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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에 빠진 학생들을 체육관으로
술집에 빠진 학생들을 체육관으로
  • 정재용 KBS 기자
  • 승인 2004.11.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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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 대학체육을 말한다②

미국대학 스포츠평의회 (NCAA) 챔피언 전당에 걸려 있는, 두 명의 前 미국 대통령 제럴드 포드와 조지 부시의 사진을 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부시는 미국 최강 예일대 야구부를 이끌던 주장이었고, 포드는 미식축구의 명문 미시건대의 스타 플레이어였다.

 
포드는 거액을 제시한 프로팀의 유혹을 뿌리치고 법대에 진학했다. 지적으로 뛰어난 학생인 동시에, 스포츠를 통해 단련된 강인한 육체와 협동심 그리고 리더십을 겸비했던 두 젊은 대학생은 결국 세계적인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었다.

우리 대학에서는 대한민국의 앞날을 짊어질 미래의 지도자들을 어떻게 길러내고 있을까. 혹시 지?덕?체를 겸비한 全人的 人間을 양성한다는, 너무나 기본적이어서 오히려 진부하게 들리는 명제를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대학 스포츠 스타였던 미국의 지도자들

대학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학문의 정진이라는 것에 대해서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그러나 지적 교육은 가장 중요할 수는 있지만 결코 그 자체로 충분할 수는 없다. 음악, 미술, 연극, 스포츠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길러진 균형 잡힌 인격이야말로 미래 지도자들의 필수 조건이다. 특히 스포츠 활동은 건강한 육체와 건강한 인격 형성을 위한 가장 바람직한 대안이다. 이론적으로 스포츠의 교육적 가치를 부정할 교육자는 많지 않다. 그러나 국내 대학의 현실에서는 스포츠의 교육적 가치는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고 해도 큰 무리가 아닐 만큼 방치돼 있다.

 
대학에서 스포츠 활동을 경시하는 현상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대학 스포츠의 천국인 미국에서조차 대학 교수들은 학생들이 책보다 공을 잡으며 스포츠 활동에 탐닉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19세기 중반 하버드대와 예일대의 낭만적인 조정 경기에서 시작된 미국 대학 스포츠는 순식간에 야구, 미식축구, 육상 등을 통해 전염병처럼 번져갔다. 철저히 학생들의 자유로운 의지로 발전한 대학 스포츠는 이후 도저히 통제가 불가능할 만큼 경쟁과 규모가 커지면서 대학 교수들의 의식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대학 교수들과 사회 지도자들은 스포츠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열정과 투혼을 지켜보면서 스포츠를 통해 미국의 미래 지도자들이 강인한 육체와 함께 굳건한 기상을 키워나갈 수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대학 교육의 주체인 교수들의 의식 전환이 이뤄지면서 미국 대학 스포츠는 놀라운 성장을 거듭했다. 최근엔 학교를 대표해서 대회에 참가하는 학생 운동 선수(Student Athlete)만 36만 여 명에 이른다. 일반 학생들도 대부분 한 가지 이상 스포츠 활동에 참여한다. 체육관은 도서관과 함께 미국 대학교육을 살아 있게 만드는 심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


스포츠에 대한 미국 대학의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는 스포츠에 활용되는 예산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NCAA 1부 리그 상위권 대학의 스포츠 관련 예산은 대부분 연간 3천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3백6십억 원)를 넘어 선다. 대학의 체육 부문을 총괄하는 애틀레틱 디렉터(우리 나라의 체육 부장)는 대부분 대학총장 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는다. 일반 학생들이 자유롭게 즐기는 레크레이션 스포츠 시설만 해도 엄청나다.

