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8 23:30 (목)
지역학 연구, 북성로대학의 또 다른 미션
지역학 연구, 북성로대학의 또 다른 미션
  • 양진오
  • 승인 2021.05.10 11: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양진오의 거리의 대학 ⑪

“2019년부터 북성로대학에서 소장 연구자들과 지역 공부를 하고 있다. 
강릉, 서울, 대전, 삼척, 부산 등으로 확장됐다.
‘줌’으로 지역 연구자 네트워크가 만들어진 거다.”

지역학 연구는 북성로대학의 주요한 미션이다. 지역과 밀착된 인문학을 해야겠다는 이유로 북성로대학을 만든 터에 지역학 연구를 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래, 지역학이다. 지역은 참으로 넓고 크다. 그리고 깊다. 게다가 그 변화의 양상이 만만치 않다. 지역은 복잡계이다. 복잡계로서의 지역은 근대체제 외부에 홀로 존재하는 어떤 영역이 아니다. 지역은 또 다른 지역과 연계, 협력, 대립, 분쟁 등을 겪으며 존재하고 진화한다. 때로는 소멸의 길을 걷는다.

대구도 그렇다. 대구로 불리는 이 지역은 홀로 존재하는 어떤 영역이 아니다. 대구는 대구 외의 지역들과 동시적, 비동시적으로 엮이고 섞이며 오늘날의 형상으로 존재하고 있다. 다른 지역도 그렇다. 서두를 이렇게 열어가는 이유가 있다. 지역학 연구의 방법론이 고민스러워서다.

먼저 지역에 대한 거시적 이해가 요청된다. 대구를 예로 들어 말해보자. 대구 중구에 감영공원이 있다. 본래는 공원이 아니다. 관찰사가 국왕을 대리하여 행정, 군사 사무를 집행하는 감영이 대구 중구에 터를 잡고 있었다. 이 감영 이름이 경상감영이다. 그런데 경상감영과 관계된 관풍루는 달성공원에, 영남제일관은 동구 인터불고 호텔 인근에 분리되어 있다. 이 사실을 정확히 인지하는 대구 시민들이 많지 않다. 

지역학은 향토학의 수준을 넘어서야

관풍루는 경상감영 정문에 해당하는 누각이다. 새벽 다섯 시에 관풍루 문을 열고 밤 열 시에 닫았다. 관찰사가 누각에 올라 ‘관’, 즉 보라는 거다. 무엇을 말인가? 세속의 일들에 대해서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세속의 일은 대구 백성의 살림살이가 되겠다. 이런 관풍루가 달성공원 최제우 동상 뒤편에 설치되어 있다. 공간의 왜곡이다. 영남제일관은 대구 읍성 남문에 해당한다. 1906년 대구읍성이 강제 해체될 때 읍성 성문들도 사라진다. 동문은 진동문, 서문은 달서문, 북문은 공북문이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지켜왔다. 대구읍성과 성문이 사라진 자리에 식민도시 대구가 탄생한다. 

식민도시의 탄생은 대구만의 현상인가? 그렇지는 않다. 이 시기 대구 민중들은 경부선 철로 개통, 식민자 거리 북성로의 탄생, 근대학교와 공장, 군사제도의 이식 등 전혀 새로운 근대를 경험하게 된다. 이 근대의 풍경과 제도는 식민화를 매개로 강제되거나 이입된다. 사정이 이렇다면 식민도시 대구는 세계적 차원의 근대체제의 형성이라는 거시적 맥락과 좀더 밀착하여 연구하지 않을 수 없다. 식민도시 대구가 어느 날 아무런 맥락 없이 탄생한 게 아니라는 말이다. 이처럼 지역은 홀로 존재하는 삶의 영역이 아니다. 지역은 세계적 차원의 근대체제의 형식으로 탄생했고 그 역사가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음으로 지역에 대한 미시적 이해가 요청된다. 이때 특별히 경계해야 하는 건 향토학이다. 지역학은 향토학의 수준을 과감히 넘어서야 한다. 향토라는 말에는 지방 고유의 특색이라는 이미지가 착색되어 있다. 지방 고유의 특색을 연출하는 장소, 사건, 인물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없지 않다. 그런데 지역학은 단지 지방 고유의 특색을 밝히는 게 연구의 목표이지는 않다. 엄밀히 말하자면 지방 고유의 특색이라는 게 허구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해야 한다. 지역은 거시적 차원에서는 세계적 차원의 근대체제와 연계되어 탄생, 존재하면서도 미시적 차원에서는 근대체제와는 결이 다른 문화와 역사를 형성하며 존재하는 삶의 영역으로 이해될 수 있다. 

