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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사’가 쏘아올린 공
‘환경사’가 쏘아올린 공
  • 강주희
  • 승인 2021.05.11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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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동아시아: 환경, 산업, 근대’ 국제워크숍

지난 4월 26일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에서 ‘20세기 동아시아: 환경, 산업, 근대’ 국제워크숍이 열렸다. 이 글은 한 발자국 떨어진 위치에서, 당일 발표된 세 논문과 논평들 일부를 맥락화하며 환경사와 기존 역사연구 갈래들 사이의 관계성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문자기록의 사료적 한계 
새로운 역사학적 극복 
인공적 경계들을 허무려는 시도들 

세토구치 아키히사 교토대 교수(인문과학)가 기조 강연에 언급했듯이 환경사는 1960-70년대 미국 환경운동의 영향 아래 학문분과로 성립되었다. 1980년대부터 환경오염, 자원고갈, 에너지위기, 기후변화 등이 산업화의 한계와 자본주의적 성장담론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맞물려 사회문제로 인식되었고, 환경사는 “인간의 욕심과 오만이 자연을 파괴하고 그 결과 예기치 않은 재해가 발생해 모두의 생존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협한다”는 ‘쇠퇴적 내러티브(Declensionist Narrative)’를 중심으로 사회운동적 성격이 강한 분야사로 확립되었다. 이후 환경사 연구는 2000년대 후반을 분기점으로 그 주제범위가 크게 넓어지고 수가 증가해왔다. 

그러한 환경사는 현재 기술적 분야사로 굳혀질지, 환경을 역사성의 한 축으로서 수립하여 기존 사학연구의 틀 자체를 넓히는 동력이 될지 기로에 서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워크샵에서 최형섭 서울과학기 술대 교수(과학기술사)가 남긴 빅터 샤오 하버드대 교수(과학사)와 류홍윤(토론토대 박사과정)의 연구에 대한 논평이 그 역학관계를 담고 있다. 이들은 마오쩌둥의 경제계획 아래 자동차 생산공장지로 낙점된 스옌시가 종래에 어떻게 사람이 살기도 어렵고 산업적 목적도 완수하지 못하는 계륵이 되었는지 설 명한다. 도시 본연의 지리적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기술적 노력이 되려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이 이야기는 큰 틀에서 위에 말한 ‘쇠퇴적 내러티브’을 따른다. 

이에 최형섭 교수는 계획 당시에도 이미 문제를 인식하고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었음을 주지시킨다. 그럼에도 정부가 계획을 실행한 이유는 동시대 문화 혁명에 대한 중국인의 반응과 냉전기 군사적, 이념적 맥락에서 찾아야한다고 첨언한다. 인간과 자연환경의 상호관계를 비단 자연에 도전한 인간의 일천함을 강조하는 도구로만 사용하는게 아니라, 그 관계가 가지는 시간과 장소의 특수성을 사회 전반을 이해하는 무대로 삼아야 한다는 견해인 것이다. 과연 환경사는 역사학에 인류세적 재전환을 일으킬 수 있을까. 

‘20세기 동아시아: 환경, 산업, 근대’ 국제워크숍 모습. 이미지=토론 화면 캡처

인간과 자연의 상관관계 속 역사성 

재전환을 말하기에 앞서 역사학에서의 ‘인류’의 범위에 대해 고찰할 필요가 있다. 월터 그룬덴 미국 볼링그린주립대학 교수(역사학)의 연구에 대한 논평에서 고태우 서울대 교수(국사학)가 언급한 제한적 사료의 문제는 간접적이나마 환경사와 서발턴 연구의 연관성을 시사한다. 탈식민지 연구의 일환으로 90년 대부터 발전해온 서발턴(subaltern, 하위계층) 연구는 “누가 역사에 이야기를 남길 수 있는가”를 묻는 데서 환경사와 공명한다. 문자기록사료 중심의 전통적 역사학술은 문자를 남기지 못했거나 남겨진 기록 물에서 목소리가 지워진 이들, 인간의 언어를 벗어난 동식물, 유기체 등의 존재들을 품어내지 못했다.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고 기록물 이외의 사료를 취합하고자 두 갈래 모두 다양한 방법으로 실험적 연구들을 하고 있다. 논평에서 고태우 교수는 미국과 일본 양측 기록사료의 교차 검증을 촉구함과 동시에, 버려진 화학무기의 환경적 영향에 노출된 사람들의 구술자료 등을 연구에 사용할 가능성도 묻는다. 인간 자체를 일종의 사료로 생각해본다는 점에서 환경사는 유기물로서의 인간과 몸에 담긴 경험들을 다루는 의학사, 몸의 역사와도 닿아있다. 사료의 문제는 인 간과 자연의 경계, 정의(定義이자 正義)에 대한 탐구로서 환경사의 끝없는 숙제일 것이다. 

무엇이 인간과 자연의 경계를 만들까. ‘인간의 욕심과 오만’을 실체화하고 동시에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지도 모르는) 수단인 과학과 기술이 여기서 주연한다. 이종민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교수(과학기술사회학)의 연구는 엔지니어들이 어떤 배경에 서 등장했으며 그 시스템과 집단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보여준다. 엔지니어들은 환경을 변화시키는 주체이자 기술이라는 특수지식을 독점적으로 생성하고 실천에 옮긴다. 이 교수는 20세기 후반 서울의 하수처리 기술자 교육과 전문화 과정을 짚어냈다. 급격히 확장되는 도시의 배설물 처리와 홍수 예방, 깨끗한 물 공급이라는 환경난제를 정부와 과학계는 규제정책과 기술자 양성교육기관 설립 및 유지를 통해 공동으로 해결해간다. 

한경희 연세대 교수(과학기술사회학)의 논평에서도 환기되었듯, 중앙정부, 시정부, 대학, 대학 내 학과, 그리고 선구적 기술자들은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의 크기는 다를지언정 일방적인 위계 관계가 아닌 유동적 네트워크를 구성했다. 시대적 변화 속에서 기술자 집단과, 그 정체성의 근간이 되는 지식의 분류적 경계 역시 재구성 되어왔다. 환경사는 이렇게 등장한 과학자, 엔지니어들을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초국가적 주체로 다루며 그들이 가지는 개인적, 시민적 정체성과 전문가성 간의 간극을 역사의 복잡성의 일부로 추가한다. 

서구 환경사의 개척자 중 하나인 캐롤린 머천트는 환경사의 철학적 특이점을 “인공적 경계를 허무는 모든 것의 연결성”에 있다 주창했다. 그 말에 비추어 ‘20세기 동아시아: 환경, 산업, 근대’ 워크샵도 환경사적 실천의 일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코로나19라는 시대적, 장소적 제약을 근대 과학의 최신 산물인 ZOOM과 gather.town으로 불완전하게나마 극복하며, 동아시아의 오늘을 환경사적 관점에서 풀어내기 위해 모인 국내외 역사가들. 공통 주제 덕인지 젊은 학자들의 열띤 노력 덕인지, 한국, 동아시아, 서구 학계 사이의 관점적 간극도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러한 동향에서 앞으로도 국가주의나 분야성에 매몰되지 않는 재미있는 연구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 워크숍의 상세한 내용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강주희 
하버드대 역사와 동아시아학 박사과정 
하버드대 과학사 석사과정 수료, 동대학 역사와 동아시아학 연계 프로그램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의학사회사와 몸의 역사에 학문적 뿌리를 두고 있으며, 현재 심리검사의 대중화를 주제로 20세기 인간 공학의 발전과 과학지식의 전파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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