 더이상 교수가 될 수 없다. 제자가 사라졌다. 학문의 맥이 단절되었다. 대학에서 언어분석철학 강사 한 명을 몰아내는 것은 대를 이어온 학문을 없애는 것이다. 강사가 대학에서 사라지는 것은 그 강사 개인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학문의 미래가 사라지는 문제이다.

  매 학기 대학가는 수강신청 대란을 겪는다. 듣고 싶은 강의를 신청하기 위해 클릭 전투를 치른다. 그 전투가 끝나면 강좌를 사고파는 암시장이 열린다. 그런데 그 치열한 전투의 끝에 얻은 강의는 그들에게 ‘핵노잼’이다. 대학 강의실은 70년대의 콩나물 교실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학생은 익명의 군중에 불과하다. 강좌 수는 축소되었고 대형강좌는 늘어났다. 대학의 강의는 졸업장을 취득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에서 대학 교수들의 목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한국 사회에 대해 말하지 않으며, 한국 사회는 그들에게 말을 청하지 않는다. 교수들은 직장인으로 전락하였으며, 학생들은 외부 강연을 찾아다닐지언정 교수님의 가르침을 기대하지 않는다. 우리가 알던 대학교수는 우리의 사회 현실에 대해 우리 앞에서 말하던 사람이었다. 우리가 아는 대학 교수는 사라졌다. 교수들은 사회뿐 아니라 자신의 직장인 대학의 문제에 대해서도 입을 열지 않는다. 수업시수와 연구편수를 채우는 데 급급할 뿐이다.

  사실은 더 나빠졌다. 지난 2019년 강사 공채에서 교수들은 강사 해고의 주축이었다. 강사에게 총장선거권을 부여하는 데 반대했던 것도 다름 아닌 교수들이었다. 그들은 차별의 수혜자에 그친 것이 아니라 차별의 가해자가 되었다. 그들에게 차별받는 강사는 다름 아닌 그들의 제자이기도 하고 동료이기도 하다. 대학 내의 차별은 심각하지만 교수들은 자신들이 가해자라는 의식조차 없다. 교수들은 기득권자가 되었다. 아니다. 나쁜 기득권자가 되었다.

  강사법이 시행됨으로써 대학에 새로운 교원이 등장하였지만 대학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강좌 수를 줄이고, 전임교원 시수를 확대하고, 겸·초빙을 확대하고, 마침내는 강사를 대량으로 해고함으로써 교육과 학문의 기반을 붕괴시키는 방식으로 대응하였다.

  대학은 이 모든 일이 돈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제 그들은 기승전교부금법을 앵무새처럼 되뇌고 있다. 대학을 시장으로 만든 자들이 정부에 돈을 달라고 손을 벌리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는 이미 오래 전에 예고되었지만 그들은 먹고 튈 준비만 하고 있었다. 고등교육교부금으로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전임 비서실장에게 500만 원짜리 황금 열쇠를 하나만 선물하는 것이 안타깝던가? 퇴직하거나 보직 임기를 마친 교직원들에게 순금 15돈을 지급하는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던가? 교내 연구비 법인카드로 유흥업소에서 결제하기에는 7천만원이 모자라던가? 교비로 음반과 운동화를 사는 것으로는 만족이 되지 않던가?

  대학은 늘 고등교육 재정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시민들은 대학 재정을 늘리는 데 반감이 심하다. 아이들의 교육에 써야 할 돈으로 원장의 명품 핸드백을 산 사립유치원의 행태에 국민들이 얼마나 분노했던가를 기억하라. 고등교육교부금의 사용처를 먼저 밝혀라. 대학의 교육 공공성을 확보하고 학문 활동을 장려하는 데 사용할 것을 선언하라. 대학 내의 약자들한테 최우선적으로 쓰겠노라고 선언하라. 그 돈으로 가장 먼저 강사의 고용을 보장하겠노라고, 강사들의 학문 연구 활동을 보상하겠노라고, 강사들에게도 방학 중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겠노라고, 모든 강사에게 퇴직금을 지급하겠노라고, 그리하여 대학 교육과 연구를 이제는 정상화하겠노라고 국민들 앞에 선언하라.

  고등교육교부금법을 제정하라. 교육부는 대학에 제대로 돈을 주고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라. 대학은 강사의 고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임교원들에게 과도한 수업시수를 강제했다. 전임교원들은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며 그들의 강의는 연구와 분리되어 있지 않은데도 그들에게 연구할 시간을 빼앗게 되면 연구와 교육의 질이 함께 하락한다. 강사를 줄이기 위해 전임교원들에게 9시간 이상의 시수를 강제하는 야만적인 행위를 막아야 한다. 교육부는 전임교원 최대강의시수제를 도입하라. 60명 이상의 대규모강좌를 폐지하고 소형 강좌로 재편하여 교육의 질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라. 겸임 교원, 초빙 교원, 그 외 31가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기타 교원들을 줄여나가도록 하라.

  우리는 오늘 여기 대학 내 차별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서 있다. 우리는 차별받는 강사에서 차별하는 교수가 됨으로써 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차별받는 강사의 자리에서 차별 없는 대학을 소망하며 이 자리에 서 있다. 돈 몇 푼 쥐어 주고 끝내려 하지 마라. 우리가 원하는 것은 떡고물이 아니다. 우리의 요구사항은 그저 처우개선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교육의 문제이고, 학문의 문제이고, 인간 존엄성의 문제이다. 대학 강사는 자기 학문 분야의 연구자, 학자가 되고자 하는 자들이다. 그들이 자신의 학문 분야에서 학자가 될 수 있도록 하라. 대학은 이들이 연구와 교육할 수 있게 하라. 그것이 대학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대학 강사의 고용을 확대하라!
교육부는 사립대 강사 처우개선 예산 확대하라!
대학 강사의 방학 중 임금 전면 확대하라!
모든 대학 강사에게 퇴직금을 지급하라!
대학 강사에게도 교육연구비 지급하라!
강사의 대학기구 참정권과 총장선출권 보장하라!
대학 강사에게도 직장건강보험 적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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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 12일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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