필자가 공부하고 있는 조지아 주립대 레크레이션 센터에는 올림픽을 치를 수 있는 수영장과 함께 정식 규격을 갖춘 농구 코트 10면이 학생들에게 개방돼 있다. 또 일반 학생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잔디 구장이 10면 이상 항상 개방돼 있다. 더구나 캠퍼스 내에는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풋볼 경기장과 농구장, 야구장, 축구장 육상 트랙 등이 건설돼 있다. 미국과 국내 대학이 처한 현실은 물론 다르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 대학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예산의 문제라기보다는 스포츠를 대하는 교육 행정가들과 교수들의 의식의 차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지·덕·체를 갖춘 지도자를 육성한다는 것은

사실 국내 대학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대학 체육의 정상화라는 용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스포츠의 교육적 가치를 대학에서 활용해야 한다는 논리는 아직까지 교수 사회에서 진지한 논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 체육 교육이 활성화되기 위해선 우선 근본적인 교육 가치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부터 찾아야 한다. 대학 교육은 학문만을 위해 존재하는가. 한국 대학은 진정으로 지?덕?체를 갖춘 학생들이 미래 한국의 지도자들로 성장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가. 스포츠를 통해 땀의 가치를 배우고, 협동 정신을 배우고, 위기의 상황을 극복해 나가는 리더십을 키우는 과정에서 교육적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면 체육 교육의 활성화, 정상화는 이뤄질 수 있다.

 
지난 5월 미국 스포츠의 살아있는 전설 빌 브래들리 前 민주당 상원 의원을 뉴욕에서 인터뷰한 적이 있다. 브래들리 前 의원은 프린스턴대에서 미국 최고의 농구 선수로 활약했지만 졸업 뒤 NBA 진출을 거부하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마쳤다. 이후 미국으로 돌아온 젊은 브래들리는 NBA 뉴욕 닉스에 입단해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한다. 선수 생활을 마친 브래들리씨는 상원에 진출해 20여 년 간 미국 사회의 대표적인 지도자로 활약한다.

브래들리 前 의원은 스포츠와 공부를 병행하면서 배운 시간 관리 능력과 자기 인내, 승부 근성, 도전 정신, 동료들과의 협동 정신이 자신의 인생을 끌어 온 원동력이었음을 증언해 줬다. 한국 대학 교육자들의 사명은 다름 아닌 한국의 제럴드 포드, 조지 부시, 빌 브래들리를 길러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포츠가 이들의 인생에 미친 긍정적 영향이야말로 한국의 교육자들에게 스포츠의 가치를 새삼 일깨워줄 수 있는 생생한 증언인 것이다.  

한국대학, 학생들의 운동에 적극적인 투자를

대학은 무엇보다 스포츠 시설의 확충과 함께 운동선수들에게만 개방되는 기존 체육 시설을 일반 학생들에게 개방함으로써 스포츠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 줘야 한다. 그리고 학생들이 자율적 활동을 통해 교내 스포츠 리그와 토너먼트를 활성화시킬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 도서관 옆에서 우유팩을 차는 학생들, 아스팔트 주차장 위에 선을 그려놓고 족구를 하는 학생들을 위해 최소한의 운동 시설과 공간, 프로그램을 마련해 줘야 한다. 공강 시간에 또는 도서관을 나와 갈 곳이 없어 방황하는 학생들을 카페와 술 집 당구장보다는 체육관으로 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최근 많은 대학에서 학생들의 동아리 모임에서 시작된 교내 농구, 야구, 축구 등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현상이다. 이미 학생들 사이에는 스포츠에 대한 자생적인 에너지가 생성돼 있는 것이다. 대학에서는 이런 에너지를 활용해 교내 대회 우승팀들 간의 리그나 대회를 만드는 등 진정한 학생 스포츠를 발전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지원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당장 수 백 억 원을 들여 체육관을 신축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학교의 작은 빈 공간에 아스팔트 농구장이나 족구장이라도 만들어 주는 작은 노력에서부터 대학 스포츠의 정상화는 시작될 수 있다. 대학 교수 사회에서 스포츠의 교육적 가치에 대한 재발견, 스포츠에 대한 인식의 전환만 이뤄진다면 대학 스포츠의 정상화는 결코 멀리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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