‘줌’으로 지역학의 경계를 넓히다

이런 문제의식으로 2019년부터 북성로대학에서 소장 연구자들과 지역 공부를 해오고 있다. 이 연구 모임은 소박하게 시작되었다. 그러면서도 이 연구 모임이 지역학 연구의 수준을 일신하는 발전을 이룰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이때 읽은 책 중 하나가 서울 행촌동 딜쿠샤의 안주인 메리 린리 테일러의 수기 『호박 목걸이』였다. 식민지와 피식민자가 아닌 어느 서양인 여성의 시선으로 재현한 식민지 경성이 흥미로웠다. 그런데 연구 모임에 위기가 오고 말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원인을 제공했다. 대면 연구 모임이 불가능했다. 지역학 연구 모임을 포기해야 하나, 고민이 깊어갔다. 

2018년 11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딜쿠샤와 호박목걸이> 특별전.
필자로 하여금 식민지 지역 연구의 방법론을 고민케 한 특별전이다. 사진=양진오

결론을 먼저 말하면 이렇다. 연구 모임이 확 커졌다. 대구 소장 학자들로 북성로대학에서 시작된 이 연구 모임이 강릉, 서울, 대전, 부산으로 확장되었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을까? 이게 줌 덕분이다. 아이러니다. 줌으로 대구 밖의 연구자들과 인연이 이어진다는 게. 줌으로 지역 연구자들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진 거다. 2020년 3월이었을까, 대전의 선배 연구자에게 줌 지역학 연구 모임을 제안했다. 뒤이어 서울, 삼척, 부산의 연구자들이 줌 연구 모임에 가입했다. 

공부가 더 깊어졌다. 대전의 도시사를 더 이해하게 되었다. 대전은 대구와 달랐다. 대구는 감영이 설치될 정도로 전통도시의 위상이 강했다. 대전은 그렇지 않다. 대전은 신흥도시이다. 대구와 대전의 도시 내부 구조도 달랐다. 나아가 대전과 고도 공주를 대구와 고도 경주와 겹쳐 학습했다. 김백영의 『지배와 공간』, 토드의 『서울, 권력 도시』를 읽었다. 지역이 달리 보였다. 읽어야 할 책들이 많았다. 줌 세미나에서 해야 할 토론 의제에 대해서도 궁리해야 했다. 줌 연구 모임의 진행 방법에 대해서 그렇다. 이 연구 모임이 좌초하는 불상사가 없기를 바라고 있다. 

비디오 회의 플랫폼 ‘ZOOM’을 활용해 강릉, 서울, 대전, 부산 지역 등의 연구자들과 지역학 연구 모임을 확장하고 있다. 사진은 박수연 충남대 교수(사진 왼쪽)와 함께 지역 답사를 하며 찍은 사진이다(2020년 9월 17일).  사진=양진오

사회적 거리두기와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가 사라지는 그날이 오면 지역 답사를 함께 하기로 했다. 그날이 언제 올지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그날이 올 거다. 그렇게 믿고 싶다. 고도 공주를 더 알고 싶고 서울을 더 알고 싶다. 연구자들과 함께 지역 답사를 하며 지역을 더 깊게 이해하고 싶다. 근대 한국인들의 삶을 만들어낸 지역의 탄생과 형성 드라마를 더 알고 싶은 마음 크다. 줌으로 만난 경향 각지의 연구자들이 지역학의 경계를 넓힐 날이 올 거다. 북성로대학 프로젝트의 미션이 이렇게 채워지고 있다.

양진오 대구대 교수·한국어문학과
한국 현대문학과 스토리텔링을 가르치고 있다. 대구 원도심에 인문학 기반 커뮤니티 공간 ‘북성로 대학’을 만들어 스토리텔링 창작, 인문학 강연 및 답사, 청년 창업 컨설팅 등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